구간 단속 구간을 지나며
구간 단속 구간을 지나며
  • 승인 2021.07.18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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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숙 시인
붉은 신호등 앞에 선다. 앞만 보고 달려오던 속도를 내려놓는다. 앞서가던 차도 뒤따르던 차도 또 다른 차선의 차들 모두 서 있다. 달리기 시합할 때 출발선에 선 사람들처럼 어깨를 나란히 마주한 채.

폭염과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고, 4차 대유행이 본격화되면서 코로나 신규 확진자가 연일 최다 기록을 깨고 있다. 장기화 조짐까지 보이며 방역망과 의료체계가 빨간불을 켜 든다. 순간순간이 긴장의 연속이다. 하루, 한 달, 한 해, 한 생이 마감 날 받아 놓은 듯 일상이 온통 긴장으로 가득 채워지고 있다.

도로 위에선 신호등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 비보호 좌회전, 직진과 좌회전 동시 신호, 우회전, 유턴, 내비게이션 등 표지판의 질서에 순응하게 된다. 함께 주행하는 다른 차들과 횡단보도의 보행자 등을 주의 깊게 살펴 가며 운전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삶의 길도 마찬가지 아닐까.

직진 신호나 좌회전 신호를 받으며 교차로를 넘어가려는 순간 교통신호가 황색 불로 바뀌게 될 때, 그 순간의 구역을 딜레마 존이라고 부른다. 운전하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경험이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빠른 선택을 하지 못할 경우 옐로카드처럼, 범칙금 고지서나 벌점을 받게 된다. 벌준 선생님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데 교무실 앞 복도에 홀로 남아 두 손 번쩍 허공으로 추어올린 채 무릎 꿇고 앉아 뭘 잘못했는지 반성하고 있는 것만 같은 요즘이다.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서 단 하나의 선택을 위한 고민의 늪에 자주 빠지게 된다.

어디를 가나 차나 사람의 속도를 제한하기 위한 단속카메라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코로나 시국 이전, 단속카메라 앞에서만 속도를 줄였다가 단속 구간을 통과하면 다시 속도를 올릴 때가 가끔 있었다. 이러한 캥거루 운전을 예방하기 위해 ‘구간단속 카메라’를 만든 것이라며 언젠가 남편이 엄포를 놓으며 잔뜩 겁을 주던 때가 떠오른다.

‘구간 단속 시작지점입니다’ 고속도로에 오르니 시속 100km 구간단속이니 조심하라고 내비게이션이 연신 비상등을 켠다. 마감 임박처럼 충혈된 붉은 두 눈을 부라리며…. 터널 안으로 들어서니 그제야 잠잠해진다. 구간 단속 구간에서는 정해진 평균속도대로 가야 하지만 혹, 최소 50km로 내려가거나 최대 100km를 넘어서는 걸 주의해야 한다. 나뿐 아니라 다른 이의 속도까지 멈추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구간 과속단속은 차량의 제한속도 위반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특정 구간을 대상으로 평균속도를 잰다. 단속 시점과 종점에 카메라를 설치해 두 지점 간의 통행 시간을 측정, 구간 평균속도로 과속 여부를 판단하는 단속방식이다. 지금, 코로나 시국이 이와 같지 않을까. 어느 지점이든 가다 보면 언젠가는 도착하게 될 우리들 삶의 여정 중에서 만나게 될 ‘구간 단속 구간’의 시간이 아닐까. 마음이든 몸이든 적절히 조율하며 정해진 속도와 보폭에 따라 천천히 때론 느리게 걷는 일이란 걸.

법이나 규칙이라는 선은 가두는 담이 아니라 그 안에서 자유로울 수 있도록 보호하고 지켜주는 울타리가 아닐까 싶다. 선을 마음대로 넘나드는 사람들이 가끔 자유에 관해 얘기할 때가 있다. 선은 약속이다. 그들로 인해 선 안에서 선을 지키는 사람들의 자유까지 침범하게 둘 순 없을듯하다. 스포츠 경기나 횡단보도, 도로의 차선은 선 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 맘껏 모여서 놀고 싶은 마음을 지그시 누르고 사회가 정해놓은 선 안에서 평범하지 않은 일상, 평일을 평상시처럼 보냈으면 좋겠다. 최대의 반대말이 최소가 아니라 최선이듯 최선이 아니라 차선이라도 ‘구간 단속 구간’이 하루빨리 지나가기만을 꿈꿔 보는 평일이다.

‘평일’을 ‘평범하지 않은 매일’이라고 해석을 해 놓았던 ‘코로나 19 극복캠페인’을 위한 어느 신문 맨 뒷장의 광고가 성화대에 점화하듯 눈에 불을 켜고 나를 올려다본다.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매일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이 마음을 바꾸니 그것만은 아닌 듯 지친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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