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인우 연출가 “예술의 역할은 다양한 뷰포인트 열어주는 것”
남인우 연출가 “예술의 역할은 다양한 뷰포인트 열어주는 것”
  • 황인옥
  • 승인 2021.07.22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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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소년이 그랬다’ 연출가
장애인·청소년 문제에 큰 관심
소외층에도 문화 향유 권리를
‘촉법소년’ 소재 다룬 에피소드
학생이 던진 돌에 운전자 사망
범죄 이면의 다양한 현상 접근
청소년에 철학적 사유 권하고파
연극-소년이그랬다
연극 ‘소년이 그랬다’의 배우 이문식(왼쪽)과 남수현.

남인우-연출가
남인우 연출가. 극단 북새통 제공
연출가 남인우가 지난 10여년 전, 연극 ‘소년이 그랬다’라는 청소년을 주제로 한 연극을 연출하기 전에 “예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그녀는 “예술을 향유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으로 예술에 대한 정의를 재점검했다.

그리고는 바로 연극으로 주제를 돌려 “우리 시대 연극의 현주소는 어떠한가?”에 대한 질문을 다시 던졌다. 그러자 지금까지 경험했던 수많은 연극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고, 그것들 사이에서 공통분모를 추출할 수 있었다. 그녀가 보았던 연극들은 모두 ‘지적인 비장애인 성인’이 대상이었다. 연극에서 다루는 계층이 극히 제한적이었다는 것.

남 연출가는 장애인이나 어린이, 청소년이 연극에서 소외되는 현상을 “누구나 향유할 수 있는 예술에 대한 권리”에 대한 침해로 받아들였다. 평소 예술의 다양성과 확장성에 관심을 가졌던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소외된 계층에게 권리를 돌려주는 것이었다. 청소년을 주제로 한 연극 ‘소년이 그랬다’는 남 연출가의 평소의 소신이 낳은 결실이었다. 그녀는 꾸준하게 청소년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선보이며, 청소년 전문 연출가라는 호칭을 얻었다.

남 연출가는 “어쩌다 보니 청소년연극 전문가처럼 포장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곡해된 부분이 없지 않다”며 전화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녀의 관심사가 연극이 그동안 품지 않았던 다양한 계층에 대한 관심이었고, 그 정점에 청소년 연극이 자리한다는 것이었다.

연극 ‘소년이 그랬다’는 호주에서 청소년들이 고속도로에서 던진 돌에 트럭 운전자가 숨진 실화를 극화시켜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던 원작 ‘더 스톤즈(The Stones)’를 남 연출가가 우리 현실에 맞게 재창작한 작품이다. 극은 평범했던 중학생 민재와 상식이 장난삼아 던진 돌에 자동차 운전자가 숨지고, 두려움을 느낀 두 소년이 자수를 하게 되면서 긴장감은 고조된다.

남 연출가는 이번 연극에서 청소년 범죄를 범죄라는 단순한 접근법에서 벗어난다. 시각을 더 확장해 청소년의 존재론적 고민, 청소년을 둘러싼 환경적인 것으로까지 주제의식을 확장해 간다. 남 연출가는 “결국 예술이 하는 역할은 다양한 뷰포인트를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두 소년의 범죄는 평소 자신들을 괴롭히던 짜장면 배달원을 골려주기 위한 단순한 의도로 출발했다. 범죄 이면에 왕따나 괴롭힘 등의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이면의 다양한 현상까지 접근해 보여주고 싶었다.”

연출가의 의도는 두 형사의 서로 다른 관점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장난으로 던진 돌에 숨진 사람이 네 아버지라 해도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무죄라고 할 수 있느냐”고 주장하는 형사와 “그 돌을 던진 아이가 당신의 딸이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되받아치는 두 형사의 충돌은 관객의 마음을 혼란에 빠트린다. “연극이 진행될수록 관객들은 불편한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YES’ 와 ‘NO’라는 이분법적으로 접근하기에 우리 주변의 문제들이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관객과의 소통력을 높이기 위한 장치는 블랙박스 형태의 무대다. 무대 위에 객석을 설치해 객석과 객석 사이에서 배우들이 연기를 펼친다. 관객과 배우, 관객과 관객이 하나의 사건을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공감대를 만들어가는 구조다. 쉼 없이 달리는 소년들의 불안한 심리가 객석에도 고스란히 전달되면서 그들 사이에는 자연스럽게 다양한 관점들이 오고간다.

“길 위에 있는 배우와 관객이 함께 뛰고, 생각하고, 판단하게 된다. 배우와 관객 모두 논쟁의 가운데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한다.”

남 연출가가 ‘소년이 그랬다’를 통해 청소년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두 가지다. 첫째는 주제적인 측면이다. 청소년들에게 “청소년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 진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게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소년 연극이 형상과 감성이라는 제한적인 주제만 다뤘다면, 나는 이 연극을 통해 청소년들이 자기 삶의 주체자로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청소년을 기르는 우리 사회의 환경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소재는 14년 미만의 촉법소년의 범죄다. 이 연극을 만들 당시 우리 사회에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 한 아파트 옥상에서 10세의 어린이가 호기심에 던진 돌에 50대가 숨지는 사건이었다. 일반적으로 14세 미만은 촉법소년의 적용을 받아 범법 행위를 저질렀어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 처벌보다 교화에 방점이 찍히는 것이다.

남 연출가가 이번 연극을 통해 다루는 두 번째는 메시지는 연극이라는 형식적인 측면이다. 청소년들에게 연극이 주는 재미를 느끼게 해 주자는 것. 말하자면 ‘연극성’에 대한 이야기다. 남 연출가가 바라보는 연극성은 ‘허구가 주는 즐거움’에 있다. 허구의 세상에서는 현실에서 불가능한 일들이 얼마든지 가능해진다. 연극에서 허구는 주제를 강화하거나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중요하고, 나아가 극을 재미적인 이끄는 중요한 요소다.

이번 작품에서 돋보이는 연극성은 1인 2역이다. 한 사람의 배우가 범죄를 저지른 소년과 그것을 취조하고 심문하는 형사를 동시에 연기한다. 범죄자와 형사를 한 배우가 연기할 경우 두 배역의 심리를 관객이 다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범죄를 저지른 소년과 성인인 형사가 청소년 범죄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청소년의 문제는 보편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사실 청소년 사회는 우리사회의 축소된 사회다. 그들의 문제가 일반 성인들의 문제와 다르지 않다.”

연출에서 신의 한수는 또 있다. 50대와 20대 연기자의 더블캐스팅. 50대 연기자는 이문식이 낙점됐다. 남 연출가는 “50대 중년이 소년을 연기하고, 20대 청년이 성인 형사를 연기하면서 무대는 중년의 노련함과 청년의 젊은 에너지로 채워진다”고 했다.

이번 공연은 10년전 초연 공연 버전 그대로 올라간다. 촉법소년을 바라보는 우리사회의 분위기가 10년전과 많이 달라졌지만, 남 연출가는 여전히 그녀의 질문은 유효하다고 인식한다. “상황이 안 좋을수록 더 본질적인 부분이 보인다. 어차피 우리 연극이 청소년 범죄를 다루는 것보다, 청소년 시기의 존재론적인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굳이 변화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공연은 30~31일 수성아트피아 용지홀에서. 전석 3만원. 문의 053-668-1800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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