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비밀
  • 승인 2021.07.26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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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란 주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전래동화를 알 것이다. 임금님이 왕이 되고 귀가 길어졌다. 백성들이 알면 기이하게 여겨 나쁜 소문이 날까봐 감추었다. 복두(임금님이 머리에 쓰는 관)를 만드는 사람은 알고 있었고, 그는 아무에게도 말하면 안 되었다. 혼자만의 비밀을 갖게 된 것이다. 자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왕권에 의해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강요된 비밀이었다. 머릿속에서 생각나고, 입 밖으로 나올 듯 말 듯한 말을 하지 못하고 꽁꽁 가슴에 넣어두다보니 병이 들었다.

죽음이 임박하여 죽기 전에 속 시원히 한 번 내질러 보고 죽어야겠다 마음먹고, 인적이 드문 숲속에 들어가서 크게 소리를 질렀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배꼽을 움켜쥐며, 두 손을 입에 모으고 목청이 떨어지도록 내질렀을 것이다. 그 때의 통쾌함과 짜릿함을 누가 알까? 대나무 숲이여서 대나무가 알았다. 그래서 바람이 불 때마다 대나무가 흔들리면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소리를 냈다. 왕이 이를 알고 대나무를 베어 버렸지만 그 소리는 계속 났고, 결국 임금은 복두를 벗어서 만 천하에 자신의 길어진 귀를 드러내었다. 그 후로는 긴 귀로 백성의 목소리를 잘 듣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자신의 목숨이 걸려 있어서 마지못해 말하면 안 되는 비밀을 간직한 복두장이는 결국 스스로 비밀을 말했다. 자신이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말하고 싶은 본능이 있는 것 같다. 자신에게 유익한 것이 아니고 나쁜 영향을 미치기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감추어두지만 답답함에 병이 났다. 영원히 비밀로 유지하기에는 어렵나보다. 영원한 비밀은 없나보다.

2022년 3월에 대통령 선거가 있다고 한다. 정책에 대해 알아보고 하나 하나 따져보고 대통령이 누가 되면 좋을지 결정해서 투표를 해야겠지만 전반적인 인상에 의해서 투표를 하게 될 것 같다. 뉴스마다 대선후보의 지지율이 나오고, 그들의 언행이 기사화된다. 이래서 좋고, 저래서 안 좋고, 이런 점이 어떤 지지층을 끌어올리고 저런 점이 지지율을 낮추게 한다고 분석한다. 구체적인 내용은 들을 때 잠시뿐이다. 정치에 관심이 없어서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서로에 대한 비방만 들리고, 감추어 있었던 그들의 '비밀'만 공개된다.

대통령선거, 국회의원 선거 등 '큰 일'을 하는 사람일수록 비밀이 없다. 유명인으로 뜨게 되어도 예전의 비밀이 '폭로'되어 소송을 하네. 해명을 하네 힘든 일을 겪는다. 감춰줘 있던 것이 그 사람의 지지율이나 인기를 끌어내리기 위해 드러난다. '큰 일'을 할 사람일수록 '유명인'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일수록 나쁜 비밀은 많이 만들지 않는 것이 좋다. '비밀'은 언젠가는 비밀이 안 되는 때가 반드시 오는 것 같다.

홍희에게도 20년간 감춰온 비밀이 있다. 가족 이외에는 말하지 못한 비밀. 너무나 힘들었던 일들. 남들에게 말하기 싫은 부끄러운 일. 견디며 살아온 날들이 대견한 일. 뒤돌아보기 싫은, 한 사람에게는 잊혀진 일. 문득 문득 생각나는 일. 왜 그랬을까? 그 때 지금같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분명 뒤돌아보지 말고 앞만 보고 달리기로 했는데, 앞만 보고 달리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서 자연스럽게 뒤들 보게 되었다. 그리고 비밀을 말했다. 울면서, 화를 내면서, 소리를 치면서, 탁자를 탕탕 치면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 '비밀'을 말햇다. '비밀유지'를 해 준다고 해서 말이다. 이제는 비밀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혼자만의 비밀로 가슴에 꽁꽁 넣어두기엔 복두쟁이처럼 병이 난 탓인가? 자신도 알 수 없는 행동을 자꾸 한다. 비밀이 자신을 집어삼켜 버리고, 비밀안에 자신이 감금된 것 같다. 비밀로 간직하는게 너무 힘들다.

그래서 자꾸 털어놓고 싶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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