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의 삶·생김새에서 ‘군자지도’ 읽은 선비들
매미의 삶·생김새에서 ‘군자지도’ 읽은 선비들
  • 윤덕우
  • 승인 2021.07.28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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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온의 민화이야기] 매미가 건네는 덕목
변태 과정, 불사·재생의 상징
신선으로 비유될 정도로 칭송
고대엔 생성·소멸하는 달처럼
드디어 뜨거운 여름이 시작되었다. 무엇보다도 나무 위 매미 소리로 가득 채워져 한여름의 무더위가 왔음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초등학교 시절 방학 숙제로 등장하는 곤충채집을 위해 이리저리 헤매었고, 어쩌다 눈먼 매미 한 마리 잡아 채집통에 넣어두면 시끄러운 울음소리에 다시 풀어줄 때도 있었다.

예부터 매미를 읊은 유명한 글들 중 하나는 송나라 시대 문사인 구양수(歐陽修)가 지은 명선부(鳴蟬賦)이다.

嘒嘒非管, 泠泠若絃/ 맴맴하는 소리는 관악기의 소리는 아니었고 매앰 매앰 하는 소리는 현악기 소리 같았다// 裂方號而復咽, 凄欲斷而還連/찢어지듯 부르다가 다시 삼키고 처량함이 끊어질 듯하다가 다시 이어졌다.//吐孤韻以難律, 含五音之自然,/ 혼자 운을 삼키기에 율을 맞추기 어렵지만 오음이 자연히 포함되니,// 吾不知其何物, 其名曰蟬./ 나는 그게 어떤 생물인지 알지 못하지만 이름은 매미라 한다.

이처럼 구양수의 <명선부>를 자주 읊으면서 화가들은 매미를 즐겨 그렸다고 한다. 정선의 매미는 2020년 4월 20일 개제 되었던 글에서 소개하였으므로 이번에는 심사정의 매미를 소개하고자 한다.
 

유사명선- 심사정
현재(現在) 심사정(沈師正) 작 지본담채 28.0cm X22.2cm 간송미술관 소장.

오래된 버드나무의 굵은 둥치는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부러졌고, 그 옆에는 새 가지가 자라나 새잎을 틔웠다. 고목 둥치 한가운데 매미 한 마리가 몸을 붙들고 있는데, 가는 붓질을 통해 눈과 투명한 날개를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관 끈이 늘어진 듯한 머리는 文
이슬만 먹어 淸, 廉
거처할 곳 없어 儉
때 맞춰 죽어 信 상징

매미의 생긴 모습과 사는 모습을 가장 이상적으로 미화시킨 사람들은 동양의 선비들이었다. 진(晉)나라 육운(陸雲, 262~303)은 그의 <한선부(寒蟬賦)> 서문에서 매미가 문(文), 청(淸), 염(廉), 검(儉), 신(信) 등 오덕(五德)을 갖추었다 하여 선충오덕(蟬蟲五德)의 곤충으로 여겨졌다. 매미는 관(冠)의 끈이 늘어진 형상이기에 글(문)을 읽어야 하고, 이슬을 먹기에 선비의 청(淸)과 렴(廉)을 지녔고 거처할 곳을 마련하지 않기에 검소(儉)하고, 때 맞춰 죽음을 맞기에 신의(信)를 지녔다고 하였다.

매미의 삶의 형태와 그 생김새로부터 군자지도(君子之道)를 읽어낸 선비들은 청고(淸高)한 군자의 덕을 상징하는 초건(貂巾)을 초선(貂蟬) 또는 초선관(貂蟬冠)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임금이 쓰던 익선관의 뿔 2개
매미 날개가 위로 향한 모양새
금으로 형태 제작, 소유하기도

익선관(翼善冠)은 조선시대 왕과 왕세자가 국가의 대소 의례 때와 평상시 집무할 때 곤룡포와 함께 관모로 사용하였다. 익선관은 복두의 변형으로 중국 송나라 때는 절상건(折上巾)이라 하였다가 명나라에서 익선관이라 부르면서 조선에 전해져 사용하게 되었다.

익선관
매미의 생김새를 본뜬 익선관.

그 형태는 사모와 유사하며 전면의 굴곡진 부분에 자색끈이 매듭으로 장식되어 있다. 다만 관료들의 사모와 다른 점은 한 쌍으로 된 매미 날개를 위로 향하게 부착하였다는 것이다. 날개가 위로 향한 것은 하늘을 의미하며, 관료의 관모는 양 옆으로 붙여 땅을 향하고 있어 상하를 구분하였다.

관모의 매미 날개 모양의 양쪽 깃을 관리들이 서로 쳐다볼 때마다 매미의 덕목을 떠올리며 정사를 잘 베풀라는 가르침이 담겨있던 것이다. 심지어 금이나 옥을 매미 모양으로 만들어 늘 가지고 다니며 관리로서 매미의 청렴한 덕목을 배우고자 하였다.

조선 시대 군자를 상징한 매미 그림으로는 17세기에 활동했던 월봉(月峰) 김인관(金仁寬, 1636~1706)의 《화훼초충화권축(花卉草蟲畵卷軸)》 12폭 그림 중 세 번째의 <유선도(柳蟬圖)>가 있다. 오른쪽 아래 오래된 버들 둥치는 강한 필선으로 간략하게 그리고 대각선 방향으로 새로이 난 가지와 그 가지에 앉은 매미는 과장될 정도로 상세히 그렸다.
 

유선도-김인관
월봉 (月峰) 김인관(金仁寬) <유선도> 《화훼초충화권축》중, 지본수묵담채, 1150x17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매미가 버드나무와 함께 그려진 예가 많은 이유는 바로 매미의 생태적 특성과 연관된다. 버들은 동진의 전원시인 도연명(陶淵明, 365~427)이 고향에 은거하며 집 주위에 다섯 그루의 버들을 심고 스스로 오류(五柳)선생이라 부른 이래로 은자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소재였다.

고목에서 새롭게 돋아난 버들가지와 그 가지 끝에 앉아있는 매미는 바람에 가볍게 흔들리고 있다. 버들가지 아래의 텅 빈 공간과 수채화 같은 맑은 담채, 경쾌하게 흔들리는 버들잎 등은 시원하고 맑은 분위기를 만들어내 무더위를 잠시 잊게 해준다. 매미는 새롭게 돋은 가지처럼 새로운 각오로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는 때를 기다리고 있는 선비 자신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소나무나 버드나무에 매달려 있는 매미의 모습을 주로 그리는데, 이는 민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락도
어락도 작가미상 19세기 초반 지본채색 54cmX33cm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특히 어락도에는 커다란 잉어도 함께 그려져 있어 흥미롭다. 물고기(魚)는 여유(餘裕)의 여(餘)와 동음 동성이기 때문에, 사람들에 의해 길상으로 여겨져 옷감, 건축, 여러 기물 등에 각종 물고기와 비늘이 도안화된 문양이 사용된다. 즉 이 그림에는 물고기 한 마리를 더 그려 넣음으로써 길상적 의미가 더해진 것이라 볼 수 있다.

땅속에서 유충의 상태로 4~6년을 지낸 후 번데기가 되고, 껍질을 벗고 성충이 되는 일련의 변태기로 되었다가, 다시 껍질을 벗고 성충이 되는 매미의 변태 과정은 불사(不死)와 재생(再生)을 상징하며, 고대인에게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달의 작용과 동일시되었다. 매미는 허물을 벗음으로써 신생을 누리므로 재생과 부활과 탈속의 상징으로 찬미 되었다.

매미는 대략 6~7년간 땅속에서 살며 수차례 탈피를 하다가 성충이 되어 땅 위 나무로 올라가 우화(羽化)한다. 이처럼 매미의 수차례 탈피는 재생과 때론 탈속의 상징으로 여겨져, 신선으로 비유될 정도로 칭송받아왔다.

그래서 백선병 병풍 그림에도 등장하는 것이 그 이유일 것이다.

올해도 매미 울음소리가 유난히도 크고 요란하다. 밤낮은 말할 것도 없고 새벽까지 매미들이 쉬지 않고 울어댄다. 요 며칠 너무 더워 베란다 문을 활짝 열어 놨는데, 이른 새벽 고요를 깨고 울려 퍼지는 매미 울음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무슨 일이 일어난 건 아닌지 살짝 걱정될 정도였다. 최근에 우리 사회에는 빈번히 터져 나오는 안전사고로 아까운 생명들이 희생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는 관리 감독을 하는 곳의 청렴성과 무관하지 않다. 안전하게 시공해야 할 업자들이 눈앞의 작은 이익을 위하여 부실공사를 하고, 이를 관리 감독해야 할 관청은 자신들의 책무를 소홀히 하는 바람에 많은 인명피해와 사회적 손실이 발생한다. 이제 정말 목이 쉬도록 목청껏 울어대는 매미울음은 듣고 정신을 차려야 할 때이다. 그런 의미에서 매미는 우리에게 그 오덕(五德)을 깨우쳐 주기 위해 목놓아 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박승온ㆍ사단법인 한국현대민화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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