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삭빠른 청주인이 먼저 허리를 샀다 (先買腰脊)
약삭빠른 청주인이 먼저 허리를 샀다 (先買腰脊)
  • 승인 2021.07.29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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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규 대구예임회 회장 전 중리초교 교장
지인이 늦게 귀농하였다. 시골 장날에 가서 병아리를 열 마리 사왔다. 자연에 다니면서 벌레도 잡아먹고 풀도 뜯어먹고 튼튼하게 자라라고 닭장도 어설프고 볼품없게 만들었다. 병아리들은 산으로 올라가지도 않고 집 근처에서 맴돌기만 하였다. 모이를 주지 않았더니 병아리들은 잘 자라지도 않았다. 알도 낳지 않고 비실비실 병치레만 하였다. 설상가상으로 밤이면 삵과 같은 들짐승이 나타나 닭들을 몰래 물어 가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였다. 지인은 난감하였다.
이웃집 할아버지를 찾아갔다. 할아버지는 지체 없이 지인의 집에 와서 닭장의 그물을 찬찬히 살펴주고, 모이통, 물통, 모래놀이터, 횃대를 매어주었다. 그리곤 할아버지는 허허 웃으면서 "언제든지 증구(拯救)하리라."하며 돌아갔다.
'증구(拯救)'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구해준다.'는 뜻이다. 본디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거나 불 속에서 아우성치는 사람을 건져내어 구출해줌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이웃에서 바라보는 모습이 절박해 보였던듯하다.
어린 아이가 나무에 올라가 나뭇가지에 매달리거나 불에 휩싸이거나 물에 빠졌을 때 부모로서는 어린 아이를 구하기에 급급하여 어떠한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는다. '일이 어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앉아서 될 대로 되겠지.'라는 마음을 가지는 부모는 없다. 이건 천륜에 어긋난다.
옛 사람들은 자연의 섭리를 믿었다. 자연은 생성의 이치로 만물을 만들었다. 뭐든지 순리대로 만들어 가는 것이 곧 자연의 이치이다. 바로 순응이다.
그런데 자연에 병통과 폐단이 생기는 것은 사람이 올바른 방법으로 일에 순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병폐가 그 가운데서 생겨났으니 변통해 나가는 방법도 반드시 그 가운데 있다. 생각한 것을 생각해 봐야 한다.
형편과 경우에 따라서 일을 이리저리 막힘없이 잘 처리해야 한다. 지금은 국민들이 질병에 시달리지 않고 가난하지 않게 살아야 한다. 코로나19, 부동산 문제, 정치 문제, 교육문제는 우선 변통이 필요하다. 아주 중요한 일이다.
조선 전기문인 성현(成俔)의 '석유청주인(昔有靑州人)'에 '요척(腰脊)'이라는 말이 나온다. '요척(腰脊)'은 '허리'와 '등뼈'를 말한다. '허리'는 아주 중요한 곳이고, '등뼈'는 일의 경로 또는 두서를 의미한다. 요척을 흔히 허리라 한다.
옛날 청주인, 죽림호, 동경귀 세 사람이 있었다. 세 친구는 공동으로 말을 샀다. 약삭빠른 청주인이, 먼저 허리를 샀다(先買腰脊). 죽림호는 머리를 사고, 동경귀는 꼬리를 샀다. 청주인은 친구들에게 "나는 허리를 샀으니 내가 말을 타고 다녀야 한다."고 선포했다. 그리고는 죽림호에게는 말에게 꼴풀을 먹이는 일과 말의 고삐를 잡는 일을 시켰다. 동경귀는 말의 뒤꽁무니를 따라 다니며 말똥을 치우는 일을 시켰다. 죽림호와 동경귀는 참다못해 몹시 화가 나서 세 사람이 내기를 하자고 하였다. 내기는 "가장 높이 올라가는 사람이 말을 타기로 하자."고 제안했다.
죽림호가 먼저 "나는 하늘 꼭대기까지 올라갔다."고 했다. 동경귀는 "나는 죽림호 너보다 더 높이 하늘 꼭대기 위에까지 갔어."라고 하였다.
가만히 듣고 있던 청주인은 "동경귀 네가 간 그곳에서 손을 뻗으니까 무엇인가 잡혔지. 길쭉한 그 무엇인가 말이야."하고 물었다. 동경귀는 무심코 "그래!"하고 대답하였다. 청주인은 "그 길쭉한 건 바로 내 다리야. 그러니깐 넌 내 밑에 있었다."하였다. 죽림호와 동경귀는 할 말을 잃었다. 두 사람은 오래도록 청주인의 종노릇만 하였다.
세상엔 약삭빠른 사람이 너무 많다. 그 약삭빠른 사람을 이기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약삭빠른 사람보다 더 약삭빠름이다. 그건 옳은 방법이 아니다. 약삭빠름은 순리가 아니다.
지인은 도시에서 태어나 도회지에서 생활을 했다. 일생을 살아온 모습이 경쟁이라는 '~척'과 '~체'의 눈치 속에서 살아왔다. 약삭빠른 사회의 모습만 보아왔다. 그렇다고 약삭빠른 청주인처럼 '선매요척(先買腰脊)'도 하지 못했다.
그게 싫어 지인은 그냥 귀농했다. 이웃사람들에게 자주 도움을 받는다고 한다. 요즘은 '멀리 있는 물은 가까이 있는 불을 끌 수 없고, 멀리 있는 친척은 가까운 이웃만 같지 못하다.'는 명심보감 구절을 새삼 읊조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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