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을 피하는 방법
폭염을 피하는 방법
  • 승인 2021.08.0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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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숙 시인
추위는 견디는 것이고 더위는 피하는 것이 아닐까. 이른 저녁을 차려 먹고 음식물찌꺼기와 설거지까지 말끔하게 해치운 뒤라 냄새날 것이 없는데 어디선가 타는 냄새가 방안 가득 진동한다. 방과 방 사이를 오가며 강아지처럼 킁킁, 냄새의 발원지를 찾아다녔다. 종일 불볕더위에 휩싸인 날이다.
해는 기운지 오래, 된더위의 기세는 수그러들지 않은 채 열대야로 이어지고 있다. 잠깐 움직인 것뿐인데 에어컨을 끌어안고 있어도 땀은 쉬이 삭을 줄 모른다. 땀방울이 발등으로 뚝뚝 떨어진다.
연이은 폭염에 코로나 19 확산까지 더해 더위는 좀처럼 꺾이지 않는다. 확진자가 역대 최다를 기록하고 있는 이때 집안에 오래 머무르게 되다 보니 에어컨이 해야 할 일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좀처럼 쉴 틈이 없어 보인다. 에어컨 앞으로 다가갈수록 냄새가 짙어진다. 전선과 콘센트가 서로 엉겨 붙어 녹아내리고 있었다.
연결된 배선이 문제였다. 기본으로 제공하는 실외기의 전선 길이를 초과해 별도로 추가 연결해 설치해 덧대어 놓은 것이 화근이었다. 알고 보니 덧댄 전선이 감당하기엔 에어컨이 먹어대는 전기의 양에 턱없이 부족했다. 과부하가 걸린 것이다. 형광등 하나 내 손으로 갈아 끼우지 못할 만큼 전기에 대해선 문외한이었던 내가 그 기막힌 원리를 알 리 만무했다. 화근이 화근내를 불러 모은다. 콘센트와 한 몸이 된 코드가 가마솥에 누룽지처럼 눌어붙은 채 떨어질 기미가 전혀 없어 보인다.
에어컨 화재의 대부분이 에어컨 실외기에서 발생할 확률이 높다는 뉴스가 연일 보도되고 있었다. 과열로 인한 화재의 원인은 본체와 실외기 연결부 전선의 합선이 가장 많고 다음으로 내부 전선 합선, 실외기 과열 순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비가 잦은 여름, 가장 고생하는 사물이 우산과 자동차 와이퍼라면 올여름, 제일 고생하는 건 아마도 에어컨 실외기가 아닐까. 폭염이 다른 해에 비해 좀 더 앞당겨졌기 때문이리라. 안에서 시원한 바람을 누릴 수 있다는 건 밖에서 뭔가가 뜨거운 공기를 내보내는 역할을 해 주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지금 누리는 편안함이 누군가가 실외기 역할을 해 주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여전히 에어컨 실외기는 일당백으로 열 일을 하고 있다. 찬바람을 만들기 위해선 그만큼의 열이 발생하고 누군가는 그 열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는 에어컨의 원리가 세상의 원리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쉴 수 있는 만큼 누군가가 고생하기도 하고 땀을 뻘뻘 흘리며 불 앞에서 저녁상을 차리는 일처럼 내가 고생하는 만큼 가족들의 배를 불리고 평온을 누릴 수 있다는 걸.
실외기도 사람들도 너무 과열되지 않게 적당한 선에도 조율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안과 밖을 오가며 각자의 할 일을 하되 너무 욕심내다 과열, 과식, 과적까진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에어컨도 쉬게 할 겸 전원을 끄고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었다. 고장 난 전선을 챙겨 들고 차단기가 달려있다는 콘센트를 찾아 문밖을 나선다. 누전차단기가 달려있어 과열된다 싶으면 알아서 차단기가 내려진다는 콘센트가 있다는 걸 검색을 통해 알게 된 후였다.
동네 대형 전자마트에 들어설 즈음이었다. 고양이 한 마리가 죽은 듯 보이는 새끼를 입에 물고 내 앞을 지나가더니 상가 건물의 뒤꼍, 골목 안으로 사라진다. 그들의 안부가 걱정되어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조심스레 뒤를 밟았다. 마침 열려 있는 옆 상가의 계단을 지나 옥상에 올라 내려다본다. 골목마다 어미 고양이가 새끼를 가슴에 품은 채 젖을 물리고 있었다. 세 마리의 어미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 일곱 마리….
낌새를 알아차렸는지 내려다보는 나와 젖을 물린 채 경계의 눈빛으로 고개만 들어 올려다보는 어미 고양이의 눈이 마주쳤다. 미동을 할 수 없었다. 우린 서로 눈동자를 마주한 채 얼음이 되고 말았다. 좁아터진 상가 골목 안, 그들이 쉼을 얻고 있는 바로 옆에 실외기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땀인지 눈물인지 그들의 머리 위로 연신 소나기처럼 뚝뚝 떨어져 내린다. '태양을 피하고 싶어서 아무리 달려 봐도 태양은 계속 내 위에 있고' 태양을 피하는 방법을 노래하던 어느 가수의 가락이 머릿속으로 흘러 들어와 한 여름 엿가락처럼 늘어진다. 힘들고 없는 사람들이 살기에는 겨울보단 여름이 좋다는 바로 그,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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