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심하기엔 여전히 위험한 콜라보
안심하기엔 여전히 위험한 콜라보
  • 승인 2021.08.02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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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경 한국애드 대표
펀슈머란 재미(Fun)와 소비자(Consumer)를 결합한 용어로 상품에 대한 재미를 소비하고, 이런 경험을 공유해 트렌드를 선도하는 소비자를 의미한다. 펀슈머가 늘면서 이를 대상으로 하는 펀마케팅(Fun Marketing)도 활발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대한제분의 곰표 브랜드다. 대한제분이 지난해 5월 편의점 CU와 협업해 만든 '곰표 밀맥주'가 시장에 안착하면서 이를 따르는 다양한 콜라보가 줄을 잇기 시작했다. 실제로 곰표 밀맥주는 기존 주류업계의 아성을 무너뜨렸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을 정도로 소비자의 뜨거운 호응을 입었고, 지난 5월에는 대형제조사의 맥주를 제치고 CU 맥주 매출 1위를 차지했다. 출시 3일 만에 초도 물량 10만 개가 매진됐고 최근 생산물량을 늘여 300만 개를 공급했으나 2주 만에 모두 판매됐다. 재미있는 맥주가 이제는 구하기 힘든 맥주가 되어 사재기 열풍까지 몰고 왔다. 이제 '곰표'를 밀가루보다는 밀맥주로 곰표를 기억하는 이들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는 우스갯소리가 결코 빈말은 아니다.

곰표는 밀맥주에 그치지 않고 '밀가루=흰색'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다양한 콜라보를 진행했다. 곰표아이스크림, 표문(곰표)막걸리, 곰표나쵸, 곰표치킨너겟 등 먹거리는 물론 곰표패딩, 곰표핸드크림, 곰표클렌징팩, 곰표칫솔과 치약 곰표쿠션(화장품)까지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했다. 지란 7월 20일부터는 인천시립박물관에서 '52년 인천생 곰표' 전시회도 열고 있다. 곰표의 화려한 변신 덕분에 대한제분은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B2B(Business to Business) 기업으로 개인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홍보 등은 당장 매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 기업이었는데 이제는 일반 소비자에게 가장 사랑받는 B2C(business to consumer) 기업 중 하나가 되었다.

곰표브랜드의 성공이 쏘아 올린 공은 많은 브랜드의 적극적인 콜라보를 여는 포문이 되었다. 레트로 열풍을 입어 구두약의 대표브랜드 말표에서 흑맥주를 출시해 좋은 반응을 얻었고, LG전자의 전신 금성을 콜라보한 맥주도 등장했다. 진로의 두껍라면과 대상 청정원의 미원라면, 순후추 라면, 맛소금 팝콘, 시멘트회사 성신상회의 천마표 팝콘, 귀뚜라미보일러의 귀뚜라미 손난로까지. 잊혀 가던 많은 브랜드가 새 옷을 입고 소비자를 만났다. 부모세대의 향수와 자녀세대의 재미를 공략한 다양한 레트로상품이 인기를 끌었고 콜라보를 소위 '되는 마케팅'으로 여긴 유통업계에서 다양한 브랜드와 콜라보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때부터 시작이었다. 브랜드가 가진 이미지와 디자인 차용으로 재미 요소를 담았던 제품들이 자신의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해 제품을 그대로 복사해오기 시작한 것이다. 천마표 구두약과 똑같은 패키지의 초콜릿, 아모스 딱풀과 똑같은 딱붙캔디, CU의 최강미니 바둑 초콜릿, 모나미의 유성매직음료, 하이트진로의 진로 소주병 디퓨저에 이어 서울우유의 바디워시까지 외형만으로는 먹을 수 있는 것과 아닌 것의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외관을 그대로 차용해 소비자의 착각을 불러왔다. '먹을 수 있는 제품'을 '먹으면 안 되는 상품 패키지'로 포장한 까닭이다. 심지어 서울우유의 바디워시는 일부 매장에서 서울우유 가판대에 함께 비치해 놓아 새로운 우유 패키지로 오해한 소비자도 있어 문제가 되었다. 하이트진로의 진로 소주병 디퓨저도 소주잔과 함께 구성한 포장 때문에 소용량 소주로 오인하는 이들도 있었다.

재미로 시작한 콜라보가 어느새 생활을 위협하는 요소가 되어버렸다.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자 국회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나섰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는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이하 식품표시광고법)' 개정안을 발의해 '식품이 아닌 상호·상표·용기 또는 포장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것을 사용해 물품을 오인·혼동할 수 있는 표시 광고'를 금지하게 했다. 식약처는 향후 공청회를 열고 업계와 전문가의 입장을 모아 세부 규정을 마련할 예정이다.

재미가 소비의 중요한 기준이 된 지금은 콜라보 자체를 막을 순 없겠지만 정부의 이러한 규제가 위험한 콜라보를 줄여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이렇게 규제를 만들기 전에 유통업계 스스로 먼저 선을 지킬 수는 없었을까? 재미있는 소비가 마케팅의 이슈라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 또한 기업을 평가하는 중요한 이슈 중 하나다. 시장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은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는 의미임을 잊지 말자. 지금 어딘가에서는 초콜릿인 줄 알고 바둑알을 씹거나 사탕인 줄 알고 딱풀을 입에 넣는 누군가가 있을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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