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와 명예훼손, 그 경계선
표현의 자유와 명예훼손, 그 경계선
  • 승인 2021.08.03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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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광 대경소비자연맹 정책실장 경제학 박사
서울 종로구 관철동에 있는 홍길동 중고서점 외벽에 야권의 유력한 대선후보로 떠오르고 있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 부인 김건희씨를 비방하는 내용의 '쥴리 벽화'가 등장해 사회적 논란이 커지고 있다. 벽화의 첫 번째 그림에는 파란 눈과 금발의 여성 얼굴과 함께 '쥴리의 꿈! 영부인의 꿈!'이라는 글이 달려있다. 두 번째 그림에는 '쥴리의 남자들'과 일련의 남자 명단을 달아 김씨가 서울 강남의 한 유흥주점에서 쥴리라는 예명을 사용해 접대부로 일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비방이다. 이에 대해 보수단체는 차량으로 벽화 앞을 가로 막거나 검은색 페인트로 지우기도 했다. 또한 해당 그림 위에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원초적인 욕설 낙서가 그려졌지만, 지금은 그림이 지워지고 흰색 페인트로 덧칠했다.

이처럼 사회적 파장이 일자 쥴리 벽화를 그린 당사자인 여정원씨는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자신을 광주에 연고를 두고 종종 서울을 오가면서 사업을 하는 자영업자라고 소개했다. 여씨는 "처음부터 쥴리 벽화를 염두에 두고 그린 게 아니다. 재작년쯤 호주 멜버른으로 여행을 갔는데 벽화 거리에서 봤던 그림을 몇 개 뽑아 작가에게 의뢰했다. 그림이 완성될 무렵 재미있는 문구를 넣고 싶었다. 풍자적 의미로 쥴리라는 화두를 던져야겠다 싶었다."고 밝혔다. 그는 "원래 벽화를 좋아한다. 벽화는 적은 돈을 들여 많은 것을 표현할 수 있는 데다 공간에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벽화가 그려진 곳은 관광지나 포토존이 되기도 하지 않나. 예전에 수련원과 어린이 테마파크 등을 운영한 적도 있는데 그때도 벽화 많이 그렸다."고 주장했다.

홍길동 중고서점 주인 여씨는 특정 정당 소속도 아니고 정치와 무관한 사람이며, 정치적 이유는 아니라고 하면서도 "윤석열 씨가 헌법 가치관이 파괴되어 출마했다는 말을 듣고 시민으로서 분노했고 헌법적 가치인 개인의 자유를 말하려는 뜻이라고 한다"고 밝혔지만, 보수 유튜브들로부터 의혹의 눈총을 받고 있다. 쥴리 벽화에 대한 비판 여론도 거세다. 국민의힘 대선 주자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저질 비방이자 정치 폭력이며 표현의 자유를 내세운 인격 살인"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국회부의장은 "표현의 자유를 넘어선 명백한 인권침해"라고 했으며, 여권 대선후보 이재명 경기지사는 "금도를 넘은 표현"이라고 밝혔다.

반면 윤석열 전 검찰총장 측은 '쥴리 벽화'논란과 관련해 캠프차원에서 법적인 대응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윤 전총장 대선캠프의 대외협력특보인 김경진 전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정치적인 폭력이고 테러이며 사실은 해서는 안되는 반인륜적인 행위를 했다"고 밝혔다. 김 전의원은 "표현의 자유와 형법상 모욕죄 사이의 문제인데, 굳이 이런 것을 가지고 형사상 고소?고발한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라고 했다. 김 전의원은 "지우고 싶으면 지우고 두고 싶으면 두고 그냥 차라리 계란 던지고 돌덩어리를 던지려면 던지고 그러면 저희는 맞겠다"고 했다. 쥴리 벽화 파문 이후 여론조사에서 오히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지지율이 상승한 것을 보면 역풍이 될 수 있다.

이전에도 정치인에 대한 풍자가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었던 적이 있었다. 2017년 1월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전의원이 국회의원회관 로비에서 '표현의 자유를 향한 예술가들의 풍자 연대'와 공동 개최한 '곧바이전'(곧, BYE! 展)이 대표적이다. 당시 논란이 된 작품 <더러운 잠>은 이구영 작가가 프랑스 유명 화가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와 이탈리아 화가 조르조네의 <잠자는 비너스>를 혼합해 패러디한 것으로, 나체로 잠자는 여성의 모습을 그린 원작과 박근혜 대통령 얼굴을 합성했다. 새누리당 여성 의원들은 "여성 정치인 혐오가 담긴 작품 전시를 철회하라"고 반발했고,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예술에서는 비판과 풍자가 중요하지만 정치에서는 품격과 절제가 중요하다고 본다"고 비판했다.

흔히들 표현의 자유는 우리 헌법에 정해진?자유권적 기본권의 하나이며,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억압 또는 검열 없이 표현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한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를 극단적으로 수용하게 되면 반인륜적, 반사회적 인물들의 표현이 사회에 범람할 위험이 있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는 과정에서 타인의 명예와 권리, 공중도덕, 또는 사회윤리를 침해해서는 안된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풍자이고 표현의 자유'라는 주장과 '명예훼손 내지 모욕의 범죄'라는 상반된 주장은 명확하게 구분하기에는 그 경계선이 애매모호하다. 이러한 문제는 우리 사회의 합리적인 지성과 이성이 작동하면 자정될 수 있겠지만, 정작 여성 권리를 신장시켜야 할 여성단체마저도 정치적 이해관계를 따른다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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