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승인 2021.08.04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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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리

살아 번잡한 서문시장
여전히 잡다한 생필품도 팔고
영가靈駕 태우는 옷, 수의도 팔고
하체 없이 바닥을 기는 사내의 고무줄 나프탈렌도 팔지만
누군가의 고단하고 딱한 하소연도 팔았다

순대 파는 노점에게
언니라 부르는 여자가 다가와
닥치는대로 일하다 보니 손가락이 나갔다며
쳐든 손을 내보이는데
언젠가 내소사 암 걸린 전나무등걸처럼 마디마디 옹이박힌
관절통의 손 하나가 보였다

손가락 일 피한다고
폐백실에 취업시켜준다는 사람에게
그렇게 번 돈 삼백을 주었더니
자취 감추고 소식 없다 한다

살아 번잡한 서문시장
아무리 소리쳐도 듣는 이 없는,
아무도 사가지 않는 그녀의 하소연만
인파 사이로 흘러 다니고 있었다

◇이해리= 경북 칠곡 출생. 1998년 사람의 문학으로 활동 시작, 평사리문학대상 수상(03년), 대구문학상 수상(20년),한국작가회의 대구부회장 역임, 현재 대구시인협회 이사. 시집: 철새는 그리움의 힘으로 날아간다, 감잎에 쓰다, 미니멀라이프, 수성못<20년 학이사>외.

<해설> 서문시장의 일상을 로맨틱하게 역설하고 있다. 어느 여인의 고달픈 삶의 여로가 가슴을 뭉클이게 한다. 하긴 흙수저의 무미건조한 변명도 아니다. 현실적 슬픔의 고단이 묻어있어 독자의 심금을 울리게 되리라. 특히 빈과 부의 어두운 흙 장막에 갇혀 사는 현금의 우리 사회를 고발하고 있어 비장미마저 흐른다. -제왕국(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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