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위기의 중년
코로나 시대, 위기의 중년
  • 승인 2021.08.08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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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미
대구시의사회 부회장
마음과 마음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코로나 장기화로 정신과를 방문하는 환자 군에도 변화가 생겼다. 평소에는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았는데 요즘은 남자, 특히 중년 남성의 방문이 눈에 띄게 늘었다.

“잠이 안와서 약 받으러 왔어요.” 며칠 잠을 설쳤다는 중년 남성은 얼굴에 피로감이 그득 했다. “근래에 스트레스가 많았나 봅니다.” 마음 문을 여는 질문을 했다. 그랬더니 남자의 반응이 “내가 스트레스 관리도 못할 정도로 나약하게 보여요? 난 그런 거 없고 그냥 잠이 안오는 거니까 여러 말 묻지 말고 약 처방이나 해주소.”

만약 수면제 처방으로 진료를 끝낸다면이 분은 어떻게 될까. 위험한 결론이 떠오른다. 실종, 자살, 등등. 자살하는 사람은 사회적 고리가 완전히 사라질 때 선택하기 쉬워진다. 위기의 남자에게 고리를 연결하는 질문을 계속 했다. 코로나로 사업도 막히고 부부 간에 다툼도 늘어나고 돈이 없으니 자식도 아버지를 무시하더라면서 그간의 힘겨웠던 속내를 털어놓는다. “너무 힘드셨겠어요.” 한마디 던진건데 갑자기 눈물을 흘리신다. 정신과에는 울지 못하는 사람을 위한 눈물방이 있다. 혼자 안심하고 실컷 울 수 있는 공간이다. 눈물은 명약이다.

남자들은 속마음을 드러내고 싶은데 표현할 줄을 모른다. 중년 남성들에게 자신의 기분을 나타내는 형용사를 나열하라고 하면 이내 말문이 막혀버린다. ‘기분이 개안타. 안좋다. 그냥 그렇다.’ 이 범위 이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드물다. <감정 난독증>이라고 할까. ‘소년은 울지 않는다,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 운다.’ 는 등 남성에게 감정을 드러낼 기회를 억압한 사회적 통념 때문이리라. 요즘 극단으로 치닫는 이십대 남성의 페미니즘에 대한 반격은 남성성을 강조한 무거움에 대한 반동 현상이 아닐까.

요즘은 파산신청을 위한 진단서를 요청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코로나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업을 접어야 하고 건강도 나빠지고 집에 있기가 눈치보여서 사무실에서 생활한지 몇 달된다고 하는 분들도 많다. 그런데 이런 남자들의 공통점이 있다. 혼자 힘든 사정을 안고가려는 것. 가족이 알면 걱정만하지 아무 도움이 안된다는 것이다. 사방이 막혀있고 해결책이 안보이면 실종되고 싶어한다.

얼마전 신문에 유명 축구 선수의 기사를 본적이 있다. 현실적으로 힘들어지자 세상을 등지고 산속으로 들어가 자연인으로 생활하고 있단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사라지고 싶어서 라고 했다. 남자들은 자신이 약해진 모습을 보이기보다는 차라리 사라지려고 한다. 자신이 소멸해야 한다는 악몽에 사로잡히게 된다. 사실 실종된다고 해서 현실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며 원인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요즘은 물리적 소멸을 꿈꾸는 남성들을 위한 구조 작업이 더욱 필요하게 되었다. 자신의 소멸을 긍정적으로 미화한다면 소멸하려는 자살이 늘어날 것이고 이는 결국 사회의 쇠퇴로 이어질 것이다.

우리는 인생에 고통이 없기를 바란다. 고통이 없는 순간은 죽은 순간이다. 우리는 살고자 하면서 고통이 없기를 동시에 바란다. 모순이다. 고통을 극복하려고 해결책만 찾지 말고 그냥 바닥을 딛고 일어서 있으면 된다. 바닥을 치면 다시 올라가는 것이 순리인데 우리는 바닥을 견디지 못하는 좌절 강박증에 시달린다. 아버지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가족들 곁에 있어주는 것, 존재 자체로 위로가 되는 것. 돈으로 바꿀수 없는 진정한 사랑하는 사람들, 가족 곁에서 산산조각나면 산산조각나 살면 되지.

어느 소설가의 소설의 한 대목을 빌어왔다. ‘아버지 된 자의 손은 궂은일과 마른일을 가리지 않는다. 자식의 머리를 쓰다듬는 손과 궂은일을 하는 손은 별개가 아니다. 너도 이제 아버지가 됐으니 네 손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가리지 마라. 네 손이 하는 수고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지 마라. 아버지 된 자, 남편 된 자가 처자식을 먹이고 입히는 일은 칭찬이나 상 받을 일이 아니다. 네 처자식이 네 평생의 상장임을 잊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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