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일상을 비추는 스포트라이트…국제갤러리 부산점 박진아展
익숙한 일상을 비추는 스포트라이트…국제갤러리 부산점 박진아展
  • 황인옥
  • 승인 2021.08.10 2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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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냅 사진 재구성한 회화 17점
표정 흐리고 움직임은 명확하게
조명빛으로 장면 비춰 찰나 강조
박진아개인전이국제갤러리부산점
박진아 개인전이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9월 12일까지 열린다.
 
박진아 작가
박진아 작가

조연보다 주연으로 살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은 소수에 불과하고, 대신 인간은 대리 만족을 택한다. 누군가의 스포트라이트 순간을 함께 공유하며 환호하는 것이다. 의미 있는 행위나 특별한 결과에 초점을 맞추는 태도는 현대인이 환호할 대상을 선택하는 일반화된 관점이다.

최근에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개인전을 개막한 박진아 작가의 의식은 일반화된 관점과 거리를 둔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특별한 대상 보다, 일상에서 무심하게 지나치는 소소한 대상들에 마음을 빼앗긴다. 소소한 대상들이 작가의 의식 속에서 재구성 되면서 특별함으로 거듭난다. 이번 전시에는 ‘의미없는’ 일상의 장면들을 ‘의미있음’으로 포착하고, 회화로 표현한 작품 17점을 걸었다.

화면 속 장면들은 우연성의 결과다. 우연히 길을 가다 발견된 장면들이다. 그런데 그 우연적인 발견들에서 하나의 공통분모를 추출할 수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움직임’이다. 전시장에 걸기 위한 그림의 포장을 뜯고 있거나, 촬영을 위한 조명을 조작하고 있거나, 공연이 끝난 후 장비들을 철수하고 있거나,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며 폭죽을 터트리며 즐거워하거나 등 장면 속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움직임이 발견된다. 움직임은 박 작가의 화면에서 서사를 이끌어가는 중심축이다.

박진아 작 '공원의 새밤' 연작
박진아 작 '공원의 새밤' 연작

 

작가에게 ‘움직임’은 개념을 확장하는 출발선이다. ‘움직임’이라는 행위로부터 새로운 개념들이 뻗어나가는데, 이를테면 ‘시간성’ 같은 것이 해당된다. 작가는 움직임을 포착한 찰나의 순간에서 전·후의 진행과정을 유추할 수 있음을 발견하고, 찰나의 순간을 표현하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라는 ‘중첩된 시간성’으로 확장해낸다. 그림을 그리면서 물감을 중첩해 바르는 것 또한 시간의 중첩 효과를 높이는 방식으로 활용된다.

박 작가는 “평범한 일상의 동작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려 했다”고 언급했다. “시간을 쪼개어 찰나의 순간을 그리지만 찰나적으로 사라지는 그 한 조각의 시간 속에서 전체의 시간을 발견하려 한다.”

인물의 표정이나 행위는 중성적으로 표현된다. ‘어떤 표정인지?’, ‘어떤 행위를 하고 있는지?’가 명확하지 않다. 이런 표현 방식은 ‘움직임’에 집중하기 위한 선택이다. 작가는 시간성에 다가가기 위한 강력한 매개체인 움직임들이 얼굴의 표정이나 행위의 명확성으로 희석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인간을 다루지만 인간의 감정은 관심사가 아니다. 의식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오는 일상의 자연스러운 행동들이 내게는 중요하다. 순간성이 드러나는 동작들에서 중첩되는 시간들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움직임’으로부터 파생된 또 하나의 개념은 ‘일상의 재해석’이다. 작가는 의미를 두지 않는 일상의 움직임을 ‘긴장감’으로 치환하며, 일상의 비일상화를 이끈다. 그는 “나는 회화를 통해 일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환기한다”며 일상의 특별한 지점을 건드렸다. 특별하지 않은 일상이 작가에게는 오히려 흥미로운 지점인 것.

특별하지 않은 일상 속 행위는 인공조명 아래서 반짝인다. 이번 전시 제목 또한 ‘휴먼 라이트(Human Lights)’다. 인간이 만든 빛, 인공조명을 의미한다. 회화가 빛의 예술인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작가는 회화에서 자연의 빛보다 인공 빛을 더 선호한다. 그림 속 장면들이 전시장, 공연장 또는 밤 장면 등 주로 인공조명을 사용하는 장소들인 것만 봐도 그의 취향을 알 수 있다. ‘공원의 새밤’, ‘도시 서퍼’, ‘무대 정리’ 연작 등에서 불꽃이나 전등 같은 조명의 빛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하게 된다.

“‘인간의 문화가 빛을 조정하면서 시작되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에서 인공조명을 바라보게 됐다.”

박진아 작 '무대 정리'
박진아 작 '무대 정리'

 

빛에 대한 특별한 관심은 1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작가는 카메라 플래시 라이트를 터뜨려서 찍었던 사진들을 바탕으로 해서 그림을 그렸다. 이번 전시에는 2007년 작 ‘문탠(moontan) 04’이 신작들과 함께 걸려 신작과 비교하는 재미를 더한다. 한밤 공원에서 달맞이 놀이를 하는 친구들을 찍은 장면을 그린 작품인데, 카메라 플래시 효과 때문에 인물들은 선명하고, 인물 뒤의 배경은 온통 까맣다.

인공조명에 대한 선호는 반복적인 선택의 결과였다. 밤풍경이나 전시장, 공연장 등의 인공조명을 필요로 하는 장소들을 그리면서 인공조명의 효과에 더욱 빠져들게 됐다. “인공조명에서 굉장히 드라마틱한 효과를 발견하게 됐다. 비록 감정을 드러내는 데 관심이 없는 듯 무심하게 그리지만 하얗게 칠해진 빛은 내게 흥미로움이다.”

작업은 세 단계로 진행된다. 일상적인 장면 속 찰나의 순간을 스냅사진으로 포착하고, 사진 속 장면들을 재구성해 드로잉 한다. 그런 후에 회화로 옮긴다. 세 단계 속에는 ‘우연’과 ‘필연’이 교차한다. 스냅사진을 찍을 때 간혹 의도하고 찾는 장소도 있지만, 대개 우연적으로 만나지는 대상을 포착한다. 하지만 회화로 이동하면서 화면을 재구성하는 과정에 작가의 의도는 한껏 개입된다.

박 작가에게 회화는 단순한 이미지를 넘어선다. 시차가 있는 사진들을 물성을 이용해 자신만의 회화적, 화가적 시점으로 재조합하며 회화성과 물질성을 즐긴다. 단순한 재현의 굴레에서 벗어나 회화적 표현의 방향을 모색하는 것. “내게 회화는 이미지이자 물질이다.”

박 작가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런던 첼시미술대학에서 순수미술 전공으로석사학위를 취득했다. 2010년 에르메스 미술상 최종후보로 선정된 바 있다. 작품은 서울시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대구미술관 등 주요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서울과 독일을 오가며 작품활동을 펼치고 있는 작가는 서울과 독일에서 만난 일상의 풍경을 그린다. 특히 중심보다 주변부에서 시선을 빼앗긴다. 주변부의 소소한 대상들이 그녀가 비추는 눈부신 스포트라이트 아래서 주인공처럼 반짝이며 빛을 낸다. 이러한 태도는 주변부에 대한 본능적인 애정의 결과로 풀이된다. 작가에게 주변부는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보고의 다른 이름인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작품의 해석에서 만큼은 관람자의 몫으로 돌려놓는다.

“특별한 감정을 알 수 없도록 사람의 표정을 중성적으로 표현한 것은 열린 해석을 위해서였다. 나는 내가 본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지만 그들까지 내가 본 대로 보기를 원치 않는다. 해석은 각자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다.” 박진아 개인전은 9월 12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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