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우면 말을 한다 - 혀를 사용하는 앵무새
외로우면 말을 한다 - 혀를 사용하는 앵무새
  • 승인 2021.08.19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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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후섭 대구문인협회장·교육학박사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면 앵무새나 구관조 등 일부의 새들이 사람의 말소리를 능숙하게 따라합니다. 국악에서 창(唱)을 하는 사람처럼 목소리를 꺾기까지 합니다.

이에 대해 과학자들은 앵무새가 소리를 낼 때에 인간들처럼 혀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고 합니다. 즉 지금까지는 목구멍이 볼록거리는 것을 보고 성대(聲帶)를 조절하여 소리를 낸다고 생각해 왔으나, 최근 일부의 새들이 무엇을 찾고 어떠한 기분을 느끼느냐에 따라 혀도 함께 사용한다는 것을 밝혀낸 것입니다.

그럼 왜 새들은 상황에 따라 다른 소리를 내는 것일까요? 이에 대한 답은 말하는 코끼리에서 시사점을 얻을 수 있으리라 봅니다.

우리나라 에버랜드의 인도코끼리 ‘코식이’는 ‘말하는 코끼리’로 널리 보도된 바가 있습니다.

코식이의 이런 특별한 능력이 토픽으로 해외에 알려지자, 오스트리아 빈 대학 인지생물학자 등 연구자들이 찾아와 코식이의 ‘말’을 녹음하여 음성학적으로 분석하는가 하면, 코식이가 어떻게 말을 시작하게 됐는지 등을 알아보았습니다.

우선 코식이가 흉내 내는 단어 6개를 녹음하여 16명의 한국인에게 들려주고 소리 나는 대로 적어보라고 하였더니 ‘안녕’, ‘앉아’, ‘아니야’, ‘누워’, ‘좋아’ 등 5개를 성공적으로 흉내 낸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고 합니다.

자음보다는 모음을 정확히 발음했는데, 모음을 제대로 흉내 낸 비율은 67퍼센트였습니다. 이것은 코끼리가 긴 코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음에서는 새들보다 더 유리하지 않은가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코식이가 특히 자주 만나는 사육사 목소리의 음색과 높이를 고스란히 재현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코식이가 왜 ‘말’을 따라 하기 시작했을까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연구진은 이 코끼리의 생애사에서 그 단서를 찾았습니다. 코식이는 1990년 서울대공원에서 태어나 1993년 에버랜드로 옮겨졌습니다. 그로부터 2년 뒤까지 두 마리의 암컷 인도코끼리와 함께 지냈습니다. 하지만 1995년부터 2002년까지는 홀로 지냈기에 사육사가 유일한 동료였습니다. 사육사는 코끼리를 돌볼 때마다 우선 ‘안녕?’, ‘물러 서!’, ‘앉아!’, ‘좋아!’ 등과 같은 말로 코끼리를 대했을 것입니다. 이에 코식이가 그 소리를 듣고 말을 따라하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인지심리학자들의 결정적 시기(critical period) 가설을 떠올리게 합니다. 언어 습득에는 가장 효율성 높은 습득 시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코식이는 이러한 시기에 사육사와 지냈고, 따라서 사육사의 말을 고스란히 습득하지 않았을까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사회적 환경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골 할머니에게 맡겨진 도시 아이들이 금세 할머니의 말투를 따라하고, 행동거지 또한 닮아간다는 사실이 떠오릅니다.

코끼리는 다른 동물에 비해 지능이 우수하고, 집단생활을 하는 등 사회성이 발달된 동물입니다. 따라서 코끼리들은 무리들끼리 의사소통이 많아야 하므로 나름대로의 언어를 구사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연구진은 이런 배경으로 보아 “코식이가 사람의 말을 흉내 내게 된 결정적인 요인은 유대와 발달이 중요한 시기에 동료 코끼리 없이 인간과만 접촉할 수 있었던 사회적 결핍 때문”일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지적이고 사회적 동물인 코끼리 코식이는 외로움을 이기려고 사육사에게 말을 거는 방법을 알아냈던 것입니다. 이것은 음성 학습을 통해 전혀 다른 종(種) 사이에도 의사소통이 제한적으로나마 이루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라 하겠습니다.

코끼리는 선한 표정과 동작으로 동물원에서 매우 인기 있는 동물 중의 하나이지만, 긴 속눈썹에 감춰진 눈망울에는 무리와 헤어진 슬픔이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래도 외로우면 말을 배우게 된다고 결론을 내려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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