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 한 그릇
짜장면 한 그릇
  • 승인 2021.08.29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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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숙 시인
애월을 돌아 나오며 마지막으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겨우 한두 번 신호가 건너갔을 뿐인데 수화기 너머 그리던 그의 목소리가 화수분처럼 건너온다.

“하필, 지금이고. 진즉에 전화했어야지. 온다간다 소리도 없이 와서는 앞뒤 다 잘라먹고 힁허케 간다고 하니 억수로 섭섭하네. 너무 한 거 아이가”

한마디 대답할 새조차 주지 않은 채 그는 발등에 불이 덴 듯 다급한 말들의 바통을 귓전으로 바짝 들여보낸다.

“우짜노. 밖에 일이 있어 나가는 중인데. 아쉽지만 못 만날 것 같아. 다음엔 미리 전화라도 꼭 좀 주고 와. 잘 가.”

그는 못내 아쉬운 듯 전화를 끊었다. 나름 배려한답시고 그런 건데 그는 어지간히 속이 상했나 보다. 여행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 공항에 다다를 즈음이었다. 언제 다시 찾게 될지 모를 그곳을 떠나오며 맛집에 들러 따뜻한 밥이나 한 끼 먹였으면 하는 마음에 전화를 걸었던 것인데…. 일부러 시간 내어 만나진 않아도 여기까지 와서 그냥 모른 채 지나쳐 버리기엔 꺼지지 않는 ‘마음 빚’이 남아있는 우린, 서로 잘 지내는지 안부를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밀린 숙제를 끝낸 후의 안도감처럼 ‘잘 지내니 되었다’ 위안이 되는 그런 친구 사이다.

그와 나는 초등학교 동창이다. 나는 육지에 그는 섬, 제주에 산다. 나는 글 쓰는 일이야말로 내 삶의 처방전임을 믿고 사는 작가가 되었고 그는 인간과 신 사이, 섬과 섬 사이에 놓인 가교처럼 삶의 길목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양들의 목자가 되었다.

결혼 후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낳고 살아가는 나에 비해 그는 딸 둘에 아들 하나를 낳아 세 자녀의 아빠로 살아간다. 졸업 후 수년이 지난 어느 날. 동창회에서 그를 다시 만났을 때 내가 그에게 했던 첫말은 ‘고맙다’였다. 한 여자의 남편으로 세 아이의 아빠로, 거뜬한 가장으로 그가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신의 은총이며 축복이라 여겼다.

여행에 동행한 딸내미와 한참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데 불쑥 그가 우리 앞으로 걸어 들어온다. 도저히 그냥 보낼 수가 없었다고 한다. 밥값을 치를 수 있는 지금의 기회를 놓친다면 사는 내내 영영 후회로 남을 것만 같아 약속을 미룬 채 차를 돌려세웠다는 것이다. 늦어서 미안하다며 애써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인다.

“웬 밥값?”

궁금해 하는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대답 대신 그는 어딘가로 급히 전화를 걸었다. 누구에게 어떤 용건으로 거는 것 까진 알 수 없었지만 속삭이듯 나누는 그들의 대화가 몹시 다급해 보인다는 것쯤 그의 표정에서 읽을 수 있었다.

‘저리 바쁜걸. 그냥 제 볼일을 보면 될 것을. 굳이 여기까지 오지 않아도 괜찮은데. 괜히 전화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에 닿으니 그에게 진 ‘마음 빚’의 온도가 몇 도는 족히 올라간 듯하다. 식사를 중단한 채 그를 빤히 올려다보고 있던 그때였다.

“밥값이다. 공항 가는 길에 잠시 들러 찾아가. 내 이름 대고.”

수줍은 듯 얼굴을 붉히며 한마디 툭, 던지고는 계절의 속도처럼, 꽃이 피고 지는 속도처럼 ‘간다’를 남기고는 문밖으로 성급히 달려 나간다. 살다 보면 세상엔 그 어떤 것도 그저 얻어지는 법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때가 오는 것 같다. 마음 한 조각, 말 한마디조차 그러한데 밥 퍼 주는 밥보시야말로 말해 뭣할까.

열두 살쯤 되던 해, 우리 집은 중국집을 했다. 육십 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졸업식이나 좋은 날, 상이라도 타는 날이면 부모님의 손을 잡고 시내에 나가 마냥 신나게 짜장면을 먹던 기억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 시절, 주변에 고아원은 또 얼마나 많았던지. 내가 다니던 학교에도 같은 반에 대략 예닐곱쯤은 껴 있었으니까. 그는 그들 중 한 명이었다.

짜장면 몇 그릇 팔아봐야 몇 푼 남지 않는다는 것쯤 알 만큼 시근이 멀쩡했던 나이였다. 그런데도 수업을 마치면 곧장 친구들을 데리고 가선 가게 뒷문을 통해 집안으로 들여보낸 후 내가 먹을 거라며 떼를 쓰기 일쑤였다. ‘우리 숙이가 오늘은 배가 엄청 고팠구나!’라며 보통을 시켰음에도 곱빼기에 곱을 더해 내어 주시던 아버지, 돌이켜보면 모든 걸 다 알면서도 늘 모른 채 눈감아 주셨던 것이었음을.

집으로 돌아와 짐을 푸는데 그에게서 문자가 온다. “아무리 먹어도 몸도 맘도 배고프고 허기지던 시절, 느그 아부지가 내게 베풀어 준 짜장면 값이다, 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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