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묵의 배합이 이끈 구도자의 경지…호반갤러리, 정선 스님展
농묵의 배합이 이끈 구도자의 경지…호반갤러리, 정선 스님展
  • 황인옥
  • 승인 2021.08.31 21:4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0여년 수묵 독학 빛난 결과
화조 30여점·병품 2점 공개
그림에 불교 경전 옮겨 적어
“부처의 가르침 전달하는 꽃”
박용국 작
박용국 10폭 병풍 중 일면.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신 오대산 월정사의 적멸보궁을 참배하며 간절한 소원 하나를 염원했다. “많이 부족하지만 부처님의 가피(加被)로 절 불사의 일과 일필휘지로 선묵화를 자유자재로 하는 재능을 달라”며 부처님께 빌고 또 빌었다. “자유자재의 선묵화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파하겠노라”고. 며칠 후 부처님은 “너는 원대로 성취할 수 있을 것”이라며 목탁과 큰 붓 한 자루를 건네 주셨다. 깨고 보니 꿈이었다. 대한불교 조계종 대구 길상사 주지인 심허당 정선 스님(속명 박용국)의 수묵화(水墨畵)는 부처의 가피가 이끈 깨달음과 포교를 위한 선묵화(禪墨畵)였다.

정선 스님 먹물 수행의 정수를 만나는 전시가 ‘선묵일여 일필휘지(禪墨一如 一筆揮之)의 묘용(妙用)’을 주제로 수성아트피아 호반갤러리에서 개막했다. 일필휘지의 기운으로 표현한 매(梅), 난(蘭), 국(菊), 죽(竹) 사군자와 소나무, 연꽃, 목련, 능소화, 장미, 수선화 등 문인화 화조 30여점을 모았다. 작품 구성은 8m 40㎝ 길이의 병풍 2점을 비롯해 다양한 크기의 족자 등 다채롭다. 평소 법문할 때 인용했던 부처의 말씀을 화제로 적고 그림으로 풀어낸 작품들이다. 스님은 “내 작품들은 일필휘지로 드러낸 마음의 농담(濃淡)이자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꽃”이라고 표현했다.

1978년에 출가한 정선 스님이 붓을 잡은 지는 37년 정도 됐다. 취미로 시작한 그림은 자연스럽게 수행과 포교의 방편으로 확장됐다. 그는 “참선 수행하는 마음가짐으로 잡았던 붓이 이제는 한 몸과 같이 되었다”며 수묵화가 가지는 의미를 설명했다.

수묵을 향한 그의 의지는 기나긴 독학으로 점철됐다. 심천 양시우, 학정 정성근, 야정 서근섭 등을 스승으로 두었지만 국내 여러 사찰을 옮겨 다닌 탓에 독학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40여년이 흐른 지금, 미술 전공자는 아니지만 “전공자를 능가한다”고 자부하는 자신감에서 스님의 수묵화에 대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첩첩산중 고요한 절에서 번뇌를 끊고 해탈하고자 하는 열망이 정선 스님이라고 없지 않았을 것인데, 그는 도심의 주택가에 둥지를 틀었다. 주택을 절로 개조하여 길상사라는 청정도량을 세웠다. 용맹정진하여 스스로 부처가 되는 것 못지않게, 중생구제가 중요했던 까닭이었다.

“그림을 통한 포교”라는 소신에서도 알 수 있듯, 그에게 포교 방식은 설법과 선묵화로 양분된다. 설법과 선묵화를 포교의 양대산맥으로, 대중의 선묵화 전수에 뛰어들었다. “선묵화에 매진하면서 그림의 힘을 경험하게 됐다. 그림을 통해 포교를 하겠다는 계획은 내 경험의 산물이었다.”

그의 선묵화는 그림 위에 쓰는 시문에 부처의 말씀이나 불교 경전을 기록하는 화제(畵題)가 형상 못지않게 중요하다. 포교의 핵심 방편이기 때문이다. 선묵화를 통한 포교는 두 가지 방향으로 전개된다. 스님 스스로의 작품 활동과 대중에게 선묵화를 가르치는 일이다. 길상사 삼소정에 서화원을 마련하고 선묵화를 전수하거나 대구대 평생교육원, 수성구청, 한국마사회, 청소년수련관 등의 외부 단체를 통해 선묵화의 깊이와 맛을 대중에게 전하고 있다.

“삼소정은 세 번 웃고 가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선묵화를 접하며 부처의 가르침을 깨우치고 그것을 통해 행복에 이르기를 바라는 의미와 연결되어 있다.”

스님의 운필은 기운생동한다. 일필휘지의 기운으로 단숨에 화선지를 사로잡는 기운과 굵은 선이 주는 농담이 담백함으로 드러나고 있다. 때 묻지 않은 구도자의 경지를 붓 끝에 실은 결과다. 스님은 “그동안의 수행과 경륜이 격외(格外)의 묘로 드러난 것”이라고 언급했다. 세속의 형식과 논리를 뛰어넘은 선지식의 경지라는 것.

스님의 노력은 상을 통해 보상받았다. 대구미협 초대작가상, 국제미술제 최우수 작가상, 대한민국미술대전 우수상 등 공모전 50회 수상, 대구미술인상 등 다채로운 수상 경력을 자랑한다. 스님은 “내게 주어졌던 많은 상들이 열정을 일깨우는 스승이 되었다”고 회상했다.

그의 그림은 無念(무념), 無常(무상), 無我(무아)의 마음에서 깊은 마음 짧은 순간을 화폭에 담아 여백의 운치를 살려 완성된다. 수묵(水墨)의 일필휘지의 매력과 수행의 일부인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사교입선(사교입선), 활연대오(豁然大悟)라는 선의 깊이를 간결하고 굵은 선과 가는 선의 조화에 따른 농묵(濃墨)의 적절한 배합이 이끈 마음의 경지다.

스님은 “이번 전시가 수도자와 전업작가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미술인 및 대중들과 소통을 넓히는 장이 되기를 희망한다”는 전시 소감을 전했다.

스님의 법문집 ‘사문 심허당 정선(沙門 心虛堂 定禪)스님 법문(法門) 한자락, 선묵일여 일필휘지의 묘용(禪墨一如 一筆揮之의 妙用)’ 출판기념회를 겸하는 이번 전시는 12일까지. 053-668-1566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