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동학의 세상읽기] 아프가니스탄과 고선지장군
[류동학의 세상읽기] 아프가니스탄과 고선지장군
  • 승인 2021.09.13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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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동학 혜명학술원 원장
20년간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한 미국이 완전철수하면서 아프가니스탄은 다시 탈레반의 공포정치가 판을 칠 기세이다. 아프가니스탄은 문명의 교차로 역할을 하는 내륙국이다. 역사적으로 중동과 아시아의 여러 지역의 문화가 만나는 곳이었으며, 여러 세기를 거쳐 다양한 민족들의 고향이 되었다. 아프가니스탄은 북쪽은 투르크메니스탄·우즈베키스탄·타지키스탄, 북동쪽은 중화인민공화국, 동쪽과 남쪽은 파키스탄, 서쪽은 이란과 맞닿아 있다. 수도는 카불이다. 다민족 국가로서 주류 민족인 파슈툰족을 비롯해 타지크족, 하자라족, 우즈베크인, 아이마크인 등이 거주한다.
19세기 말, 영국령 인도 제국과 러시아 제국이 "그레이트 게임"(The Great Game)을 벌이는 가운데 아프가니스탄은 두 제국의 완충국으로 전락하였다. 제3차 앵글로-아프간 전쟁 이후 1919년 8월 19일에 이 나라는 대영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였다. 1970년대 말부터 아프가니스탄은 내전 상태에 들어갔으며, 1979년에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2001년 미국 주도로 탈레반을 축출한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외국의 점령을 겪게 되었다. 아프가니스탄의 면적은 652,230 ㎢으로, 세계에서 41번째로 넓은 국가로 프랑스보다 조금 넓고 인구는 대략 37,132,065명이다.
아프가니스탄 바다흐샨주의 와칸회랑은 8세기의 당나라의 고선지장군이 지배한 지역이다. 이 지역은 파미르 고원을 동서로 관통하고 중화인민공화국, 파키스탄, 타지키스탄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면적은 44,059 ㎢이고, 인구는 대략 백만명 정도이다. 특히 바다흐샨주의 와칸회랑(Wakhan Corridor)은 해발 4900m 전후의 고지대로 남북 16~22㎞, 동서 350㎞의 길쭉한 골목으로 동쪽 끝이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와 연결돼 있다. 이 지역은 예전에는 타클라마칸 사막을 통해서 회랑의 남쪽 힌두쿠시산맥과 북쪽 파미르고원 사이에 놓인 중국과 서역을 연결하는 실크로드의 일부였다. 8세기 통일신라의 왕오천축국전을 저술한 혜초 스님과 13세기 이탈리아의 마르코 폴로가 이곳을 통해 중국으로 건너가기도 했다.
고선지(? ~ 756년)는 고구려의 후예로 당나라에서 태어났다. 668년 고구려가 멸망한 후 고선지의 아버지인 사진교장 고사계도 당나라의 장군으로 활약했다. 고선지가 20살 때 간쑤성 우웨이(무위)에서 약 2200㎞ 떨어진 안서도호부가 있는 신장의 쿠처로 갔다. 그는 장군이 되어 달해부를 정복하고 747년 당 현종의 명을 받아 토번의 영향권에 있던 파카스탄의 길기트지역인 소발률국을 원정을 하게 되었다.
고선지가 1만명의 병력을 이끌고 출발한 지역은 신장의 쿠처이다. 쿠처는 고대 불교국가 구자국(龜玆國)으로 안서도호부가 있던 곳이다. 쿠처는 신장의 우루무치에서 남서쪽으로 약 760㎞ 떨어진 곳이다. 여기서 다시 남서쪽으로 710키로 가면 신장 위구르인의 정신적 고향인 카슈가르(소륵)가 나오고 약 300㎞ 더 들어가면 타슈쿠르간(총령수착)이 나온다. 여기서부터는 험준한 산악지대가 형성되는 파미르지역이다. 파미르는 해발 5천 미터의 고원, 천산산맥, 히말라야, 힌두쿠시, 카라코람 등 다섯 개의 험준한 산악지대와 연결되어 있어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곳이다.
즉 고선지는 소발률을 정복하기 위하여 747년 군사 1만 명을 이끌고 오식닉국(지금의 Shignan 지방)을 거쳐 파미르 고원을 넘어 토번족의 군사기지인 아프가니스탄 와칸지역의 연운보(連雲堡,사르하드)를 격파하였다. 연운보를 확보한 것은 당이 670년 토번에게 안서4진을 점령당한 이후 상실한 중앙아시아지역의 종주권을 회복한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리고 계속 진격하여 험난하기로 이름난 탄두령(현재의 파키스탄 북부의 다르코트 정상)을 넘고 소발률국의 수도 아노월성(파키스탄의 길기트)을 점령했다. 고선지는 제1차 원정에서 72개국으로부터 항복을 받았다. 시성 두보가 고선지 장군을 찬양하는 시를 짓기도 했다. 정확히는 그의 애마를 칭찬하는 시다.
750년 제2차 원정에 나가 사라센 제국과 동맹을 맺으려는 우즈베키스탄의 타시켄트의 석국(石國)을 토벌하고 국왕을 잡아 장안으로 호송하였다. 이에 서역 각국과 사라센은 이듬 해 연합군을 편성하여 키르기스스탄의 탈라스(Talas)의 대평원으로 쳐들어왔다. 이를 막기 위하여 고선지는 다시 7만의 정벌군을 편성하여 제3차 원정에 출전하였다. 그러나 동맹을 가장한 카를루크가 배후에서 공격하자 패배하고 후퇴하였다. 이것이 세계사적으로 유명한 751년의 '탈라스 전투'이다. 이후 고선지 장군은 755년 현종 재위시에 일어난 안록산의 난을 진압하는 총사령관으로 있다가 변영성의 무고로 처형당하고 말았다. 프랑스의 동양학자 샤반느(Chavannes, Ed.)와 영국의 유명한 탐험가 슈타인(Stein)은 고선지를 알프스를 넘은 한니발과 알렉산더을 뛰어넘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천재적인 전략가로 평가하였다. 또한 세계 최초로 섬유질의 제지법이 고선지에 의해 유럽에 전파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주목할 만하다.
아프가니스탄 사태를 보면서 북한, 러시아, 중국, 일본, 미국이 에워싼 대한민국의 현실이 오버랩된다. 어느 나라나 약육강식의 환경에서 부국강병만이 생존할 수 있다는 진리를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대룩과 해양의 교차로 대한민국의 현실은 어떤가? 자유가 넘치는 부국강병의 나라로 가고 있는가? 21세기에서 1300년 전의 고구려의 후예 고선지장군의 기상을 회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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