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데 우리는 과연 이 변화 속도에 걸맞게 업그레이드되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괜스레 숨이 차오릅니다.
문득, 난생처음 키오스크와 당당하게 맞짱 떴던 첫 경험이 떠오릅니다. 지금이야 키오스크 방식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고 기능도 좋아져서 활용법이 별것 아니라 생각할 수 있지만 처음 키오스크를 만났을 때는 무척 까다롭게 느껴졌습니다.
처음에는 뭣도 모르고 미디어 친화적이라 자부하며 호기 있게 덤볐지만 몇 번의 시도가 먹히지 않아 솔직히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살짝 들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꾹 참고 끝내 키오스크와소통했을 때의 그 기분은 마치 책을 읽고 맥락을 찾아 글의 화두를 찾아낸 것처럼 대견스러워 살짝 흥분되기도 했었던 기억이 생각나 웃음이 납니다.
그런데 요즘은 카페, 식당, 대형마트, 병원 등 어디를 가든지 키오스크가 버티고 있으니 짧은 탐색을 통해 키오스크와 즉각적으로 친해져야만 수월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어른 세대는 이들과의 즉각적이고 원활한 소통이 아직은 부담스럽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고, 거기에다 ‘나일리지(나이+마일리지: 나이가 많다고 무조건 대우해 주길 바라는 행동)’, ‘밀레유세(밀레니얼 세대하고 유세부림)’ 등 눈만 뜨면 속속 생겨나는 생소한 신생어들로인해 평상시 사용하는 단어들이 시시각각 낡아지는 세상에서 마치 이방인이 된 듯한 소외감에젖어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뉴미디어 친화적 어른이라 자부해 보지만 시대적 변화 속도를 따라잡기는 역부족임을 실감하고 있을 즈음 뭘 하려고 했는지 생각나지 않아 멍하니 있다 오는 일이 다반사고, 생각과 말이 어긋나게 튀어나와 곤혹스러움과 자주 맞닥뜨리고, 심지어는 길을 걷다 박자를 놓쳐 발이 꼬이기도 하니 서글프기 짝이 없습니다.
젊었을 때는 총기 있고 의욕적이라 다른 이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었는데, 이젠 희미해진 총기와 사그라진 의욕으로 바닥만 헤매는 자존감을 추스르느라 매일 흔들리며 살아갑니다.
이제는 세월의 깊이만큼 청태가 빼곡히 쌓여가는 오래된 옛 기와처럼 인생의 이끼가 곱게 메워지기 시작하는 고즈넉한 나이가 되었음을 겸손하게 받아들여야겠습니다.
‘기억이 가물거리고 육체가 약해지는 것은 더 신중 하라는 뜻이고, 행동이 느려지고 감각이 둔해지는 것은 겸손한 마음으로 세상을 좀 더 여유롭게 바라보라는 뜻일 거라.’ 스스로 마음을 토닥이며 겉사람은 세월따라 낡아가지만 속사람은 날로 더 품격있게 업그레이드될 것을 기대해 봅니다.
시시때때로 징징거리는 ‘업데이트’ 버튼을 누르며 흔들리는 하루를 시작합니다.
배은희 도림초등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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