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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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9.22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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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BDC심리연구소장
추석이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를 해야 할 때가 왔다. 오래 보지 못했던 고향 친구들도 만났을 것이고 가족과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리라 생각해본다. 필자도 올해 추석은 주말이 끼어 있어서 연휴가 5일이나 되어서 휴식을 잘한 듯하다. 그런데 그 긴 연휴 동안 기름진 음식을 섭취 많이 한 것 같다. 뭔가 깔끔하고 칼칼한 음식을 먹어서 속을 좀 달래줘야겠다.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좋은 영화 한 편이나 볼까라는 생각으로 노트북 앞에 앉았다. 그러다가 '춘희 막이'라는 제목의 한국 영화 한 편이 나의 눈에 띄었다. 영화 포스터에는 까칠한 표정의 할머니 한 분과 티 없이 맑고 순수한 미소를 짓는 할머니 한 분, 그렇게 두 분의 모습이 담겨 있다. 그런데 두 분의 모습이 상당히 대조적이다. 왠지 모를 두 분만의 재미있는 스토리가 있어 보인다. 당첨. 이번에는 이 영화다. 재생 버튼을 누르고 영화가 시작된다.
대략 내용은 이렇다. 영화는 막이(90세)라는 이름의 할머니와 춘희(70세)라는 할머니가 살아가는 두 사람의 삶을 다큐 형식으로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두 분의 삶이 평범했다면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두분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게 된 이유에는 두 분의 기막힌 인연(因緣)에 있다.
막이 할머니(90세)는 시집을 와서 아들 둘, 딸 셋을 낳았다. 하지만 아들 한 명은 사라 호 태풍 때, 또 한 명은 홍역으로 둘 다 어릴 때 세상을 떠나보냈다. 남아선호 사상이 강했던 시절, 가문의 대(代)를 이을 아들이 필요했었지만 본처인 막이 할머니는 나이가 많아서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할머니 대신 가문의 대를 이을 아들을 낳아줄 사람을 필요로 했고, 아들을 대신 낳아줄 사람으로 선택된 사람이 바로 영화의 주인공인 지적장애를 가진 춘희 할머니(당시 24세)였다. 그렇게 춘희 할머니는 후처로 들어오게 되었고 그곳에서 아들을 낳았다. 그렇게 본처(막이)와 후처(춘희)의 두 사람의 기막힌 동거가 시작되었다.
춘희 할머니는 24살에 후처로 들어와 아들 둘, 딸 하나를 낳았다. 그렇게 40년 동안 한 명의 남편과, 두 명의 아내가 한 지붕 아래 사는 희한한 삶을 이어 왔던 것이다. 그 후 남편인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46년 동안(영화 개봉 당시 2015년) 막이 할머니는 춘희 할머니를 내치지 않고 한집에서 같이 살아가는 동행의 삶이 시작되었다.
두 사람의 모습은 옆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이 볼 때는 이러쿵저러쿵 얘기하기 딱 좋은 삶이다. 하지만 본처인 막이 할머니는 담담히 이런 얘기를 하신다. "아들 하나 낳으면 쫓아내려 했지. 그런데 그러지 못하겠더라고." 그 말속에 막이 할머니와 춘희 할머니의 삶이 담겨 있다.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막이 할머니와 춘희 할머니의 관계가 바로 미운 듯, 불쌍한 듯, 고마운 듯이다.
영화는 춘희 할머니의 실수와 그걸 꾸짖고 야단치는 막이 할머니의 모습이 거의 절반 이상이다. 그런데 막이 할머니의 야단도 매번 천진난만한 춘희 할머니의 미소 앞에는 무너져버린다.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다. 과연 누가 감히 다른 이의 삶을 보고 자신보다 '낫다. 못하다' 얘기할 수 있을까. 아무도 다른 사람의 삶에 함부로 이야기할 자격은 없다. 모두 각자의 삶이 있고 그 삶이 모두 소중하기 때문이다. 두 분의 이야기도 하나의 삶이고, 우리네 이야기도 하나의 삶의 이야기다. 모두 그렇게 각자가 처한 곳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처음 영화를 보기 전 포스터에 나온 둘의 모습을 보고 다르게 살아가는 두 사람의 이야기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춘희 할머니, 막이 할머니 삶은 다른 듯해 보이지만 많이 닮아있다. 두 개의 삶이 아닌, 하나의 삶을 담고 있었다. 마치 다른 두 나무가 자라면서 하나의 나무가 된 '연리지'처럼 둘은 그렇게 함께 살아가고 있다.
영화는 잔잔한 음악과 함께 막이 할머니의 대사로 끝을 맺는다. 할머니의 그 말이 아직도 내 귀에 울리고 있다. 막이 할머니가 춘희 할머니를 바라보시면서 하시는 말씀은 바로 "가자, 가자. 같이 가자"라는 말이었다.
우리도 두 할머니의 삶처럼 그랬으면 좋겠다. 느리면 좀 기다려주고, 약하면 짐 나눠 들고서 손에 손잡고 그렇게 동행(同行)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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