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속뜻과 슬기로움의 구멍(文心慧竇) - 문리(文理)가 터진다-
글의 속뜻과 슬기로움의 구멍(文心慧竇) - 문리(文理)가 터진다-
  • 승인 2021.09.23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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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규 대구예임회 회장 전 중리초교 교장
9월 둘째 주 금요일 경주 양남에 살고 있는 초등학교 3학년 손자가 ‘전국한자능력검정시험(7급)’을 보기 위하여 대구에 왔었다. 시험 전날 저녁이어서 손자에게 “훈아 너는 문제를 잘못해서 틀리게 되면 속상하지 않니?”라고 물었다. “아니요. 할아버지 그런 경우에는 다음번에 더 노력하면 돼요.”하였다. 손자의 생각이 긍정적이어서 마음이 뿌듯하고 흐뭇하였다.

6학년을 맡았던 교사 시절, 한 문제만 틀려도 속상해하며 울기 시작하여 집에 갈 시간까지 교실에서 우는 학생이 있었다. 처음엔 달래보다가 나중엔 그냥 내버려뒀었다. 그 학생은 항상 시험을 보면 거의 만점이었다.

중학교에 가서도 편지를 자주 보내 왔는데 점수는 만점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과학고에 가서도 편지마다 점수를 잘 받았다는 이야기였다. 대단한 결기를 가지고 노력하는 학생이었다. 그럴 때마다 필자는 ‘너무 힘들 때는 즐기며 공부하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었다.

연암 박지원은 동네 꼬맹이가 천자문(千字文) 읽기를 게을리 해서 야단을 쳤다. 아이가 “하늘을 보니 푸르기만 한데 ‘天’자는 푸르지도 않고 ‘검다’고 하니 시시해서 읽기가 싫어요.”라고 대답했다. 연암은 아이를 나무라지는 못하고 “어험!”하고 헛기침만 하였다. ‘천지현황(天地玄黃)’은 ‘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다.’는 뜻이기 때문에 꼬맹이는 재미가 없었던 것이다.

이 이야기는 연암집에 있지만 다산 정약용(丁若鏞)의 『천문평(千文評)』에도 나온다. 다산은 문자가 생긴 것은 모든 물건을 분류하기 위한 것으로 보았다. 그 분류란 모양, 이치, 쓰임으로 나눈다. 분류한 것은 같은 종류로 모아야 뜻이 잘 통한다. 그 종류를 다 알고 난 다음 종류별 다른 점을 찾아보면 분별이 쉽다. 이치를 분명히 알게 된다. ‘문심혜두(文心慧竇)’한다.

‘문심혜두(文心慧竇)’는 ‘글의 속뜻과 슬기로움의 구멍’이라는 뜻이다. 바꿔 말하면 ‘문리(文理)가 터진다.’는 의미이다. 문리란 글의 뜻을 깨달아서 아는 힘이다. 부단히 노력한 결과로 얻는 스스로의 깨우침이다.

어린 아이에게는 천자문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 다산의 생각이었다.

‘천지(天地)’가 나왔으면 상하(上下), 좌우(左右), 원근(遠近), 장단(長短), 고저(高低), 표리(表裏)등과 같이 주변과 비슷한 부류끼리 만든다. 그리고 곁가지로 지식을 확장하여야 한다. 갑자기 ‘현황(玄黃)’이라는 색깔이 나오니까 꼬맹이가 헷갈려하고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우주홍황(宇宙洪黃)은 ‘우(宇)는 넓고(공간), 주(宙)는 거칠다.(시간)’는 뜻이다. 꼬맹이들은 아직 공간과 시간의 개념이 없다. 가당찮다. 다산은 이것을 사고의 비약으로 보았다.

꼬맹이의 언어는 마음의 소리이다. 그렇다면 천자문의 글자는 꼬맹이 마음의 그림이어야 한다. 햇살에 먼지가 반짝거리듯이 꼬맹이의 마음이 반짝이도록 해줘야 한다. 슬기로움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중국 양나라 유협(劉勰)은 『문심조룡(文心雕龍)』에서 ‘문심(文心)’을 문학의 창작, 감상, 비평 등 인간 마음의 전체 움직임으로 보았다. 글쓰기 과정에 개입하는 마음의 작용이라 생각했다. 그러한 생각이 마음의 소리와 마음의 그림, 즉 언어문자의 예술적 표현으로 나타난다. ‘글의 속뜻(文心)’이다.

조룡(雕龍)은 상징적인 용어이다. 용을 조각하듯 글쓰기를 구상하고 창작하는 과정은 세심하고 기교가 요구됨을 비유한 말이다. 조룡은 ‘슬기로움의 구멍(慧竇)’과 의미가 비슷하다.

추석에 경주 양남에서 손자들이 오고, 대전에서 손녀가 왔다. 모처럼 만난 사촌남매가 바깥에 나갈 수 없어 식탁에 앉았다. 유치원생은 그림을 그리고, 3학년은 사진을 찍고 둘은 한참을 보내더니 멋진 작품(UCC)을 하나 만들었다. ‘문어의 꿈’이라는 동영상이었다. 그 작품을 텔레비전으로 온 가족이 모여 앉아서 보았다. ‘그림 박은서, 편집 박재훈’이라는 자막까지 있었다. 모두가 박수를 치고 칭찬해 주었다.

문어는 바다 속은 답답하지만 ‘꿈속에선 무엇이든 될 수 있어.’라고 말하고 있다. 그 글의 속뜻은 희망을 말하는 것이고, 슬기로움의 구멍은 꿈은 이루어짐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노력하면 문리(文理)가 터진다. ‘우린 언제나 무엇이든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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