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로부터 얻은 자극은 나의 의식 속에 기억되었다가 오랜 시간을 지나면서 걸러지고 증발 되어 진액 같은 인상(Impression)으로 남는다. 일상 속 자연에서 얻은 인상들을 표현하는 작업은 끝없이 뿌리고 찍고 그리는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놀이의 즐거움을 이어지고 자연의 성실함과 닿아 있음을 깨닫게 된다. 자연은 우리에게 무한 반복의 성실함을 가르쳐준다. 강둑을 가득 메운 잡초들과 이름 모를 꽃, 늘 제자리에서 봄마다 만나는 나무가 꾸는 꿈과 사랑, 멀리 겹친 산 능선이 보여주는 아름다운 곡선, 작업실 창을 조용히 두드리는 빗소리…다르지만 같은 모습이 무한 반복 되어질 때 신성한 감동을 얻는다. 무수히 반복되고 순환되는 질서 속에서 느끼는 감동, 안정, 평화는 자연이 인간의 자궁임을 깨닫게 한다.
힘차게 물감을 뿌린다. 뿜어져 나오는 자유로운 선과 점의 형상은 색과 만나 직설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나를 읽어주는 단서가 된다. 물감의 농도, 행위의 시간 차이, 높이, 각도, 손의 압력 등은 미묘한 느낌의 변화를 만들어 내며 감각의 모든 것을 동원하게 하고 집중하게 한다. 그리고 손끝을 통해 화면 위로 옮아가는 것을 느낀다. 온전히 자유롭다. 세상을 향해 조심스럽게 손을 내미는 순간이다.
※이선희는 경북대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대구문화회관과 봉산문화회관 등에서 3회의 개인전과 청백여류화가회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