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인생의 ‘터닝 포인트’
절망, 인생의 ‘터닝 포인트’
  • 승인 2021.09.27 21:3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곽홍란
커넬글로벌대학원 교수·시인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의 삶을 크게 바꾸어가고 있습니다. 학교 수업 방식이 바뀌었고, 기업 근무 환경이 바뀌었으며, 일상 속 모임 패턴, 소비 형태, 산업 지도가 바뀌고, 외부의 크고 작은 일들이 예전의 현실이 아닌 가상세계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아마, 코로나가 지나가거나 종식된 뒤에도 변화된 상당 부분이 과거 일상으로의 회귀는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코로나 이전까지 우리는 인류가 지구의 ‘현명한 주인’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하여 ‘만물의 영장’이라며 인간은 불가사의한 힘을 가진 존재라고 으스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인류는 변화무상한 자연현상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생물도 아닌 그야말로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물인 바이러스 앞에서 벌벌 떨며, 활동반경을 제지당하고, 반가운 사람을 앞에 두고 포옹과 악수는커녕, 마스크를 쓴 채 주먹을 내밀거나 팔꿈치를 흔들며 민망한 인사를 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또 우리에게 숱한 질문을 던집니다. 사람이란 어떤 존재인지, 종교란 어떤 것인지, 그리고 또 나는 무엇인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묻습니다. 코로나19는 어쩌면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고, 스스로 자기 자신을 찬찬히 돌아보라는 제언을 던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인생 허투루 살면 안 된다’, ‘삶을 바꿀 마지막 기회’라고 쓴 거대한 현수막을 하늘자락에 펼쳐두었는데 우리 인간들 눈에만 보이지 않는 것 아닐까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향을 맡고, 입으로 맛을 보고, 온몸으로 느끼던 공감각을 송두리째 몰수당한 인간은 끝 모를 고독의 모퉁이에 내몰린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고독한 시간을 넘어서지 못하고는 도약이란 없습니다. 고독은 우리에게 감성의 힘을 싹틔워주고, 그 시간은 자신만의 사상을 기르는 자양분이 됩니다. 그러므로 생명과 자존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은 고독의 시간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외롭고 고독하다는 것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자신으로, 다른 세계로의 터닝 포인트, 즉, 제2의 삶을 향한 출발점의 예시입니다.

도스토옙스키는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고. ‘제2의 삶’으로 자신을 우뚝 일으켜 세운 세계의 대문호입니다. 그는 24세 때 중편소설 《가난한 사람들 Bednyye lyudi》(1846)을 발표하며 러시아 문단에 화려하게 데뷔합니다. 그러나 4년 뒤 사회주의 운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체포됩니다. 그는 기껏해야 유배 정도일거라고 생각했지만 사형 언도를 받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세묘노프스키 광장에서 포승줄에 묶여 총살을 기다리며 도스토옙스키는 눈을 감고 생의 마지막 기도를 간절히 올립니다.

“내가 만약 여기서 죽지 않고 살아나간다면, 내 삶의 1분 1초를 한 세기를 살아가는 것처럼 느끼며 살겠습니다. 스쳐가는 모든 것을 소중하게 여기겠습니다. 내 인생의 어떠한 순간도 허투루 낭비하지 않겠습니다. 제발, 제발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사형 집행 몇 초를 남겨두고 간수가 그의 목에 밧줄을 감고 있을 때, 말을 타고 형장으로 달려오는 한 사내의 다급한 소리가 들립니다. “멈추시오! 황제의 특명이오! 멈추시오!” 황제가 보낸 특사의 기적 같은 출현이었습니다. 사형 면제를 받은 도스토옙스키는 그후 시베리아의 눈보라 속에서 4년 동안 5㎏의 족쇄를 차고 유배생활을 합니다. 글 쓰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지만 순간을 허투루 쓰지 않겠다던 기도처럼, 영감이 떠오르면 머릿속으로 소설을 쓰고 다듬으며 작품을 모조리 외웠습니다. 그야말로 하루하루를 마지막처럼 살았습니다.

어제처럼 오늘 아침에도 거울속의 나를 만납니다. “오늘, 당신 인생의 마지①막 날이라면 어떻게 보낼 겁니까?”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어제보다 오늘의 내 눈빛에서 우울의 그늘이 조금 걷히고 있음을 봅니다. ‘도스토옙스키가 대문호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루하루를 마지막처럼 살았기 때문이지요.’ 현문에 우답을 올려놓으며 오늘을 응원합니다. “인생의 마지막 날, 아자 우리 힘내요!”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