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편화됐던 여성 신인류로 재탄생…수창청춘맨숀 입주작가 김나윤
파편화됐던 여성 신인류로 재탄생…수창청춘맨숀 입주작가 김나윤
  • 황인옥
  • 승인 2021.09.29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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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대상으로만 여겨지던 과거
중성적 신체 일부만 그려 姓 삭제
고정되지 않은 정체성 정립 시도
성적 착취 없는 세상 구현 욕구
부드러운 형상으로 새 種 구현
김나윤작-나보다나은삶
김나윤 작 ‘나보다 나은 삶’

여성을 상대로 한 강력 범죄가 끊이지 않는 이상 양성평등에 대한 구호는 허공에 흩어지는 메아리에 불과하며, 여성을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세태가 사라지지 않는 세상에서 “여성이여 찬란한 삶을 살아라”고 외치는 것은 이상주의자의 궤변에 불과하다.

작가 김나윤이 여성의 얼굴이나 등, 손과 같은 신체 일부를 평면 회화로 구현한 배경에 그 스스로 여성으로 살아가며 마주해야 했던 우리사회의 일그러진 세태가 자리한다. 여성을 완전한 인격체로 바라보기 보다 성(性)적 대상으로 치부하는 세태에 상처를 입었고, 그런 경험들이 중첩되면서 트라우마는 커져갔다. 어떻게든 상처 입은 마음을 위로해야 했고,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작업으로 풀어내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여성의 신체 중 특정 부위를 평면 위에 다양한 방식으로 구현하기 시작했다.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인식하는 현실에 분노를 느꼈다. 거대한 담론으로 펼쳐놓는다는 생각보다 내 만족을 위해서라도 우리 사회의 잘못된 인식을 해체하고 싶었다.”

작업 초기에는 얼굴이나 등, 손 등의 신체부위를 그렸다. 모두 성적 의미와 무관한 부위들이다. 작가는 성(性)을 연상하는 신체 부위를 배제하고 중성적인 의미를 가진 얼굴이나 등, 손 등의 부위를 통해 여성으로부터 성을 걷어냈다. “성적 대상이라는 여성에게 덧씌워진 잘못된 정체성을 고정되기 이전의 백지 상태로 되돌리고 싶었다.”

얼굴이나 등, 손 등의 신체 부위는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된다. 평면으로 구현하기도 하고, 한 화면에 전후좌우 모습을 겹쳐 입체로 담기도 한다. 선으로만 담백하게 표현할 때도 있다. 트라우마의 실체를 다양한 시선에서 냉철하게 분석하고 표현하는 목적은 치유에 있었다.

“여성의 신체를 파편화해 다양하게 보여줌으로써 고정되지 않은 순수한 이미지를 회복하고 싶었다. 여성의 외형을 조형적 정체성으로 재정립하는 것이다. ‘반 미학의 미학’이라고 할까?”

최근에 작업이 변했다. 피부를 경계로 내장의 장기나 뼈, 근육들을 해체하여 재조합한다. 피부 속 뿐만 아니라 피부 위의 손이나 다리 등의 신체부위도 해체 후 재조합한다. 그가 최근 새롭게 표현하는 인체를 ‘신인류’라고 명명했다.

얼굴 등을 파편화하면서 부지불식간에 잠재되었던 트라우마가 해소되면서 새로운 스타일을 모색할 수 있었다. 신인류의 신체부위는 얼굴로도 확장됐다. 완전한 신인류의 탄생이었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갓 태어난 아기라는 탄생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흘러내리는 점액질 기법도 차용한다.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했지만 상처가 치유되면서 이제는 객관화된 이야기로 넘어갔다. 여전히 사회적인 편견은 가득하지만, 고정관념을 걷어낸 새로운 인류를 사람들에게 툭 던져보고 싶었다.”

작가가 창조한 신인류의 미적 기준은 완전히 달라진다. 여성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현하는 인류다. 더 이상 성적 욕망이나 착취로 고통받지 않는 왜곡된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작가는 “진정한 미의 재정립”이라고 표현했다. “수창청춘맨숀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주제를 객관화 했다.”

얼굴이나 등, 손 등의 신체 부위를 그릴 때는 파괴적이고 괴기스러운 기운이 화면을 잠식했다. 괴기스러운 그로테스크함은 그가 여성으로서 받았던 상처의 모습들과 맞닿아 있었다. 사회가 여성에게 가한 폭력의 상흔이었다.

그러나 새롭게 탄생한 신인류는 달라졌다. 여전히 그로테스크 하지만 카니발 그로테스크로 결을 달리했다. 파스텔톤의 밝은 색과 부드러운 형상에서 더 이상 절망이 묻어나지 않는다. “아직은 우리 사회가 변하지 않았지만 좀 더 주체적인 새로운 종을 제시하며 새로운 화두를 던져 보고 싶었다.”

김나윤 작가가 참여하고 있는 수창청춘맨숀 3기 레지던시 입주작가 교류전과 성과전은 1일부터 17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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