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에게는 경계선이 없다 - 너와 나에게는 어떠한가
새들에게는 경계선이 없다 - 너와 나에게는 어떠한가
  • 승인 2021.09.30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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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후섭 대구문인협회장·교육학박사
‘새’ 이야기를 찾다가 황경신 작가의 책 『국경의 도서관』 표지 날개에 실린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국경을 통과할 때 새 한 마리가 푸드덕 땅을 박차고 노을 진 하늘 끝으로 날아갔다. 그는 무심하게 휘파람을 불고 있었으나 나는 심장이 뛰었다. 경계를 두려워하는 동시에 경계를 동경하는 일생의 모순에 쩍하고 금이 갈라지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었다. 땅 위에 그어둔 선 하나는 무의미하기도 하고 의미심장하기도 했다. 한 사람을 만나 마음을 나누고 삶을 나누며 서로의 경계를 넘나드는 일이 또한 그렇게 무의미하기도 하고 의미심장하기도 하다. 가볍기도 하고 무겁기도 하다. 이제 자유롭게 그 경계를 넘나들면 좋겠다. 무거움으로 가벼움을 꺼안고 가벼움으로 무거움을 날아오르게 하면 좋겠다. 하늘의 노을빛이 푸른 바다를 물들이듯, 새 한 마리 땅을 박차고 영원으로 날아오르듯.

이 글은 이 책의 메세지를 축약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위적인 경계에 머물러 있지 말고, 새처럼 자유롭게 날아 경계를 초월한 진정한 자유를 구가하고 싶다는 염원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물리적인 경계란 엄연히 존재하는 일상이기도 합니다.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인간(人間)’이라는 말에는 처음부터 ‘사이 간(間)’이라는 경계가 주어져 있습니다. ‘간(間)’은 문틈으로 햇빛이 들어오는 모습을 형상화한 글자로서 ‘사이, 틈, 간격’ 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필연적인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음을 시사한다 하겠습니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 존재합니다. 관계는 또한 적당한 거리를 요구합니다. ‘관계가 좋다’는 말은 곧 ‘사이가 좋다’는 말과 같은 뜻으로 쓰입니다. 그리하여 관계를 잘 유지하는 것이야 말로 현명한 생존 수단이 됩니다.

수많은 현인들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법을 설파하였습니다. 우리가 무심코 쓰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도 생각해 보면 관계 설정에 대한 말입니다. 그런데 실천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너무 가까이 해서도 안 되지만, 너무 멀리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인데 도대체 어디까지 다가가야 하고, 어디쯤에서 멈추어야 하는 것일까요?

이에 대해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이른바 ‘고슴도치 딜레마(Hedgehog Dilemma)’라는 우화를 예로 든 바 있습니다. 고슴도치들은 날이 추워지면 추위를 막기 위해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가려 합니다. 그런데 너무 가까이 가게 되면 서로의 가시에 찔려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따라서 다시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떨어지면 다시 추위를 느끼게 되니 또 다가가게 됩니다.

이를 여러 번 반복하다가 마침내 서로 찔리지 않는 적당한 거리를 찾아 체온을 나누게 됩니다. 이 때 적당한 거리에는 물리적 거리와 함께 정신적 거리가 크게 작용된다 하겠습니다.

이 ‘불가근불가원’의 경지를 예로 들 때에 흔히들 옛 춘추전국시대 때의 재상 범려(范?)를 거론합니다. 범려와 문종(文種)은 월(越)나라 왕 구천(句踐)을 도와 천하를 제패합니다.

그 뒤, 범려는 그 동안 겪어 본 바 구천은 자기가 어려울 때에는 애걸복걸하지만 힘이 생겼을 때에는 측근도 여지없이 내칠 것임을 예감하고, 문종에게 이 ‘불가근불가원’을 읊조리며 함께 떠날 것을 제안합니다.

그러나 문종은 그럴 리 없다며 끝까지 구천 옆에 머물다가 결국 반역자로 몰려 처형당하고 맙니다. 구천은 지혜로운 문종이 그 계략으로 자신을 몰아낼 지도 모른다고 의심하여 사약을 내리며 자결을 강요하였던 것입니다.

월나라를 떠난 범려는 뛰어난 장사 수완을 발휘하여 구천 보다 더 큰 부자(富者)가 됩니다. 범려는 장사에도 이 ‘불가근불가원’의 원칙을 적용하여 승승장구하였던 것입니다.

범려의 이 원칙에는 들고 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아야 하는 지혜와도 연결됩니다. 이 순간 우리는 더욱 우리 자신을 잘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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