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중재법 개정 논란에 부쳐
언론중재법 개정 논란에 부쳐
  • 승인 2021.10.03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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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일 영남이공대학교 여행·항공마스터과 교수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 배상 적용을 내용으로 하는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여당 단독으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하였다. 하지만 강행처리에 따른 여론의 악화를 의식한 집권 여당은 지난 8월 30일로 예고된 국회 본회의 개정안 의결을 보류하고 여야합의체를 구성하여 지난 한 달 동안 야당과 협상을 시도하였다. 하지만 여야의 시각 차이가 워낙 커 개정안 처리를 둘러싼 첨예한 대립으로 합의안 도출에 진통을 겪고 있다. 여당 내 강경파들은 9월 27일 해당 법안의 국회 본회의 처리를 강하게 주장하였지만, 청와대와 정부에서도 신중론이 고개를 들면서 여당 지도부는 언론중재법 개정안 국회 본회의 상정을 철회하고 여야가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연말까지 재논의하기로 합의한 점은 그나마 다행이다.

논란의 중심에 있는 언론중재법 개정의 과정을 살펴보면, 집권 여당의 정청래 의원 등이 대표 발의한 16건의 법률안에 대하여 지난 8월 19일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여당의 일방적 찬성으로 의결하고 8월 25일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여당의 단독 처리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본회의에 상정하기로 한 이후 지금까지 법 개정을 둘러싼 치열한 공방을 거듭하고 있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일선에서 온몸으로 독재에 저항했다고 자부하는 현 정권의 주류 세력들이 언론중재법 개정안 강제 처리를 강력하게 주장하며 법안 처리를 주도하는 현실은 아이러니컬 차원을 넘어 경악스럽다. 특히 법안 통과 과정에서 그것도 새벽 4시에 기습적으로 여당 단독으로 처리하는 행태는 마치 시계를 40년 전 군부 독재정권 시절로 돌려 놓은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그동안 집권 여당의 일부 의원들은 누구보다도 언론 자유의 혜택을 누려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안모 의원은 최순실의 재산이 300조인 것처럼 여러 언론과 인터뷰 하고도 자신이 말한 게 아니라 독자와 시청자들이 자신이 언급한 내용을 오해했고 언론이 악의적으로‘가짜뉴스’를 만든다며 책임을 전가하고 있지만, 여전히 건재하며 오히려 대선 유력주자의 캠프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사실이라고 믿고 싶지는 않지만, 이번 언론중재법 개정의 배경으로 집권 여당의 2022년 대선 위기감과 조국 사태가 언론의 허위 보도 및 왜곡으로 보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와 관련이 있다는 분석도 제기하고 있다. 특히 언론중재법 처리 과정에서 일부 여당의 강경 인사들은 발언은 정치의 금도를 넘고 있다. 여당 국회의원이 집권당 출신의 국회의장에게 입에 올리기도 부끄러운 GSGG 라고 욕설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모 최고의원은“청와대가 이래라 저래라 할 문제가 아니다”라는 오만한 태도를 보이는 등 집권당 내 강경파의 목소리가 어느 때 보다 커지는 양상이다.

물론 언론의 무책임한 오보나 허위 보도로 피해를 입는 국민이 발생하고 현재의 무분별한 언론 상황이나 수준을 두고“기레기”라는 비하 용어가 등장하는 등 심각한 사회현상이 야기되는 것도 사실이다.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 배상으로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여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도 엄연히 존재한다. 실제 인터넷이나 군소 언론 매체들이 늘어남에 따라 언론 환경이 경쟁적 변하고 자극적이며 선정적인 과잉보도 및 사실이 아닌 허위 보도로 언론의 신뢰도가 갈수록 하락하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2016년 이른바 최순실 사태 이후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진 일련의 과정에서 보인 언론의 행태는 어떤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되었다. 실시간으로 선정적이며 확인되지 않는 가짜뉴스를 경쟁적으로 양산하고 후일 대다수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음에도 최소한의 유감을 표하는 언론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국민으로부터 외면받는 언론은 존재할 수 없듯이 언론 또한 무너진 신뢰 회복과 자정 노력에 최선을 다하는 분명한 사명 의식을 가져야 한다.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언론의 자유는 어떠한 명분으로도 침해할 수 없는 민주주의의 가장 소중한 보루이다. 언론중재법 개정으로 징벌적 손해 배상과 대규모 소송을 우려하여 소신껏 기사를 쓸 수 없는 언론 환경이 조성된다면 필연적으로 언론의 자유는 침해될 수밖에 없으며 이는 자연스럽게 언론의 비판기능 위축과 권력의 힘으로 언론을 통제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이런 현실은 국제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가 청와대와 국회에 서한을 보내고 아이린 칸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이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한국을 언론 자유의 롤모델로 간주하는 많은 국가들에게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유감을 표하는 등 국제사회에서도 잇단 우려를 보내고 있다. 집권 여당은 이제라도 신중하고 합리적인 대안을 모색하여 극심한 정국 혼란을 초래한 언론 중재법 개정에 대하여 재고하여야 한다. 2015년 홍상수 감독의 영화“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는 많은 호평을 받은 수작임에도 흥행에는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영화의 제목은 한 번쯤 들어본 것으로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있다. 다시“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라는 영화의 제목이 새삼 기억되는 것은 최근 벌어진 언론중재법 개정을 둘러싼 정치권의 이중 잣대를 가장 적나라하게 표현한 현상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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