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이름의 ‘깐부’
가족이라는 이름의 ‘깐부’
  • 승인 2021.10.06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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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BDC심리연구소장
요즘 핫(hot) 한 것 중 하나가 바로'오징어 게임'이다.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9부작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우리나라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차지하고 있다. 그야말로 '오징어 게임'의 바람이 불고 있다. 아니, 바람보다는 태풍이 더 어울리겠다.
드라마 소개는 뒤로 하고 오늘은 드라마 속에 나오는 대사 중 하나를 얘기해보려 한다. 드라마 속 배우들이 나누는 대화 중에 '깐부'라는 단어가 나온다. 드라마에서 오일남(오영수)과 성기훈(이정재)이 깐부를 맺는 장면이 나오면서 깐부라는 단어가 유명해졌다. 그렇다면 깐부가 무슨 뜻일까? 깐부는 어릴 적 구슬치기나 딱지치기를 할 때 서로 한편이 되어 구슬과 딱지를 공통으로 소유하는 짝을 말한다. 내 것도 네 것이고, 네 것도 내 것이 되는 일종의 동맹관계다. 사업의 동업자와 마찬가지다. 일단 깐부를 맺으면 깐부를 잘 보살펴야 한다. 깐부가 된 한 사람이 구슬이나 딱지를 많이 잃어 죽을 상황이 되면 깐부가 자신이 가진 것을 조건 없이 깐부에게 나눠 준다. 그렇게 해야 자신이 살기 때문이다. 깐부의 패배는 곧 나의 패배이고, 깐부의 승리는 나의 승리가 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깐부라는 단어를 듣고 난 후, 그 단어의 의미를 곱씹다 보니 가족이란 단어와 깐부라는 단어가 서로 같은 의미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함께 살고, 함께 죽는 운명 공동체. 네 것이 내 것이고, 내 것이 네 것이 되는 그런 둘도 없는 한 몸 같은 운명 공동체가 바로 가족이란 이름이다.
가족은 그야말로 깐부다. 남녀가 만나 결혼을 통해 부부라는 깐부를 맺는다. 그래서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서로 아픈 상처를 보듬어 주며 하나가 된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둘은 가정을 만들어나간다. 어깨동무를 하고 두 다리를 한데 묶어 2인 3각을 하고 달려가는 두 사람처럼 부부는 그렇게 서로 발맞춰 살아간다. 그러면서 하나둘 가족이 늘어나고, 가족은 또 다른 모습의 깐부를 맺으며 함께 숨 쉬고 살아간다.
그런데 이런 가족이 서로에게 아픈 존재가 되는 경우가 많다. 사실 타인보다는 가까운 가족을 통해 우리는 많은 상처를 받는 것 같다. 타인은 지나가는 바람과 같아서 잠시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존재밖에 되지 못한다. 가족이 주는 것만큼의 깊고, 큰 상처를 남기지 못한다. 타인은 보기 싫으면 안 보면 되지만, 가족은 좋건 싫건 늘 함께해야 할 존재이기 때문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늘 함께 보는 대상을 통해 받는 상처는 참으로 우리를 아프게 한다. 무술 유단자가 일격에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사람의 급소를 잘 알고 있듯, 가족은 서로의 급소, 즉 아픈 부위를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한번 상처를 주기 시작하면 아픈 부위만 골라서 때린다. 정확히 상처 난 그 지점만 톡톡 건들고 있으니, 더 아플 수밖에 없다. 상처가 아물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피가 멈추고, 딱지가 그 위에 생기고, 새살이 돋아나는 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가족 간의 거리는 너무 좁아서 딱지가 아물 시간을 잘 주지 못하는 것 같다. 뼈가 부러지면 깁스로 고정을 하고 오랜 시간 동안 사용하지 않고 가만히 두어야 뼈가 붙고 상처가 아문다. 상처가 아물려고 할 때 마지막은 정말 미칠 정도로 가렵다. 가려움을 참지 못하고 다시 긁어버리면 상처는 덧나게 된다. 그래서 안 건들고, 그냥 놔두는 것이 상처를 낫게 하는데 필수적 과정이다. 그 순간을 넘기고 나면 딱지가 떨어지고 새살이 돋아나는 것이다. 애완견이 수술을 하게 되면 수술 부위를 핥거나 발로 긁지 못하도록 얼굴에 우주인이 쓸 법한 요상한 물체를 세우는 것도 같은 이치에서다. 건들지 않고 시간에 맡길 일이 살다 보면 많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곱씹고, 자꾸 긁어댄다. 그러면서 상처는 더 깊어져만 간다.
깐부의 죽음은 나의 죽음과 같다. 그래서 깐부를 살려야 한다. 극 중 오일남이 깐부를 맺은 성기훈이 속임수를 쓰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척 속아주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자신을 희생해 깐부를 맺은 성기훈을 살린다. 이제 우리도 가족이란 이름의 깐부를 살려야 한다. 서로 부족함도 채워주면서, 아픈 상처 보듬고, 때론 잘못이 있어도 모른 척 해 주기도 하면서 가족이라는 깐부를 살리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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