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원화랑, 변미영 ‘봉황래원’展
동원화랑, 변미영 ‘봉황래원’展
  • 황인옥
  • 승인 2021.10.07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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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도원에 둥지튼 봉황, 코로나 물리쳐주길”
산수화 바탕 민화적 요소 가미
탈권위·현대적인 분위기 물씬
물감 중첩 후 긁어 굵은선 완성
정원 디자이너 김원희와 컬래버
변미영작-유산수
정원에 설치한 변미영의 작품 ‘유산수(遊山水)’

코로나 19가 인간에게 일깨운 가장 값진 교훈은 ‘일상의 소중함’이다. 당연하게 주어졌던 일상을 코로나 19에게 저당 잡히자 삶에서 핏기가 사라졌고, 일상이 주는 소소한 행복은 먼지처럼 바스라졌다. 범인도 이럴진데 감각의 촉이 예민한 예술가는 어떠할까?

적어도 변미영 작가에게 코로나 19가 던진 화두는 일상의 차원을 넘어선 듯하다. 인간의 탐욕에 의한 바이러스의 창궐에서 평소 가졌던 무위자연에 대한 동경은 더욱 확고해졌고, 그토록 그리워하던 무릉도원의 고요하고 너른 품은 지척인 듯 다가왔다. 최근에 개막한 동원화랑 개인전에는 이상세계를 향한 작가의 간절함이 알알이 새겨져 있다.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변미영 작업의 근간은 산수(山水)다. 전통 산수화법에 관한 청나라 때의 자료를 연구하면서 산수에 대한 토대를 세울 수 있었다. 하지만 작가는 통념에 갇히고 싶지 않았다. 만인의 행복을 기원하면서 미술적인 자유분방함도 동시에 추구하고 싶었다. 그때 의식에 번뜩인 것이 민화였다. 산수와 민화가 결합하는 순간이었다. 일정한 공식을 요구하는 전통회화와 달리 틀에 얽매임을 거부하는 민화의 자유분방함에 매료되어 민화에도 눈길을 두게 됐다. 2000년대 초반이 되면서 모란과 봉황 등의 부귀영화를 염원하는 민화의 소재들이 산수와 어우러지며 변 작가만의 독특한 산수가 둥지를 틀게 됐다.

작업의 이론적 토대는 장자나 노자 등의 동양철학이다. 90년대 후반까지 어두운 톤의 누드를 그리다 2000년대 초반, 돌연 도가나 노자 등의 자연에 대한 철학이 반영된 산수(山水)로 돌아섰다. 결혼과 육아, 암울했던 당시의 정치적인 상황으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던 시기를 보내다, 도피처로 노자와 장자의 사유체계를 접하게 되면서 동양철학에 빠져 들어갔다. 작가가 이상세계로 그려내는 ‘산수’(山水)는 노자와 장자가 염원하던 무릉도원의 현현(顯現)이었다.

“노자의 무위자연과 장자의 대자연이란 개념을 통해 자연의 위대함을 깨달았다. 대자연은 내게 정신적 안식처가 됐고, 작가로서의 요람이 됐다.”

동원화랑 벽면을 채운 작품들은 그의 대표작 ‘유산수’(遊山水) 연작들이다. 완만한 곡선의 산과 시원한 물줄기를 배경으로 모란과 봉황이 유유자적하게 노니는 작품들이다. 하늘과 땅에 흐드러진 모란에는 우리네 소시민의 평안한 얼굴이, 귀엽게 표현된 봉황에는 앙증맞은 왕관이 씌워져 있다. 다분히 탈권위적이며 해학적이다. 부귀영화를 기원하는 민화의 전형이지만 전통 산수에서 찾기 힘든 절제와 해학 등의 현대적인 감각이 부가되어 있다.

“민화에 깔려 있는 소시민의 정서에 동요되어 유산수(遊山水) 연작을 그렸다. 그 정신을 유지하려 했다.”

편안한 형상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굵은 선이다. 적게는 20번에서 많게는 50번의 물감을 중첩한 표면을 조각칼이나 끌 혹은 송곳으로 긁어내서 생긴 선들인데, 보는 이의 시선을 단숨에 잡아끈다. 말랑말랑한 형상과 밝고 부드러운 색채와 대조를 이루는 굵은 선은 이상세계에 대한 작가의 간절한 마음의 표현처럼 다가온다.

전통에 대한 현대적인 미감의 해석과 정신적인 간절한 염원이 균형감으로 버무려진 자신의 화풍을 작가는 “새로운 전통에 대한 시도”라고 했다. “그 옛날 노자나 장가가 꿈꾸었던 이상세계는 우리와 동떨어진 세계가 아니었다. 나 역시 그들처럼 우리의 모습을 닮은 이상세계를 그리고 싶었다.”

최대 50차례 중첩된 표면은 지난한 노동의 산물이다. 중첩된 물감 위를 송곳으로 긁어 내면 중첩된 수많은 층의 색들이 드로잉 선 아래서 영롱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작가에게 노동은 작가 자신이다. “나의 삶의 층들이 노동을 통해 화면의 두께로 나타난다.”

판넬에 물감의 중첩으로 무릉도원을 그린 ’유산수‘(遊山水)’ 연작의 역사는 10년 남짓 됐다. 지금의 화풍이 정착하기 까지는 적잖은 변화를 거쳐왔다. 나무를 소재로 돌과 같은 다양한 소재를 부착한 후 그 위에 그림을 그리는 입체적 작업을 시도한 2002년의 작품, 먹을 버리고 다시 회화로 회귀한 2003년의 작품, 평면에 부조적인 표현법을 도입한 판넬화 작업 등 다채롭다. 하지만 ‘산수’라는 주제는 변함없이 유지해왔다.

동원화랑 전시에 변화가 감지된다. 화면의 색이 밝아진 것. 작가는 “작품과 작가의 내면은 같이 간다. 작품이 곧 작가”라며 “최근에 내 그림에 대한 확신이 깊어졌고, 색은 더 밝아졌다”고 고백했다. 동양의 정신이 묻어나는 이상세계를 표현했던 작가의 작품세계에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과정들을 지나오면서, 자신의 무릉도원에 대한 확신이 선명해졌다. 그 선명한 확신이 밝은 색채로 드러났다.

이번 전시에는 새로운 도전도 감행했다. 정원 디자이너 김원희와 컬래버레이션을 시도한 것. 그림 속 봉황이 한달여 간 인간이 만든 화이트 큐브 속 자연의 품에 내려앉아 둥지를 튼다는 콘셉트로 전시를 ‘봉황래원(鳳凰來園)’전으로 꾸몄다. 자연을 향한 작가의 동경과 믿음으로 전시장 바닥과 외부 정원에 자연정원을 꾸민 것. 그 정원 속에 작가의 산수가 자리를 잡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봉황이 정원에 도래해서 코로나 19 팬데믹을 물리쳐 주길 바라는 소원을 담았다.”

자연에 대한 동경과 믿음의 강도가 묻어나고 있는 동원화랑 전시는 28일까지며, 대구 현대백화점 H갤러리 전시는 13일부터 11월9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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