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습니다, ‘시가 꽃으로 피는 배내리 조감도(鳥瞰圖)’
찾습니다, ‘시가 꽃으로 피는 배내리 조감도(鳥瞰圖)’
  • 승인 2021.10.11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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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홍란
커넬글로벌대학원 교수·시인·문학박사
"우울했던 하루와 내일도 슬픈 날이 될 것이라는 전망으로 울적해진 나는 습관적으로 차 한 모금을 입술로 가져갔고, 나는 차와 함께 마들렌 과자 조각이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을 때까지 내버려두었다. 그러나 마들렌 부스러기와 홍차가 스며 내 입천장에 닿는 순간,?나는 소스라쳐 놀랐고, 내 안에서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르셀 프르스트(Marcel Proust)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A la recherche du Temps Perdu)》의 한 부분이다. 이 책은 <20세기 최대의 문학적 사건(G. Picon)>이라는 반향을 일으키며 프르스트의 작가적 재능이 한껏 발휘된 최고의 소설로 평가된다. 이 소설에는 수많은 독자들이 기억하는 한 구절이 있는데, 그것은 프랑스 과자 '마들렌'과 '홍차'의 절묘한 어우러짐에 대한 표현이다. 이 묘사는 영화나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에서 차용되고 독자들이 필사하는 구절로 소설의 주제이며 상징이기도 하다.

프르스트는 방대한 내용을 전체 7부로 나누고 엄격한 구도로 통제하며 하나의 건축물처럼 조감도를 구축하고 글을 시작한다. 어느 날 우연히 홍차에 적셔진 과자 한 조각이 어린 시절 화자의 순간을 불러온다. 잊혀진 과거를 재생시키고 현재화시킴으로써 현재의 나와 과거의 나 사이에 존재하던 간극을 메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할 수밖에 없는, 죽어가는 자아는 그 '뜻하지 않은 추억' 소환에 의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재생된다. 이처럼 프르스트를 따라서 '되찾아가는 시간'을 짚어가다가, 문득 나도 '사라져버린 이름'을 호명하기로 한다.

얼마 전부터, 대구 수성구 이천동 들머리에 있던 <시가 꽃으로 피는 배내리> 조감도가 보이지 않는다. 어디로 갔을까. 6개월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고 있다. 배내리는 지도에 잘 나타나지 않지만 행정명은 이천동(梨川洞)이다. 쓰레기 수거차는 1주일 1회, 버스는 1일 3회 운행되고, 큰길까지 도보로는 족히 40~50분 걸리는 산골이다. 그 길고 긴 길의 절반은 시커먼 송곳 바늘 철조망이 박힌 군부대 잿빛 벽돌담이 버티고 있다. 하늘 보며 걷고 싶어도 철조망이 싫어 외려 땅만 보고 걷는 사람도 있다. 그 마음 읽었는지 배내리청년회원들이 담벼락에 꽃나무 심고, 푼돈 모아 시판(詩板)을 세우고 동네 어귀에는 <시가 꽃으로 피는 배내리>라는 조감도까지 세웠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수성구의 새로운 명소로 일컬어지기도 하고, 초행인 사람에겐 이정표 역할까지 하던 조감도였는데, 어느 날 근처 조경수들과 함께 감쪽같이 사라졌다.

지난 여름을 전후해 군부대에서 조감도 부근 담장을 허물고 여러 달에 걸쳐 공사를 하며 도로를 점령했다. 공사차량 진입로가 필요해 조감도와 부근 물건들과 나무들을 해체, 이동시켰다. 서너 달 걸친 도로 점령에도 불평 한 마디 없이 견뎌준 마을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기는커녕, 동네 표지판이며 상징인 조감도와 평균 연령 70세가 넘는 동네 청년회원이 가꾸던 조경수를 깡그리 뽑아 민머리 정원을 만들어버리다니. 참 민망한 일이다. 공사에 따른 손상 부분의 원상 복구 및 보양 조치는 당연한 의무일 텐데, 어찌된 일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다시, 프르스트에게서 '진솔한 삶'의 본질에 대한 답을 찾는다. 그는 하찮은 사물들이 지닌 소중함과 황홀감 그리고 격정의 비밀에 대해 이야기 한다. '잃어버린 시간'은 잃어버린 것이 아닌, '내재하는 시간'이다. 거대한 반어법을 활용하여 들려주는 이 이야기는 인간의 존재적 체험은 쉽게 사라지거나 결코 소멸되지 않는다는 전언이다. 더 나아가 인간의 의식 깊은 속에 묻혀 있던 자아의 소생, 무의식적 기억의 진실성과 진정성을 발견하라는 것이다. '시가 꽃 피는 배내리 조감도' 는 기억이 아니라 생생한 현물이다, 당연히 있던 자리에 있어야 하는데, 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일까? 어디로 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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