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도둑을 잡았다
자전거 도둑을 잡았다
  • 승인 2021.10.1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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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청 부국장
자전거를 훔쳐 달아나던 도둑을 잡았다.
지난 주말, 금호강 자전거 도로. 많은 이들이 선선한 가을 날씨에 기대 자전거를 타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미끄러지듯 흐르는 강물과 유유자적 곁으로 날아다니는 갖가지 종류의 새,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자전거를 탈 때였다.
같은 방향으로 자전거를 타던 한 노인이 잠시 자전거를 세워두고는 빨간 헬멧을 쓴 채 화장실로 급히 들어간다. 바로 이때, 다른 한 사람이 재빨리 이 자전거에 올라타 마치 제 자전거인 양 쏜살같이 질주해 달아나 버린다. 너무 순식간이다. 어~어~ 하고 있는데 눈앞에서 사라졌다. 자전거 도둑이다.
도둑이 가고나자 볼 일을 마친 자전거 주인이 빨간 헬멧을 쓰고 화장실에 나온다. 그는 순간 얼어붙는다. 좌우를 살펴보고, 화장실 주변을 돌아보며 연신 허둥댄다. 이윽고는 망연자실한 모습이다. "자전걸 훔쳐 타고 가는 사람을 제가 봤어요. 저 쪽으로 갔어요. 제가 먼저 제 자전거를 타고 쫓아갈 테니 제 뒤로 따라오세요. 잡든 못 잡든 가다가 기다릴게요" 노인의 표정이 한꺼번에 수십차례나 뒤바뀐다. 창졸간에 당한 일에 어지간히도 당황한 모양이다. 어쨌든 도둑이 갔던 방향으로 페달을 꾹꾹 눌러 밟는다. 전속력이다. 2km나 갔을까? 다리 밑 벤치가 놓인 곳에 일고여덟 명의 라이더가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거기에 있었다. 그 도둑과, 그 도둑맞은 자전거가.
마른 침이 꼴깍, 주먹에 땀이 난다. 일부러 목소리를 키운다. "아, 수고하십니다!" 모두가 멀뚱멀뚱한 표정이다. 거기 앉아 쉬고 있는 모두는 전부가 엇비슷한 나이대의 노인들이다. 그 도둑에게 다가갔다. 대뜸 "아저씨? 아저씨 자전거 어느 거예요?"라고 묻는다. 온 몸의 근육이 팽팽해진다. 모두가 호기심이 가득 찬 눈빛으로 쳐다본다. 도둑이 대답한다. "왜요?" 짜증이 가득 섞인 몸짓과 말투다. 일부러 더 큰 목소리로 묻는다. "이 자전거, 저 쪽 화장실에서 올라타고 여기까지 오길래 쫓아왔는데요, 아저씨 자전거 맞아요?" 도둑의 눈빛이 풀린다. 말소리도 잦아든다. "무슨 자전거 말이요? 내 자전거지 그럼 누구 거겠소?" 더 큰 목소리로 "어허! 뭔 소리 하시요? 금방 그 장면을 목격하고 따라온 사람한테... 경찰 부를까요?" 도둑의 표정이 굳는다. "아! 이 양반이 돌았나? 내가 내 자전거를 타는데 무얼~" 드잡이질 까지 할 기세다. 한 번 더 소리 지른다. "아저씨! 자전거 주인이 이리로 오고 있으니까 그 때 확인해 봅시다! 어디 가지 마시고 나와 함께 여기 잠시 있읍시다!"
이때였다. 반전이 일어났다.
그 벤치에 앉아있던 다른 노인 대여섯명이 엉거주춤 하나둘씩 일어나더니 그 도둑 주위를 에워싸는 게 아닌가. 졸지에 그 도둑은 포위를 당한 형국이 되었다. 그를 에워싼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철통같이 그를 포위했다. 그 위세에 도둑은 덩치가 있어도 움직이질 못했다.
잠시 뒤, 저 쪽에서 헐레벌떡 소리와 함께 숨찬 노인네가 빨간 헬멧을 쓴 채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낭패한 표정에 비 오듯 땀을 흘리는 노인은 자전거 쪽으로 먼저 달려가 손으로 잡았다. 그의 눈이 내 눈과 마주쳤다. 그도, 나도 아무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는 도둑에게 뚜벅뚜벅 다가갔다. 벌벌 떠는 손으로 도둑의 멱살 언저리를 잡을까말까 하는 시늉이었다. 그때였다. 도둑을 에워싼 대여섯명 중의 한 노인이 "이노무 시키!"라며 "보소 아저씨~ 경찰 신고해 드릴까? 우얄까? 이노무 시키를~" 도둑은 주눅이 들대로 들었다. 이래저래 자전거만 찾은 채 도둑은 놓아주다시피 하며 일은 마무리 지어졌다.
도둑을 에워쌌던 노인네들은 모두 우쭐한 표정이었다. 그 중 한 노인이 한숨을 쉬며 말한다. "자전거 도둑은 도둑도 아니야~ 이런 도둑보다 더한 도둑들이 나라에 꼭 들어찼어. 보라구. .." 조모, 이모, 윤모, 김모... 이름만으로도 짐작이 가는 인사 여럿의 이름들이 줄줄이 소환되고 있었다.
자신과 가족의 범죄를 덮기 위해 위선과 기만으로 판결마저 부인하는 권력자로 나라가 두 동강이 났다. 온갖 권력자들과 합세해 저지른 갖은 의혹을 부인하고 논점에 물타기를 해가며, 버티기로는 천재적인 소질을 갖고 있는 대권 주자도 보인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 후원금을 유용해 부동산에 투자하고 개인 용돈처럼 사용해 온 또 다른 인사는 어떠한가. 그래도 자신은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고 한다.
자전거 도둑을 에워쌌던 이 노인들과 같은 일반인들은 이 가당찮은 특권 가진 이들의 변명을 어떻게 생각할까. 평범한 사람들은 그들의 일상적인 삶에서 경우에 어긋나는 사람들을 무리에서 퇴출한다. 하지만 현재의 대한민국은 그렇지가 않다. 특권을 가진 자들은 모두 예외다. 너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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