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
그 말
  • 승인 2021.10.12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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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호

정년을 앞두고 문중산에

이팝나무 밤나무 호두나무를 심는 친구에게

켈리포니아 호두를 먹고 있다고 말 한 적이 있다

기다리라며 머잖아 국산호두 먹여 주겠다고

(내게 있는 것은 네게 있는 것이야)

이따금 찾아와 문 두드리는 말

혹시 지워질까 애써 떠올리는 말

물 언저리 둥글게 감으며 퍼져 나가던 말

냉큼 받아먹고는 여직 갚을 생각 한 번 하지 않는

깊숙이 포옥 오래 안고 갈

지상에서 가장 포근한 말

우리도 소녀 소년인 적이 있었지

먼 풍경 속에 단발머리 까까머리가

꿈틀꿈틀 다가와 교실 긴 복도길 뛰어 다닌다

◇이필호= 1959년 경북 군위 출생. 2010년 사람의 문학으로 등단, 삶과 문학 회원, 대구 작가회의 회원, 2017년 시집 <눈 속의 어린 눈>.

<해설> 〃기다리라며 머잖아 국산호두 먹여 주겠다고 (내게 있는 것은 네게 있는 것이야)〃끝내 유언이 되어 버렸나 보다. 읽고 또 읽어 저 말을 한 친구의 행방을 찾고자 하였다. 시적허용의 한계를 벗어난 것을 보니 그 말을 한 친구는 먼 곳으로 갔나 보다. 그래도 기다리는 국산호두를 한 웅큼 가져 오는 친구의 환한 얼굴을 시인은 기다리고 있다. 기다리는 동안의 귀한 시간에 퍼 올린 시를 읽으며, 그런 친구를 두어 행복한 기다림을 하는 시인의 얼굴을 떠올리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다. -정소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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