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
애증
  • 승인 2021.10.13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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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BDC심리연구소장


사랑은 우리를 천국으로 친절히 안내하는 천사의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어떤 날은 한순간에 어둡고 차가운 지옥으로 끌고 내려가는 저승사자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참 알다가도 모르겠고, 모르겠다가도 알 것 같은 것이 사랑이라는 단어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을 하게 되면,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하나가 아닌 두 가지다. 바로 사랑하지만 미워하는 애증(愛憎)이라는 감정이다. 흔히 가족을 애증의 관계라고 말한다. 분명 가족을 사랑하고 있는데, 이상하게 미운 감정도 많이 든다. 사랑하고 밉고, 밉지만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 두 가지 감정을 두고 오늘도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서 우리는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어릴 때 필자는 사랑의 반대말을 미움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몇 번의 사랑을 하고, 몇 번의 가슴 아픈 이별을 해오면서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결과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 미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치 그것은 집에서 불리는 이름이 있고, 밖에서 공식적으로 불리는 이름이 있는 것과 비슷하다.

어릴 적 밖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놀다가 다칠 때가 있었다. 긁히거나 조금 피가 나는 정도라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냥 대충 옷에다가 쓱 닦아 버리고 다시 놀면 그만이었다. 심지어는 노는 것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피가 났는지도 모를 때도 있었다. 실컷 놀다가 집에 돌아온 나의 팔에 굳어 있는 핏자국을 보고 엄마가 “니 팔에 피 그거 뭐고”라는 말을 해줘야만 그때서야 겨우 “아~내 몸에 상처가 났었구나”라는 것을 알 때도 있었다. 그런데 깊은 상처가 생기고 피가 많이 나기라도 하면 놀던 것을 멈추고 이제는‘걱정 모드’로 돌입하게 된다. 그 걱정은 다친 상처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버지한테 혼나는 것 때문이었다. 다쳐서 피가 철철 나면서도 아픈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아버지한테 혼나는 것이었다. 그때는 우리 아버지만 무서웠던 것이 아니라 다른 친구들의 아버지들도 모두 무서운 존재였던 것 같다. 다치기라도 하면 모두 다친 것에 대한 걱정보다는 부모님한테 혼날 것을 가장 먼저 걱정을 했던 것 같다.

어느 날 필자가 활을 만든다고 낫으로 대나무를 자르다가 손을 크게 베여 피가 많이 났었던 적이 있다. 놀던 것을 멈추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피가 철철 흐르는 손가락을 천 조각을 묶어 급하게 지혈하고 손을 움켜쥐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겁에 질린 아들을 보고 아버지는 “괜찮나?”라는 말보다는 “이노무 자슥, 손 내봐라!” “와~ 자르는 김에 손가락도 확 잘라뿌지”라는 말을 하며 화를 내셨다. 그 말에 담긴 뜻이 무엇인지 그때는 몰랐다. 다친 것 걱정은 안 하고 혼내는 아버지가 내심 서운하고 그냥 무서웠다. 늦은 밤 휴대폰이 꺼진 상태로 늦게 귀가한 자녀에게 화를 내는 부모의 심리도 이와 비슷한 것 같다. “많이 걱정했다. 아무 일 없어서 정말 다행이다. 기쁘다”라는 말보다는 부모는 화부터 먼저 낸다.

어른이 되어 부모가 되고 보니 자녀들이 다치고 오는 날에 왜 화가 먼저 나는지를 알게 되었다. 너무 걱정되고, 염려되는 마음이 겉으로 표현될 때는 화로 표현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녀에 대한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사랑이 없다면 자녀가 어찌 되든 전혀 신경을 안 썼을 것이다. 가족은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생활 공동체다. 그러다 보니 의도가 없다 해도 서로의 상처를 계속 건들게 되는 나쁜 악역을 하게 된다. 이때 가족에게서 애증의 감정이 생기게 된다. 사랑하니깐 자연스럽게 미움도 같이 생기는 듯하다.

사랑이 없다면 미움도 없다. 뿌리가 있기에 가지가 있듯, 미움도 사랑이 있기에 존재하는 감정이다.

사람들은 모두 가시가 있다. 그래서 상대와 너무 가까이 붙어 있으면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밖에 없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어느 정도의 거리가 필요하다. 가족 구성원 각자의 시간과 각자의 공간이 어느 정도 확보될 때 가족도 더 건강히 기능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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