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온의 민화이야기] 수성노인도(壽星老人圖), 범상치 않은 능력자들조차 우러러보는 최고 신선
[박승온의 민화이야기] 수성노인도(壽星老人圖), 범상치 않은 능력자들조차 우러러보는 최고 신선
  • 윤덕우
  • 승인 2021.10.20 21: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수명 관장하는 수노인, 작은 키·큰 머리·수염·학 거느린 모습으로 형상화
윤덕희, 아래쪽에 자리한 신선들이 높은 곳에 위치한 노인 올려다보게해
김홍도, 8폭 병풍 중 한폭에 단독으로 담아 장수가 ‘복 중의 복’임을 표현
불교 영향 받은 민화선 ‘목숨 수’ 적힌 위패 들어 상징 노골적으로 드러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 세계 인구의 건강에 대한 우려가 어느 때보다 극심해진 요즘이다. 건강하게 장수하는 일이 평소보다 요원하게 느껴지는 시기인 만큼, 오랫동안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에 관심이 많은 듯하다.

오래 살고 싶어 하는 것. 인간의 본능 중에 하나이고 인간의 최대 희망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미 오래 전에 이러한 욕망을 그림으로 표현했었다.

수성노인도는 장수를 상징하는 그림으로 유난히 키가 작고, 머리가 크며, 수염이 많고, 백발에 지팡이를 쥐고, 학과 사슴을 거느리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일반적으로 남극성(南極星)의 화신으로 여겨 남극노인(南極老人)이라고도 하는데 장수를 담당하는 별을 후상화한 것으로 한·중·일 삼국에서 모두 인기를 끌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고려시대부터 광범위하게 숭배되었으며, 그림으로도 다수 그려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수성노인(壽星老人)은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남극성(南極星)을 신격화한 것으로 남극노인성(南極老人星), 노인성(老人星), 수성(壽星), 수성노인(壽星老人), 남극성(南極星) 등으로도 지칭된다.

수성노인도(壽星老人圖)에 대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북송대의 <선화화보>에서 찾을 수 있다. 이에 따르면 당대(唐代) 장소경(張素卿), 오대(五代) 황전(黃筌)이 수성상(壽聖像)을 그렸다고 한다. 현존하는 작품을 통해 볼 때, 두상이 길고 키가 작은 수노인 도상의 전형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명대(明代)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명초 궁정에서 제작된 상희(商喜)의 <사선공수도(四仙供手圖)>와 여기(呂紀)의 <남극노인도(南極老人圖)>가 이러한 대표적 사례들이다.
 

사선공수도-대북고궁박물관
사선공수도(사선공수도),상희(商喜)작, 견본 채색,15세기경 제작 143.8 X 98.3cm, 臺北故宮博物院 소장

한산(寒山), 습득(拾得), 유해섬(劉海蟾), 이철괴(李鐵拐)의 신선 4인이 바다를 건너는 모습으로, 그 위 하늘에 학을 탄 수노인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수성노인이 점경인물(點景人物)처럼 작게 그려진데다가 학까지 타고 있긴 하지만 머리가 길고, 키가 작다는 점은 확인된다. 이 그림은 후대 수성노인도 도상에서 승물(乘物)의 일종으로 등장하는 학이 함께 등장한 초기의 사례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이제 우리나라의 수성노인도는 언제부터 그려졌을까?

한국의 경우에도 수성(壽星), 노인성(老人星) 등에 대한 숭배의 기록이 고려시대부터 등장하는 점을 통해 보았을 때 수성노인도 역시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지만 현재 전해지는 수성노인도는 조선 중기의 사례가 가장 이르다.

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도관(道觀)이 건립되고 관련 의식이 치러졌으므로 신선도, 그 중 수성노인도(壽星老人圖) 역시 제의적 용도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조선시대 중기인 중종대(中宗代)에 이르러 도교의 신에 대한 제사장소인 소격서(昭格署)가 혁파되는 등 신선도가 존숭, 예배 대상으로의 입지를 잃어갔다. 소격서 혁파라는 상징적 사건이 발생한 이래 조선에서 종교적 목적을 위한 신선도 제작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대신 이 무렵부터 신선도가 축수와 기복이라는 다른 차원의 성격을 지닌 미술품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수성노인도(壽星老人圖)는 기본적으로 그 성격에 걸맞게 길상적인 성격을 강하게 지닌 작품이다. 물론 이는 모든 신선도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성격이기도 하다. 그러나 수노인도는 장수라는 속성을 가장 뚜렷하고 명확하게 지닌 신선이라는 점에서 다른 신선들보다 길상성이 더욱 두드러진다고 할 수 있다.

조선 초기 윤덕희(尹德熙, 1685-1776)의 <군선경수도(群仙慶壽圖)>에 보면 수성노인의 신선들의 으뜸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군선경수도-윤덕희국립중앙박물관
군선경수도(群仙慶壽圖) 윤덕희(尹德熙) 작 18세기 견본수묵, 28.4 x 19.5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호리병을 들고 지팡이를 짚고 있는 이철괴, 딱딱이를 치는 조국구, 파초선을 들고 있는 종리권, 칼을 찬 여동빈, 복숭아를 든 동방삭 등의 신선들이 물가에 함께 등장하며 높은 바위 위에 앉아 있는 수성노인을 우러러 보는 모습이다. 이러한 신선도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가 복을 기원하는 것이고, 그러한 복 가운데 가장 염원했던 요소가 무엇보다 ‘장수’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여러 신선들 가운데에서 수성노인의 중요성이 컸기 때문에 군선들이 우러러 보는 구도의 그림이 탄생한 것이다.
 

수성노인도- 김홍도
김홍도 작 1779, 130.7×57.6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김홍도의 <군선도병풍>에는 수성노인이 별도의 화면에 단독상으로 한 차례 더 등장하는데, 이는 신선도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가 복을 기원하는 것이고, 그러한 복 가운데 가장 염원했던 요소가 무엇보다 ‘장수’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여러 신선들 가운데에서 수노인의 중요성이 컸기 때문에 군선들 중에서도 단독으로 등장한 것이라고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장면에서 수노인은 도상적 특징 그대로 키가 작기 때문에 같은 병풍의 다른 장면들과 달리 화면의 반을 간신히 넘기고 있으며, 상단의 나머지 절반은 나무 지팡이가 채우고 있다.

화면 상단우측에는 “노자가 푸른 소를 싫어하여 흰 사슴을 불렀겠는가. 도덕경과 큰 복숭아로 장생의 계책을 삼으니 노자의 도보다 크도다”라는 강세황(姜世晃)의 찬문이 적혀있어, 작품의 의미를 설명, 강조해주고 있다.

수성노인은 신선도로서 드물게 일반 회화와 민화 모두에서 활발하게 그려졌다는 점에서 흔치않은 소재였다. 이제 우리의 대중화된 민화 수성노인도를 만나보자.

조선후기의 문인 홍석모(洪錫謨, 1781-1850)가 쓴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1849)의 정월(正月) 원일(元日)에 대한 풍속으로 이와 관련하여 참조가 된다.

“도화서에서는 수성(壽聖), 선녀와 직일신장의 그림을 그려 임금에게 드리고, 또 서로 선물하는 것을 이름하여 세화라 한다. 그것으로 송축(頌祝)하는 뜻을 나타낸다……그러므로 여러 궁가(宮家)와 척리(戚里)의 문짝에도 모두 이것들을 붙이고 여염집에서도 모두 이를 본뜬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따르면 도화서 화원들이 음력 1월 1일에 수성노인을 그려 임금에게 진상했고, 이 밖에 선물용으로 사용하기도 했음을 알 수 있다. 또 궁궐과 귀족들의 집에도 문배 그림처럼 수성노인도를 붙였고 이를 일반 백성들도 광범위하게 추종했음을 언급하고 있다. 이는 매년 새로이 제작해야 하는 세화의 특성상 수성노인도가 많이 제작되었다는 점을 시사한다. 또한 일반 백성들도 이러한 풍속을 따라했다는 데에서 민화로서의 수성노인도가 다수 제작되었으리라는 점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민화 수성노인도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특징적인 것은 일반회화의 도상을 계승하기도, 불교회화의 영향을 받기도, 길상적 상징성을 보다 강화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면모를 보여준다.

불교의 영향을 받아 십우도(十牛圖)표현 기법을 이용하여 수성노인이 사슴 등에 올라타고 동자의 시봉을 받는 모습, 수노인의 손에 목숨 수(壽)자가 적힌 위패 형태의 판자를 들린다던지, 민화가 가지고 있는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상징을 드러냄으로서 우리에게 더욱 친근한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
 

수성노인도- 김홍도
수성도 작가미상 지본채색, 19세기 작, 52.2 X97.0cm 계명대학교 행소박물관 소장

 
수성노인도- 김홍도
수성노인도 박승온 작 지본채색, 2019, 52.2 X97.0cm 작가 소장

오늘 아침 출근길에 라디오 아나운서가 바쁜 일상 속에서도 우리는 시간을 늘려 쓸 줄 안다고 했다. 그 참에 오래 사는 것에 대한 결론을 찾을 수 있었다. 우리 엄니 늘 하시는 말씀이 “너무 오래 살아 좋을 게 없다. 요양병원 밖에 더 가냐”고 하시던데... 장수라는 것이 시간을 오래도록 견뎌내고 살아야 되는 것이 아니라 내게 주어져 있는 시간을 늘려서 쓰면 오래 사는 것이 아닌가... 거창하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적용하지 않더라도 내게 주어진 시간을 아껴 쓰고, 늘려 써서 다른 사람보다 더 오래 쓸 수 있으면 그것이 오늘날의 장수의 뜻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의 수성노인의 상징이 아닐까 라는 어쭙잖은 결론을 내려 보았다. 덕분에 오늘 아침 글의 끝맺음이 번뜩이는 한순간의 생각으로 마무리가 되어 상쾌하다.

박승온ㆍ사단법인 한국현대민화협회 사무국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1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