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교 거부를 보이는 어느 중학생의 속마음
등교 거부를 보이는 어느 중학생의 속마음
  • 승인 2021.10.24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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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미
대구시의사회 부회장
마음과 마음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중학생에게 요즘 학교에는 어떤 애들이 있냐고 물으면“공부하러 온 아이, 밥 먹으로 온 아이, 친구 만나러 온 아이, 그냥 온 아이, 삥뜯으러 온 아이, 그리고 오지 않은 아이” 이렇게 있단다. 자기는 수업시간에 폰만 하는 아이라고 덧붙인다. 아침마다 분주하게 등교하는 아이들은 저마다 희망과 좌절을 교복 속에 숨기고 살아가고 있다.

중3 인 민수는 등교 거부 문제로 어머니에 이끌려 외래를 방문하였다. 중2 까지는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밝은 아이였는데 3학년이 되면서 공부에 흥미를 잃고 결석이 잦아졌다. 코로나로 학교 가지 않는 날은 표정이 밝았다.

진료실에서 만난 민수는 표정이 어둡고 목소리도 작았다. 학교가 왜 가기 싫은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친한 친구는 다른 반에 있고 새로 친구를 사귀려니 너무 힘들어요. 친한 척하면서 다가가면 애들이 이상하게 생각해요. 여드름 많다고 수군거리는 거도 싫고…”

어머니 말에 의하면, 민수는 초등학교 때는 영재수업도 받고 반장도 하고 부모님의 엄청난 기대를 받던 아이였다. 중학교 가서부터 친구 문제로 자주 고민을 해왔고 얼굴에 여드름이 나기 시작하면서 외모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한다.

부모님과의 관계가 그리 원만하지는 못한 것도 큰 요인이었다. 세상에서 실패하고 가장 부끄러운 모습을 아무 이유없이 품어줄 수 있는 사람이 부모님일텐데, 민수는 그런 안식처가 없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항상 바쁘고 놀아주지는 않고 잔소리가 많았다. 엄마는 친하지만, 일로 바빠서 함께 시간이 없고 전문 놀이기관이나 도우미 이모의 손에서 자랐다. 결석 문제로 학교에서 전화를 받게 된 아버지는 아들을 야단치다가 때리는 일까지 생겼다. 아버지의 체벌이후로 민수는 마음 문을 닫았고 방안에서 나오지도 않았다.“아빠는 그냥 저의 생물학적인 부친..입니다...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중학생들에게 가장 큰 고민이 무엇인지 물으면 대인관계라고 답한다. 형제 없는 것보다 친구 없는 게 더 힘들고 공부 못하는 것보다 인기 없는 게 더 죽을 맛이라고 한다. 애들이 가장 고민하는 대인관계에 대해 교육을 하거나 친밀한 환경을 만들어준 적이 있는가. 요즘 아이들은 부모님과 다른 환경에서 자랐다. 와이파이 숲에서 미디어가 키워낸 세대다. 복잡한 겜용어, 웹용어 방송유행 검색어는 모두 알면서 시사용어는 정작 모른다. 맞벌이 부모 밑에서 형제도 없이 사람이 그리운 환경에서 외롭게 컸다. 아이들이 겪어온 이런 외로움이란 정서를 어른들은 잘 이해하지 못한다. 풍요롭게 할 것 다 하면서 편하게 커서 철이 없다고 오히려 꾸중한다. 여기서 어른에 대한 분노가 생기기 시작한다.

태교로 영어도 배우고 음악도 배우느라 태아기부터 스트레스를 받으며 태어난 아이들은 부모의 superkid가 되기 위해 고단한 인생을 시작한다. 특별한 아이가 못되면 부모가 실망할까봐 시키는대로 열심히 한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놀이는 금기어가 되고 대학생들보다 더 많은 시간 공부를 한다는 통계도 있다. 초등학교를 마칠 때면 세상에서 할 고생의 절반 이상을 다한 것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중학교에 오면 수포자 다포자인 학생과 소위 명문고 진학을 위한 트랙에 어떻게든 들어가려는 부류로 나누어진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사춘기 전쟁이 시작된다. 이 전쟁은 모두에게 큰 고통을 안긴다. 아들이 사춘기일 때 아버지는 탈모가 시작되는 중년기다. 혈기왕성한 아들과의 부딪힘에서 처음으로 울어봤다고 하는 아빠도 있다. 사춘기전쟁에서 인생의 상당한 에너지를 소진하면서 회피형 인간으로 변해가기도 한다.

학교에 안가려는 민수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의 외로운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다. 혼자 얼마나 힘들었을까. 부모님 실망할까봐 혼자 얼마나 고민이 많았을까. 학교가지 않기 까지 자존심을 지키고 자신의 인생을 망치지 않으려고 얼마나 안간힘을 썼을까. 등교거부는 민수의 처절한 노력의 결과였다. 그는 옳고 그는 노력했고 자기 인생을 사랑한 사춘기 예민한 한 소년일 뿐이었다.

한 사람의 청소년을 인간으로 키워내기 위해서는 어른이나 아이 둘 다 살기 위한 긴 결투를 해야 한다. 시간이 흘러주어야 하고 격려해주는 것 희망을 잃지 않는 것, 외로운 아이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 결국 약이다. 청소년에게 미성숙은 허용되어야하고, 미성숙을 겪어보아야 성숙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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