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세상을 만나
살포시 눈을 틔우던 날
나는 너를 맞아
퍽이나 반가웠다
결국 계절은 멈추지 않고 있었다
네가 노란 속살을 보이며
흐드러지게 웃던 날
나는 석양을 등진 채로
불붙은 너의 살갗 속으로
점점 녹아들었다
마침내 계절의 여왕자리에
네가 서 있었다
네가 곱던 자태를 그리워하며
서러워하던 날
꽃잎은 하나 둘 떨어지고
시간은 허무함 속에
속절없이 지나갔다
자연의 흐름 앞에
모두는 똑같다는 듯이
◇박철언= 1942년 경북 성주産. 서울법대졸, 변호사, 법학박사, 건국대학교 석좌교수, 제3회 순수문학 신인문학상수상(95년),영랑문학상대상, 제20회 김소월문학상(18년) 시집: 작은 등불 하나, 따뜻한 동행을 위한 기도, 바람이 잠들면 말하리라, 산다는 것은 한줄기 바람이다.
<해설> 목련이 피고 지는 것을 보면서 시인은 철학적인 말을 남겼지만, 그 이전에 인간의 마음도 잔뜩 드러내었다.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보면서 저렇게 애달픈 마음을 느껴보지 않은 이는 저 심정을 알까 모르지만, 특히 목련은 유난히 그 낙화가 아쉽고 허무하다. 심지어 추하다는 표현을 함으로써 개화를 하기 전과 만개할 때까지의 그 모습을 잊으려고 하는 듯하다. 실제로 누렇게 꽃잎이 떨어진 것을 보면 그 민망함에 고개를 돌려 버릴 정도다. 그러나 욕심이 지나치지 않은가. 피기 전과 피었을 때 그토록 예쁘면 되었지, 떨어진 모습까지 어쩌란 말인가! -정소란(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