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희 독주회 5일 대구콘서트하우스 “굿판에 숨은 해금 전면에 내세웠다”
이승희 독주회 5일 대구콘서트하우스 “굿판에 숨은 해금 전면에 내세웠다”
  • 황인옥
  • 승인 2021.10.31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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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꾼 오지영·타악 방지원 등 협연
굿음악을 해금 중심으로 해석·연주
현대 속 전통음악 연주자 역할 고민
계승·재창작·타장르와 컬래버 시도
음원 제작 활발하게 하는 이유?
악보없는 전통음악 남기려고
해금연주자이승희
해금연주자 이승희.

해금연주자 이승희가 추구하는 음악적 방향성은 2016년부터 자신의 이름을 건 시리즈 연주회를 기획하며 붙인 제목 ‘그때 놀던 판’에 명징하게 드러나 있다. 전통음악의 활황기였던 조선 시대로 거슬러가, 정형화되기 이전의 전통음악의 원류를 복원한다는 의미가 ‘그때’라는 단어에 새겨져있다. 그리고 가장 날것에 가까운 굿이나 탈춤, 판소리 등 민초들의 삶과 흥이 담긴 음악을 중심으로 한다는 방향성이 ‘판’이라는 단어에 새겼다.

해금연주자 이승희의 시리즈 연주회 ‘그때 놀던 판’ 공연이 5일 오후 7시30분 대구콘서트하우스 챔버홀에서 열린다. 이번 연주회의 부제는 ‘숨은 굿소리’. 굿소리를 주제로 진도씻김굿, 경기도도당굿, 동해안별신굿 등의 굿 음악을 해금 중심으로 재구성해 연주한다. “굿판 속에 숨겨진 해금의 소리를 찾아 소개하는 이번 공연을 통해 새로운 굿소리를 선사하고 싶다.”

다양한 지역의 굿소리를 선사하는 이번 공연은 2019년 ‘그때 놀던 판’ 공연의 2021년 버전이다. 2019년 공연 당시 부산시무형문화재 제23호 부산기장오구굿 김동언 보유자와 국가무형문화재 제82-1 동해안별신굿 방지원 전수자, 국가무형문화재 제82-1 동해안별신굿 조종훈 이수자와 함께 굿판의 해금을 재조명한 바 있다. 이번 공연에는 소리꾼 오영지, 타악 방지원과 박창원 그리고 영남대 제자 김지은과 김보혜가 해금으로 함께 한다.

해금은 전통 악기 중에서 줄의 수가 가장 적다. 두 줄의 예술이다. 줄이 놓여 있고 그 줄을 손가락을 누를 수 있도록 한 길쭉한 나무판인 지판 또한 표시되어 있지 않아 오직 연주자의 감각과 경험으로 익혀야 한다. 그만큼 연주자의 예민한 감각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악기다. 하지만 의외로 누구나 쉽게 연주할 수 있는 악기이기도 하다.

“‘거지깽깽이’라는 옛말이 있다. 여기서 깽깽이가 해금이다. 거지들도 쉽게 연주할 수 있는 악기였고, 그들의 어슬픈 연주에도 한 그릇은 거뜬히 얻어먹을 수 있을 만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악기이기도 했다.”

이승희는 최고의 명문학교를 두루 거쳤다. 국립국악고, 서울대 음악대학 국악과 학사,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예술전문사, 서울대 음악대학 음악과 박사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 (사)정가악회 단원으로 활동하다 2016년부터 자신의 이름을 건 독주회 ‘그때 놀던 판’ 시리즈 공연을 시작했다.

해금이 무대 위의 주인공이 된 것은 불과 얼마 되지 않는다. 해금은 피리나 거문고 등 중심이 되는 악기를 받쳐주는 주변부에 불과했다. 김홍도는 춤추는 아이와 악사들을 그린 작품 ‘무동도’에서 춤추는 아이와 좌고, 장고, 피리, 대금 연주자의 얼굴을 정면을 향하게 하고, 해금 연주자만 뒷모습으로 묘사했는데, 이는 해금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승희는 김홍도가 뒷모습으로 묘사한 해금을 무대 중앙에 놓고 싶어한다. 그는 사람의 목소리를 가장 닮은 악기이자 두 줄의 현으로 가장 넓은 음역대를 소화하는 풍요로운 악기인 해금의 매력이야말로 주인공으로 부족함이 없다는 믿음을 견지한다.

“대부분 악기의 산조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됐는데 해금 산조는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다. 해금은 어떤 연주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지만 대우를 제대로 받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정말 재미있고 매력적인 악기인 것은 분명하다.”

전통음악은 입에서 입으로 전수되는 구전심수(口傳心授)의 방식을 취해왔다. 현대에 와서 악보로 기록되었지만 이승희는 정형화 이전의 원류에 늘 호기심의 촉을 세웠다. 그가 경계하는 것은 전통음악이 정체되는 것이다. 원류에 대한 관심은 “정체없이 계속해서 변화하며 흘러가야 한다”는 평소의 신념과 맞닿아 있다. 그는 조선 후기로 타임머신 타고 가서 선조들에게 묻고 싶어한다. ‘대체 여기서 왜 변주했어요?’라고. 원류에 대한 질문이다.

그가 전통음악을 인스턴트커피에 빗댔다. “인스턴트커피는 어디서나 먹을 수 있지만 그 기원을 찾아가면 고유의 맛을 가진 다양한 커피들을 만날 수 있다. 그 커피들을 찾으면 그것을 원재료로 또 다른 다양한 인스턴트커피를 만들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원료가 중요하다.”

이승희는 현대를 살아가는 전통음악 연주자의 역할에 고민이 많다. 현대에 와서 연주자는 연주, 창작자는 창작분야에만 집중하는 것으로 역할이 굳어졌지만, 조선 시대만해도 연주와 창작 사이의 경계를 두지 않았다. 이같은 열린 역할론이 음악적인 자산을 풍요롭게 한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승희는 전통음악을 계승하면서 전통을 기반으로 한 창작에 도전하고, 현대음악 등의 타 장르와의 컬래버레이션에도 적극적이다.

“전통음악은 자신의 삶을 응원하거나 위로하는 것에서 출발했다. 스스로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고, 퍼트렸다. 나는 그 시대 음악인의 다양했던 역할들에 주목하며 그 시대의 방식으로 음악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음반 제작에도 적극적이다. 지금까지 이승희 해금 풍류 ‘가즌회상(2020)’, ‘그때 놀던 판 Ⅱ-숨은 굿소리(2019)’ 음반을, ‘그때 놀던 판 : 디지털(2018)’, 경지역 해금명인들의 선율 (2017년), ‘이승희 노래하는 해금’(2010), ‘이승희 해금 줄풍류’(2010) 등의 음원을 발매했다.

음원이나 음반 제작은 기록의 일환으로 시도됐다. 탈춤이나 굿소리 등 악보화 되지 않은 전통음악을 기록하고, 이를 통해 교육자료로도 활용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는 전통음악분야를 “여전히 블루오션”이라고 강조했다.

“아리랑만 해도 그 종류가 수천 가지가 넘는다. 굿 음악은 그 종류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수많은 순간, 수많은 장소에서 만들어지고 향유되어왔던 전통음악의 발전과정을 살펴서 그것을 따르면 우리 음악의 지평은 한층 더 넓어질 것이다. 나는 ‘그때’의 방식으로 전통음악을 하고 싶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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