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엔 신맛, 여름엔 쓴맛, 가을엔 매운맛, 겨울엔 짠맛 살려야
봄엔 신맛, 여름엔 쓴맛, 가을엔 매운맛, 겨울엔 짠맛 살려야
  • 김종현
  • 승인 2021.11.02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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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음식 세계로] (36) 선비음식의 식재료·요리상
수수·피·벼·기장·조는 곡식
소·돼지·양·꿩은 고기반찬으로
쌀청주·탁주·감주는 술로 담궈
소고기국-쌀·개고기국-찰기장
돼지고기국-피밥·오리고기-보리
밥·국·반찬의 조화로움 중요시
봄엔 술로 돼지고기 요리
여름엔 말린 생선에 개기름 등
계절별 식재료 정해 풍미 살려
조선건국슬로건
정도전과 이성계의 조선건국 슬로건이었던 ‘쇠고기국에 흰 쌀밥’. 그림 이대영

음식을 먹을 때에 “너무 도정(搗精)했다거나 잘게 썰었다고 해서 기피하지 않으며, 다만 음식이 부패했거나 맛이 달라진 것은 먹지 않는다. 생선은 뭉개졌거나 고기가 썩은 것은 먹지 말라. 음식의 색깔이 변했거나 악취가 나면 먹지 말라. 설 익히면 배탈 날 수 있으니 먹지 말라. 제때음식 혹은 계절별 음식이 아니거나(不時不食), 요리가 지저분하거나, 음식에 소금기가 너무 많으면 조심해야 한다. 밥이나 술을 소화해 낼 능력이 없으면 먹지 말라. 식탐을 하지 말고, 생강을 자주 먹는 것도 좋다(不撤薑食, 不多食).”라고, 공자의 식습관을 논어에 기록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선비들의 음식을 살펴보면, 곡식재료로는 수수(黍), 피(稷), 벼(稻), 기장(粱), 흰 기장(白黍), 조(黃粱) 등이었으며, 육식반찬으로는 쇠고기 국, 양고기 국, 돼지고기 국과 소고기 구이, 젓갈(醬), 쇠고기 산적, 육젓과 소고기육회, 돼지고기 불고기, 개장과 물고기회, 꿩고기, 토끼고기, 메추리고기 및 종달새 고기 등이 사용되었다. 음료수(술)로는 쌀 청주와 탁주, 수수 청주(고량주)와 수수탁주, 기장청주와 기장탁주, 혹은 엿기름(malt)으로 감주(단술)를 담기도 한다. 쌀, 기장, 수수, 옥수수 등을 다려서 조청(造淸)을 만들기도 한다.

특이한 맛을 내고자 양념을 사용하는데 i) 여뀌(蓼, water pepper)를 쌀죽에는 넣지 않으나, 물고기의 비린내, 피비린내 혹은 잡냄새를 잡(없애)고자 돼지고기, 닭고기, 물고기, 자라고기 등을 삶을 때엔 여뀌를 넣고 삶았다. 오늘날 단지 일본에서만 생선회의 식중독 예방과 토핑용으로 이용하고 있다. ii) 별미를 내고자 육포에는 개미(전갈)알젓, 물고기포로 국을 끊일 때는 토끼고기젓, 고기국(죽)을 끊일 때는 생선젓갈, 생선회에는 겨자된장, 고기육회에는 조갯살 젓갈을 사용하고, 마른 복숭아와 매실이 들어가는 음식에는 물고기알젓(卵鹽)을 사용한다. 음식에서도 계절별미를 살리고자 ‘밥은 봄철엔 따뜻하게, 국은 여름처럼 더워야 하며, 된장은 가을처럼 서늘해야 좋고, 마시는 음료수는 겨울처럼 차야 제 맛이다.’ 이를 다시 세분하면, i) 봄철엔 신맛이 많아야(凡和春多酸), ii) 여름에는 쓴맛이(夏多苦), iii) 가을에는 매운맛이(秋多辛), iv) 겨울엔 짠맛이 많아야(冬多鹹) 하나, v) 부드럽고 단 것으로 조화(調以滑甘)시켜야 한다.

또한 옛 선비들이 밥, 국과 반찬의 조화를 언급하고 있는데 : i) 소고기국에 흰 쌀밥이 좋고, 양고기 국에 메 기장밥, 돼지고기 국에 피밥, 개고기 국에 찰기장, 오리고기에 보리밥, 물고기 국에 묵은 쌀밥이 좋다. 정도전(鄭道傳, 1342~1398)과 이성계(李成桂, 1335~ 1408)의 조선건국(朝鮮建國) 슬로건이 ‘쇠고기국에 흰 쌀밥’이었다. ii) 봄에는 어린염소 고기와 돼지고기가 좋으니 술을 써서 요리하고, 여름에는 말린 꿩고기와 말린 물고기가 좋으나 개기름을 사용해 요리하라. 가을엔 송아지고기와 새끼사슴고기 좋으니 닭기름을 써서 요리한다. 겨울에는 생선과 기러기고기가 좋으니 양 기름을 써 요리한다. iii) 회고기를 먹을 때는 봄에는 파를, 여름엔 개자(芥子, mustard seed)를 곁들어 먹는다. 돼지고기에 봄에는 부추를 가을에는 여뀌를 사용한다. 살코기 음식에는 파를, 기름기가 많은 음식은 부추, 제물로 올라갔던 닭고기 물고기 혹은 돼지고기엔 오수유(吳茱萸)를 써서 맛을 낸다. 맛을 조화시키는데 식초를, 짐승고기에는 매실을, 메추리, 닭 및 비둘기고기엔 여뀌나물을 섞어서 요리한다. 방어, 망성어, 꿩 등을 요리할 때 향신료를 사용하나 여뀌를 넣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먹지 않고 버려야 하는 부분으로 i) 자라 새끼, ii) 이리고기의 창자, iii) 개고기의 콩팥, iv) 삵 고기의 척추, v) 토끼의 꽁무니, v) 여우의 머리, vi) 돼지의 뇌, vii) 물고기 등뼈가 굽어져(중금속중독) 있으면 뼈를 버리고, 자라의 항문 부분을 잘라버린다. 마지막으로 연령에 따른 신체변화 현상으로 “50세가 되면 노쇠하기 시작하고, 60세에는 고기반찬 없이는 배가 부르지 않으며, 70세가 되면 명주옷이 아니면 따뜻하지 않는다. 80세이 되면 사람의 체온이 아니면 따듯하지 않고, 90세가 되면 비록 사람의 체온을 얻을 지라도 따듯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우리나라 선비들의 음식에 대한 감사표시

동서고금, 동식물을 막론하고 최고의 은총(God’s grace) 혹은 은혜로운 선물(graceful gift)은 바로 식사시간(mealtime)이다. 안식, 평온과 배부름을 동시에 얻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인류는 이에 대해서 감사했고, 찬미했다. 한해 추수에 감사(thanksgiving) 혹은 매끼마다 감사(mealtime thanksgiving)를 했다. 감사(感謝) 혹은 찬미(glorification)하는 때, 방식, 표현 등은 다양하다. 종교, 문화, 의식, 민족성 등에 따라서 같은 감사의 의미라도 다른 버전(version)으로 이행했다. 대다수는 식사전후에 표시하나, 몽고유목인들은 양(가축)과 같이 일어나자마자 따끈한 수태차를 마련해 참바가라브(Chamba Garav)산을 향해 “가축을 자식처럼 먹여주시고, 우리를 살게 하시는 어머니”라고 감사기도를 드리며, 수태차를 뿌림으로써 하루가 시작된다. 우리나라 한민족은 성산(聖山)인 백두산을 향해서 기도를 했고, 산이 없는 곳에선 ‘땅 어머니(Pacha Mamma)’에게 감사했다.

어릴 때에 아버지와 겸상을 하다가 밥풀을 흘리면 “쌀 한 톨이 사람의 입에 들어가는데 88번이나 노고하시는 분들이 있기에 소중한 음식이니 흘리지 말고 먹어라. 그래서 쌀미(米)자는 88번(八十八)이란 의미다.”라고 했다. 명심보감(明心寶鑑)을 서당에서 배울 때 훈장님께서도 “몸에 걸치는 옷을 입을 때 옷을 짠 분들을 생각하고, 하루에 3번 밥을 먹을 수 있도록 해 준 농부의 노고에 감사해야 한다.”고 하셨다. 오늘날 우리들도 잘 먹는다는 건 우리에게 생명을 준 식물과 동물에게, 그 식물과 동물을 건강하게 키워 준 농부에게, 그리고 음식을 정성껏 만들어 준 사람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는다. 그래서 군사훈련소 등에서는 식사 전 “잘 먹겠습니다(I will eat well)” 혹은 식사 후 “잘 먹었습니다.”라는 감사표시를 한다. 이와 같은 사례는 일본에서도 “잘 먹겠습니다(いただきます)”와 “잘 먹었습니다(ごちそうさまでした).”라고 표현한다.

인류문화적 측면에서 살펴보면, 몽고, 네팔, 우리나라, 페루, 아르헨티나 및 파푸아 뉴기니 등지에는 현재까지 식사에 대한 감사 혹은 기원이 있다.

우리나라 ‘고씨례(高氏禮)’가 옛 농경사회에서 이행된 것이다. 1675(숙종원)년 도교기인(道敎奇人) 북애자(北崖子, 생몰본명 미상)가 저술한 ‘규원사화(揆園史話)’ 고대사에선 “옛날에 고시(高矢)라는 분이 인간에게 불을 얻는 방안, 농사에 파종과 수확까지를 가르쳤다. 그래서 후대농부들이 그 은혜에 감사해서 밥을 먹을 때에 ‘고시네’라고 했다(耕農樵牧者, 臨飯而祝高矢者, 高矢氏之稱也).”고 적고 있다.

1746(영조22)년 김수장(金壽長)이 편찬했던 ‘해동가요(海東歌謠)’에도 ‘고스레 고스레 사망(事望) 일게 오쇼서.’라는 시조가 실려 있다. 고시네, 고스례 혹은 고씨례 등으로 다양한 버전의 설화가 내려오고 있다. 1946년 최남선(崔南善)의 ‘조선상식문답(朝鮮常識問答)’에서는 ‘고시레’를 고사(告祀) 혹은 굿과 같은 어원이라고 했다. 그는 음식에 대한 감사의식을 굿의 작은 규모로 봤다. 기원은 고조선(BC 2333~BC 108) 이전 환인조선(桓國, BC 6779~ BC 3897) 때 제3세 환인인 천황 즉, 고시리 환인(古是利桓因)이 농경목축방안을 창안하시고, 식생활과 삶을 개선하여 풍족함 삶을 주신 은총에 감사하는 표시로 시작했다는 것이다.

일본사회에서 음식을 만들고자 ‘동분서주하는 상대방의 노고(御馳走)’를 ‘고츠소우사마(御馳走樣)’로 표현했다. ‘~씨’ 혹은 ‘님’의 존칭수준을 넘어서는 ‘하느님(樣)’혹은 ‘예수님(樣)’에 해당하는 ‘사마(樣, さま)’라는 객체존칭(客體尊稱)까지 사용해서 신성시(神聖視) 했다. 우리말로 ‘고츠소우(御馳走, ごちそう)’를 단순히 향응, 대접, 진수성찬 정도로 번역한다면 신성시되는 깊이를 모르게 된다. 또한 ‘수고했습니다’를 “오츠가레사마데시다”라고 표현하거나 ‘고생 많았습니다’ 의미로 ‘고구로사마데시다’라는 표현은 우리나라의 ‘고시레’와 같이 감사의식에서 나온 말이다. 물론 이런 감사에 “변변찮았습니다”라고 ‘오소마츠사마데디다’라고 대답을 한다.

이런 깊은 의미를 만끽하고자 일본여행을 떠나기 전에 아예 감사메모(thank-u memo)를 자필로 정성들여 준비한다. 내용은 “이것(이런 음식)은 이제까지 먹었던 가운데 가장 맛이 있습니다(これは 今まで 食べた 食べ物の中で 最も味があります).” 혹은 “태어나서 처음 먹게 해(최고의 맛을 만들어) 주신 노고에...(生まれてはじめてのご馳走だ...)”라고 적는다. 그다음에 그 식당을 찾아가면 대부분은 눈에 잘 뛰는 곳에 그 메모쪽지가 붙어 있다.

글=권택성 코리아미래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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