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과 나중(鼻祖·耳孫)
처음과 나중(鼻祖·耳孫)
  • 승인 2021.11.04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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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규 대구예임회 회장 전 중리초교 교장
대통령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각 정당마다 예비경선을 거쳐서 적정한 숫자를 선택하고, 본선을 거쳐서 정식으로 나설 후보를 뽑았고 뽑고 있는 중이다. 나름대로의 대표성은 있겠지만 한마디로 복잡다단하다. 경선에서 떨어진 후보들의 마음은 어떨지도 궁금하다.

옛날 중국의 노나라에서는, 사냥을 한 뒤에 잡은 것이 많고 적음을 비교하여 많이 잡은 사람이 적게 잡은 사람의 것을 무조건 빼앗아 갔다. 이것을 ‘엽각(獵較)’이라 하였다. 엽각에서 잡은 동물로 제물을 사용했던 것은 노나라의 풍속이었다.

맹자와 제자 만장과의 대화에서 공자의 엽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만장은 스승인 맹자가 높은 사람이 주는 예물을 아무 거리낌 없이 받는 것을 보고 매우 탐탁지 않게 여겼다. 백성들로부터 재물을 수탈하던 당시의 무도한 제후들이 주는 예물이었기 때문이다.

만장은 말끝마다 ‘옳음(義)’을 강조하던 스승 맹자가 언행일치하지 않음을 항상 못마땅해 했다. 맹자의 처신에 조금이라도 잘못이 있으면 집요하게 논쟁하고 비판하였다.

그러한 만장에게 맹자는 “공자께서 노나라에서 벼슬을 하셨다. 노나라 사람들이 엽각(獵較)을 하자 공자도 엽각에 나섰다”라고 하였다.

만장은 “공자가 벼슬한 것은 정치에 도를 실천하기 위해서였는데 어째서 엽각을 하셨습니까?”하고 되물었다.

맹자는 “물론 공자는 도를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공자는 엽각이 나쁜 것임을 알았다. 그래서 제사에 쓰이는 알맞은 그릇 수와 그곳에 담을 알맞은 제물의 숫자를 적어서 보관하고, 옳지 않은 엽각을 없앴다. 내가 제후가 주는 예물을 받는 것이 무슨 문제냐?”고 반문하였다.

공자는 자신의 도가 행하여 질만한 군주를 보고 벼슬한 적도 있었고, 군주의 예후가 적절하였기 때문에 벼슬한 적도 있었으며, 군주가 어진 사람들을 우대하며 받들었기 때문에 벼슬한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공자는 3년이 되도록 한 나라에 머무른 적이 없었다. 이것은 공자가 도를 실천하기 위함임을 만장에게 일깨웠다.

대통령 후보를 뽑는 지금의 선출 방식도 엽각(獵較)이다. 표를 많이 얻은 사람이 적게 얻은 사람들의 표를 모두 가지고 가서 각 정당의 대통령후보가 된다는 것은 엽각과 같은 방식이고 같은 이치이다. 여기에서 이리 흩어지고 저리 모이는 이합집산이 생긴다. 이해관계가 얽혀 묵계가 생긴다. 사람들은 대통령바라기가 된다. 나중 것의 바탕은 맨 처음의 것에서 비롯된다.

영조 때의 실학자 이익(李瀷)의 성호사설에 ‘비조·이손(鼻祖耳孫)’이라는 말이 있다. ‘비조(鼻祖)’는 시조(始祖)를 말하고, ‘이손(耳孫)’은 후손을 말한다. 비조는 처음을 말하고, 이손은 나중을 말한다.

사람들은 짐승이 잉태를 했을 때는 코(鼻)가 먼저 생긴다고 하였다. 칼의 머리는 검비(劍鼻)라고 한다, 칼자루 속에 들어박히는 목 쪽의 쇠태가 검비이다. 신발의 머리를 혜비(鞋鼻)라 한다. 예전에 신던 목이 긴 신발의 머리 부분이 혜비다. 이렇게 코는 나중 것의 바탕이 되는 맨 처음의 것이다.

그릇의 옆에 붙어 있는 작은 손잡이를 귀(耳)라 한다. 옛날 솥의 운두 위로 두 귀처럼 삐죽이 돋은 부이는 솥귀를 말한다. 곡식의 분량을 헤아리는데 쓰는 곡이(斛耳)는 섬귀를 말한다. 귀는 자칫하면 꼬리도 없고 머리도 없는 듯이 보이지만 힘이 있어야 들 수 있다. 지혜의 힘이지 세력은 아니다.

고려시대에 분홍방(紛紅榜)이란 말이 유행했다. 고려 우왕 11년에 국자시라는 과거시험이 있었다. 시관은 왕명의 출납을 담당하는 좌대언의 벼슬을 하던 윤취(尹就)였다. 합격자가 99명이었는데 권력을 잡고 있는 세도가의 아이들이 많았다. 아이들은 분홍저고리를 입었고 입에서는 젖비린내가 날 정도로 어렸었다. 그들을 일컬어 분홍방이라고 하였다. 윤취가 시관을 올바로 하지 않아 놀림조로 생긴 말이다.

하나의 주장으로 사람들을 설득하는데 실패하면, 교묘히 다른 주장으로 넘어 가려는 현실 왜곡의 관리자가 많이 생겼다. 처신이 올바르지 않다.

볼테르는 ‘사회는 발전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했다.

‘마음이 멀어지면 사는 곳도 외딴곳이 된다네. 동쪽 울타리 아래서 국화를 캐다가, 멀리 있는 남산을 바라보노라’던 도연명의 시가 더욱 그리운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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