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적인 용어가 됐다. 거리두기란 단어가 그리 살갑지는 않다. 때로는 인간관계도 적당한 거리두기는 멀리 갈 수 있다. 가깝게 지내는 지인이 하소연을 했다. 부모사랑을 독차지한 외동아들이 결혼을 했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손녀들이 태어났다. 세상에서 엄마가 가장 위대하고 훌륭하고 멋지다고 말했던 아들이 변했다고 했다.
품 안의 자식이라 했던가. 자식이 어릴 때는 부모의 뜻을 따르지만, 성인이 되면서 자신의 소신대로 행동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옛 어른들의 자식에 대한 서운함과 만감이 교차하는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결혼시키면 부모의 도리는 다했고, 아들 며느리 효도받고 손자 손녀 재롱 보며 이젠 당신의 인생을 멋지게 살고 싶었다. 부모를 거역할 줄 모르던 아들이 며느리 앞에서 사소한 일에도 본인의 주장을 내세우곤 했다. 외동아들이라 마마보이로 오해받을까 봐 그러려니 이해하려고 했으나 그런 일 들이 잦았다. 고부간의 일에도 수시로 끼어들어 아내 편을 들곤 했다. 일상에서 일어난 별거 아닌 일에 아들이 대변하고 참견함으로써 사태를 악화시켰다. 고부간에 별문제 없이 잘 지내왔지만, 아들의 행동 때문에 며느리까지 서운했다. 인간은 가장 가까운 사람의 영향을 받는다. 한 집에 사는 며느리 탓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지척에 있는 부모에게는 주말에 나들이 한번 가자고 하지 않던 아들 내외가 처가 부모님 이랑 한우구이 먹고 왔다는 손녀 얘기에 씁쓸한 마음을 달랬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식에게서 멀어져 가는 마음이 힘들다고 했다.
며칠 전, 삼십 대의 이혼녀가 회원 등록을 했다. 처음에 여동생이 의뢰를 했다. 언니가 과거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정신적으로 무의미한 삶을 사는 것이 안타까워 전화상담을 해온 것이다, 이후 언니가 망설임 끝에 동생의 권유로 사무실로 오게 되었다. 그녀는 천주교 신자에 공기업에 근무하고 있는 재원이었다. 이혼사유는 시부모의 지나친 간섭에 남편의 방관이었다.
사내커플로 짧은 연애 끝에 결혼했다. 남편은 사내에서 부잣집 아들에 외모도 출중한 인기남으로 소문나 있었다. 알고 보니 부모님이 사업으로 부도가 나서 전세방도 겨우 그녀가 보태서 살림을 차린 빚 좋은 개살구였다. 신혼시절부터 시부모님의 간섭이 시작되었고 며느리의 월급봉투까지 관리하려들었다. 불시에 아들 집에 들이닥쳐 냉장고 문을 열고 잔소리를 했다. 며느리는 매일 문안 전화를 해야 했고, 시부모의 비위를 맞추려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대접을 하고 백화점에서 비싼 옷을 사드리곤 했다. 때로는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시부모님의 불평불만을 감당해야 했다. 그녀는 견디다 못해 말대꾸를 했고, 시부모님의 폭력으로 이어졌다. 더욱 속상한 것은 남편의 수수방관이었다. 남편은 부모님 눈치만 보고 오히려 이혼을 요구했다 한다. 남편만이라도 자신을 이해하고 시부모님과의 중재 역할을 했더라면 이혼만은 하지 않을 것이라 했다.
두 사례를 보면서 슬기롭지 못한 남성들의 행동이 참 안타깝다. 부엌에서는 아내 편을 들고 안방에서는 어머니 편을 들어주라는 말이 있다. 아내도 어머니도 둘 다 소중한 존재다.
너무 과하지도 지나치지도 않은 중용의 미덕이 필요하다. 부모 자식 간에도 적당한 거리두기는 필요하다. 가족관계나 친구사이도 마찬가지다. 적당한 거리두기를 했으면 입지 않았을 마음의 상처를 너무 가까이한 탓에 입을 수도 있고 , 반대로 줄 수도 있다. 그렇다고 멀리하고 지내면 소원해지고 또 보고 싶은 것이 가족과 친구 관계이니 적당한 거리두기는 참 묘한 힘이 있다. 그래서 인간을 사람(人)과 사람 사이 (間)로 정의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최적의 거리두기는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세심한 주의와 배려 노력이 필요하다. 너무 가까이 해도 안되고 그렇다고 너무 멀어도 안 되는 거리두기는 말처럼 그렇게 쉽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 관계는 불가근불가원( 不可近 不可遠)이라는 말도 있다. 너무 가까이 해도 안되고 너무 멀리해도 안 되는 적당한 거리가 최적이라는 말이다.
아내와 어머니 사이에 적당한 거리두기를 했더라면, 어머니와 아내도 안 섭섭하고 고부간의 큰 갈등 없이 자연스럽게 해결하였을 것이다. 또한 시부모의 폭력에는 남편인 아들의 슬기로운 역할이 있었더라면 이혼만은 피하지 않았을까? 이 가을에 성혼이 돼 결혼을 알리는 회원들이 많다. 슬기로운 거리두기로 지혜롭고 행복한 결혼생활이 되기를 빈다.
품 안의 자식이라 했던가. 자식이 어릴 때는 부모의 뜻을 따르지만, 성인이 되면서 자신의 소신대로 행동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옛 어른들의 자식에 대한 서운함과 만감이 교차하는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결혼시키면 부모의 도리는 다했고, 아들 며느리 효도받고 손자 손녀 재롱 보며 이젠 당신의 인생을 멋지게 살고 싶었다. 부모를 거역할 줄 모르던 아들이 며느리 앞에서 사소한 일에도 본인의 주장을 내세우곤 했다. 외동아들이라 마마보이로 오해받을까 봐 그러려니 이해하려고 했으나 그런 일 들이 잦았다. 고부간의 일에도 수시로 끼어들어 아내 편을 들곤 했다. 일상에서 일어난 별거 아닌 일에 아들이 대변하고 참견함으로써 사태를 악화시켰다. 고부간에 별문제 없이 잘 지내왔지만, 아들의 행동 때문에 며느리까지 서운했다. 인간은 가장 가까운 사람의 영향을 받는다. 한 집에 사는 며느리 탓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지척에 있는 부모에게는 주말에 나들이 한번 가자고 하지 않던 아들 내외가 처가 부모님 이랑 한우구이 먹고 왔다는 손녀 얘기에 씁쓸한 마음을 달랬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식에게서 멀어져 가는 마음이 힘들다고 했다.
며칠 전, 삼십 대의 이혼녀가 회원 등록을 했다. 처음에 여동생이 의뢰를 했다. 언니가 과거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정신적으로 무의미한 삶을 사는 것이 안타까워 전화상담을 해온 것이다, 이후 언니가 망설임 끝에 동생의 권유로 사무실로 오게 되었다. 그녀는 천주교 신자에 공기업에 근무하고 있는 재원이었다. 이혼사유는 시부모의 지나친 간섭에 남편의 방관이었다.
사내커플로 짧은 연애 끝에 결혼했다. 남편은 사내에서 부잣집 아들에 외모도 출중한 인기남으로 소문나 있었다. 알고 보니 부모님이 사업으로 부도가 나서 전세방도 겨우 그녀가 보태서 살림을 차린 빚 좋은 개살구였다. 신혼시절부터 시부모님의 간섭이 시작되었고 며느리의 월급봉투까지 관리하려들었다. 불시에 아들 집에 들이닥쳐 냉장고 문을 열고 잔소리를 했다. 며느리는 매일 문안 전화를 해야 했고, 시부모의 비위를 맞추려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대접을 하고 백화점에서 비싼 옷을 사드리곤 했다. 때로는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시부모님의 불평불만을 감당해야 했다. 그녀는 견디다 못해 말대꾸를 했고, 시부모님의 폭력으로 이어졌다. 더욱 속상한 것은 남편의 수수방관이었다. 남편은 부모님 눈치만 보고 오히려 이혼을 요구했다 한다. 남편만이라도 자신을 이해하고 시부모님과의 중재 역할을 했더라면 이혼만은 하지 않을 것이라 했다.
두 사례를 보면서 슬기롭지 못한 남성들의 행동이 참 안타깝다. 부엌에서는 아내 편을 들고 안방에서는 어머니 편을 들어주라는 말이 있다. 아내도 어머니도 둘 다 소중한 존재다.
너무 과하지도 지나치지도 않은 중용의 미덕이 필요하다. 부모 자식 간에도 적당한 거리두기는 필요하다. 가족관계나 친구사이도 마찬가지다. 적당한 거리두기를 했으면 입지 않았을 마음의 상처를 너무 가까이한 탓에 입을 수도 있고 , 반대로 줄 수도 있다. 그렇다고 멀리하고 지내면 소원해지고 또 보고 싶은 것이 가족과 친구 관계이니 적당한 거리두기는 참 묘한 힘이 있다. 그래서 인간을 사람(人)과 사람 사이 (間)로 정의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최적의 거리두기는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세심한 주의와 배려 노력이 필요하다. 너무 가까이 해도 안되고 그렇다고 너무 멀어도 안 되는 거리두기는 말처럼 그렇게 쉽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 관계는 불가근불가원( 不可近 不可遠)이라는 말도 있다. 너무 가까이 해도 안되고 너무 멀리해도 안 되는 적당한 거리가 최적이라는 말이다.
아내와 어머니 사이에 적당한 거리두기를 했더라면, 어머니와 아내도 안 섭섭하고 고부간의 큰 갈등 없이 자연스럽게 해결하였을 것이다. 또한 시부모의 폭력에는 남편인 아들의 슬기로운 역할이 있었더라면 이혼만은 피하지 않았을까? 이 가을에 성혼이 돼 결혼을 알리는 회원들이 많다. 슬기로운 거리두기로 지혜롭고 행복한 결혼생활이 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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