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당의 대통령 후보들께 드리는 의료인의 진언(進言)
각당의 대통령 후보들께 드리는 의료인의 진언(進言)
  • 승인 2021.11.07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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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행복해야 환자가 행복하다
김경호
대구시의사회 부회장
대경영상의학과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대통령을 뽑는 대선이 가까워지면서 각 당의 대통령 후보 캠프에서는 대선공약 발표가 한창이다. 대한민국의 손꼽는 인재들로 구성된 참모진이 훌륭한 공약을 잘 만들어 가겠지만, 미래 의료정책이 올바른 길로 방향을 잡는데 작은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에 의료인의 한 사람으로서 사견을 진언(進言)하고자 한다.

먼저, 가장 기본적이면서 제일 중요한 질문을 한 가지 묻고 싶다. 대통령의 궁극적인 책무는 무엇인가? 여러 가지 상이한 답이 있을 수 있겠으나, 필자는 국체를 보존하고 국민의 행복한 삶을 보장하는 것이 아닐까한다. 이것이 정답중 하나라면,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직결되는 보건의료 정책이 다른 분야에 비해 그 중요성이 가볍다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보건의료분야의 정책은 후순위로 밀린 느낌이 없지 않다. 그렇기에 현장의 전문가 조언을 구하고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는 등의 폭넓은 소통보다, 정권의 입맛에 맞는 계획의 일방통행이 반복되어 왔다. 그러나 구태에서 벗어나 올바른 의료정책을 지향하지 못하면, 메르스, 코로나19 등의 의료재난 사태가 반복되는 격변의 21세기 의료 환경하에서 우리나라는 의료의 격오지로 전락할 우려가 크다. 그렇기에 앞으로 5년간의 국가운영 방향을 정하는 이 시기는, 그간의 오류를 수정하고 올바른 미래 의료정책을 정립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의료는 자유업이다. 그것은 의료가 외부의 규제와 제한에 의해 타율적으로 통제받는 것 보다,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운영하는 편이 사회적으로 효용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특수성을 지닌 전문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의료는 의료보험 도입 이후 자율성을 잃고 정부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관제업이 되었다. 환자의 나이, 질병의 경과, 부상의 정도에 관계없이 심사평가원과 보험공단의 지침에 따라 진료해야 하며, 이를 어기면 진료비를 삭감 및 환수 당하고 심지어 행정처분마저 각오해야 한다. 결과적 통계 의미밖에 없는 수치에 의학적 판단과 진료내용은 부정당하고 과잉진료, 부당진료로 내몰리는 우리의 의료 현실은, '심평의학'이라는 비아냥이 어색하지 않은 참담함 그 자체이다. 이제껏 정부는 세계 최고 수준의 우리나라 의학을 애써 부정하고 하향 평균화를 강요하였다. 국가의 보건의료 정책은 국민의 경제적 부담을 줄여 병·의원 문턱을 낮추는 데만 집중되어 의료의 질은 도외시되고 박리다매식의 진료가 보편화되었다. 그 결과 병·의원 문턱은 많이 낮아졌지만, 값싼 의료만 강조되어 의료의 질 저하 및 각종 의료 왜곡 현상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적은 비용으로 양질의 진료를 전 국민에게 보장한다는 그런 이상적인 의료환경은 세상 어느 나라에서도 불가능한 일이다. 싼 게 비지떡 아니던가! 인류의 소중한 가치인 '민주화'는 골고루 잘 살고 서로의 인격이 존중되는 사회이고 또 반드시 지켜나가야 할 최선의 덕목이다. 그러나 '민주화'는 기회의 평등이지 결과마저 획일적 평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노력한 만큼 대접받고 인정받는 사회, 그것이 보편적 가치의 '민주화'일 것이다. 의과대학, 수련의, 전공의, 석박사 과정을 밤잠 못 자고 쉼 없이 노력한 의사들을 그저 자기 밥그릇이나 챙기는 천민자본주의의 저급한 지식인으로 매도하는 현실은 결코 합리적이지 않으며 또 바람직하지도 않다.

지금 의료계는 큰 위기에 봉착했다. 만성적인 저수가 정책이 국가 의료정책의 기본 노선으로 굳어지어 만성적인 경영난은 개선될 기미가 없고,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환자 감소, 잦은 의료진 격리와 반복되는 병·의원 폐쇄로 결국 휴, 폐업, 도산하는 병·의원을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거기에 의사를 범죄자나 도둑 취급하는 CCTV 법 등 악법이 줄지어 입안되면서 의사의 자존심마저 유린당했다. 의사는 도둑이나 범죄자가 아니다. 그렇기에 CCTV로 감시해야 할 대상이 결코 아니다. CCTV로 감시해야 할 도둑이나 범죄자에게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의탁해야 한다면 그건 너무 큰 비극이 아닐까.

5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다. 그 시간 안에 차기 정부가 해야 할 보건의료분야의 과제는 산처럼 쌓여있다. 1차 의료의 활성화 및 의료전달체계 확립, 국가 성장동력 산업으로서 의료 서비스 분야의 집중 육성, 출산 정책 개선, 의과학 분야 발전을 위한 연구 환경 조성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이나 그보다 더 시급한 것은 차기 정부의 인식 전환이다. 차기 정부 의료정책의 가장 큰 밑그림은 의사가 자신의 직업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킨다는 사명감을 다할 수 있는 의료환경을 만드는 것이 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 의료의 주체이며 전문가인 의사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의견을 경청하여야 한다. 의사들이 더 이상 길거리로 내몰려 투쟁하지 않고, 배운 지식을 양심에 따라 편안한 마음으로 진료할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저수가 정책에서 CCTV 법까지, 꼬일 대로 꼬인 의료환경을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해 차기 정부가 가야 할 길은 멀고 먼 험로이지만, 정부와 의료계가 상호 이해의 폭을 넓히고 소통을 원활히 한다면 그렇게 먼 길은 아닐 것이다.

두서없는 글을 마치면서 각 대통령 후보 캠프에 드리고 싶은 작은 명제가 하나 있다.

'의사가 행복해야 환자가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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