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홍 “작곡가와 교감하며 경연 즐겨…나만의 음악 언어 찾을 것”
박재홍 “작곡가와 교감하며 경연 즐겨…나만의 음악 언어 찾을 것”
  • 황인옥
  • 승인 2021.11.08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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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서 리사이틀 마친 부조니 국제 피아노 콩쿠르 1등
“첫 단추 제대로 채운 콩쿠르 우승
다음 단추 잘 채우도록 노력해야”
독주·실내악·교향곡 등 두루 섭렵
“소나타만 연주하면 연주 힘 잃어
다양하게 들으며 입체적으로 이해
그림·문학서도 예술적 자양분 얻어”
2023년 연주 투어 등 일정 빼곡
“작곡가 섬기며 그들의 뜻 전하고파”
피아니스트-박재홍
피아니스트 박재홍.

피아니스트 박재홍(22)이 제63회 부조니 국제 피아노 콩쿠르(이하 부조니 콩쿠르)에 임하면서 “경연보다 연주 자체를 즐기겠다”고 한 전략은 주효했다. 그는 콩쿠르 경연곡으로 부담이 될 수 있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29번(함머클라비어)’를 솔로 파이널 곡으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으로 진행되는 결선 곡으로 연주해 우승과 함께 5관왕의 쾌거를 올렸다. 두 곡 모두 장대하고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깊은 감정들을 표현하고 있어 베테랑 연주자들에게도 벅찬 곡이다.

공자가 논어에서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를 당하지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당하지 못한다”고 했다. 공자는 즐기는 자야말로 최강자라고 간파했다. 박재홍은 어린시절부터 음악을 즐기는 태도를 견지했다. 어린 그가 즐기는 것의 가치를 익히 알고 그랬다기보다 태생적인 감각에 이끌렸던 결과였을 것이다. 그 연장선에서 부조니 콩쿠르에 임해 우승을 차지하며 콩쿠르 최강자가 됐다. 그가 “음악가가 갖춰야 할 가장 큰 재능 중 하나가 ‘음악을 즐길 줄 아는 태도’”라고 언급했다.

음악을 즐길 줄 아는 그의 태도는 이미 8~9살에 처음 피아노를 시작할 때부터 발현됐다. 피아노에 매료된 것도 해머의 움직이는 신기한 모습과 음을 어떻게 치느냐에 따라 소리가 다르게 들리는 것에 호기심을 느낀 이유가 컸다. 피아노에 입문하고 대곡들을 연주하게 되면서 음악과 본격적으로 사랑에 빠졌고, 어느새 음악을 즐기는 자신을 발견했다. 부조니 콩쿠르도 그런 마음으로 임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들로 경연을 펼치면 몸에 꼭 맞는 옷을 입은 것 같이 콩쿠르를 즐길 수 있을 것 같아 대곡이지만 택했다. 그런 전략이 맞아 떨어졌고, 나는 그날 경연에서 작곡가들과 깊이 교감하며 연주를 즐겼다. 즐겼기 때문에 그동안 연습했던 것을 원 없이 꺼내 보일 수 있었다.”

대구 출신 피아니스트 박재홍이 콩쿠르 우승 이후 국내 첫 무대로 지난 6일 대구콘서트하우스에서 리사이틀을 가졌다. 그는 이날 부조니 콩쿠르의 감동을 그대로 전하기 위해 콩쿠르 경연 프로그램으로 연주를 펼쳤고, 대구 관객들은 환호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대구에서 졸업한 그는 “국내 첫 연주를 대구콘서트하우스에서 시작할 수 있어 기쁘다”는 말로 고향인 대구에서의 펼친 공연 소감을 밝혔다.

국내에서 유독 쇼팽 콩쿠르에 대한 환호가 쏟아지지만 이탈리아 출신 세계적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페루치오 부조니(1866~1924)를 기리는 부조니 콩쿠르도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는 콩쿠르다. 격년제로 개최되며 올해 63회째를 맞는 부조니 콩쿠르는 긴 역사와 더불어 외르크 데무스, 마르타 아르헤리치 등 전설적인 피아니스트들을 배출했다. 한국인 우승자 배출은 이번이 두 번째다.

스타덤에 오른 박재홍에게 이번 콩쿠르 우승의 소감을 묻자 의외로 차분한 반응을 보였다. “이제 첫 단추를 제대로 채운 것에 불과하다”며 “앞으로 계속해서 다음 단추를 잘 채울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겸손해 했다.

그와 부조니 콩쿠르는 합이 잘 맞는 조합이었다. 쇼팽의 음악만으로 경연하는 쇼팽 콩쿠르와 달리 경연 참가자에게 요구하는 레퍼토리의 범위가 넓고 다양한 작곡가들의 연주를 통해 입체적으로 실력을 평가하는 부조니 콩쿠르의 방향성이 박재홍의 음악적 감수성과 일치했다. 그는 피아노 독주는 물론이고 반주와 실내악 그리고 교향곡에 거침없이 도전하며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혀왔다.

“피아니스트라고 피아노 소나타만 연구하면 음악이 풍성할 수 없다. 한 사람의 작곡가가 작곡한 다양한 곡들을 다 들어봐야 그 사람의 메시지를 3차원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건반 앞에 앉으면 “늘 작곡가가 먼저 보였으면 한다”는 박재홍. 그는 작곡가를 존경하며 작곡가의 메시지에 충실한 연주를 선보이고 싶어한다. 그것이 그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연주이며, 그가 연주를 통해 가장 희열을 느끼는 순간도 자신의 연주가 작곡가의 메시지에 가장 근접했을 때다. 그는 이 순간을 무당이 굿판에서 접신하는 상태에 비유했다.

“곡에 깊이 빠져서 작곡가와 피아노와 음악만 남게 되는 순간이 있다. 나란 사람 없어지고 음악만 존재하는 그 순간에 가장 큰 희열을 경험하게 된다. 그것은 ‘영적 프로세스’다.”

좋은 연주를 위한 첫 번째 관문은 철저한 악보 연구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완벽하게 작곡가의 메시지를 발견하기는 어렵다. 박재홍은 예술이라는 거시적인 차원에서 음악을 이해하려 애쓴다. 사상과 감정을 나타내는 것이 예술의 영역이라면 모든 예술은 일맥상통한다고 믿고, 작곡가들이 영향을 받았을 다양한 예술 영역을 탐구하고 즐긴다. 작곡가의 음악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자신 역시 문학적이나 미학적인 소스들을 내면에 갖춰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음악은 물론이고 그림이나 문학도 좋은 예술적 자양분이 될 수 있어서 그런 부분들에 대한 노력은 대단히 필수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2년전 고배를 마시고 재도전한 박재홍은 올해 부조니 콩쿠르에서 1위와 함께 부조니 작품 최고 연주상, 실내악 최고 연주상, 알리체 타르타로티 특별상, 키보드 커리어 개발 특별상 등 4개 부문의 특별상을 받았다. 콩쿠르 자체에서 요구하는 레퍼토리의 범위가 넓어 참가자에게 혹독한 콩쿠르로도 유명한 부조니 콩쿠르에서 박재홍은 한국인으로서는 두 번째 우승자로 이름을 올렸다. 특히 한국예술종합학교 4학년 재학생인 국내파로 거둔 성과여서 더욱 큰 의미로 평가된다.

하지만 그는 “유럽에서 태어나 음악을 공부한 학생들도 사사받고 싶어하는 세계적인 스승인 김대진 교수님으로부터 사사했기 때문에 국내파라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했다. 피아니스트이자 한예종 총장인 김 교수는 그동안 김선욱, 손열음, 이진상 등 뛰어난 피아니스트들을 가르쳤다.

박재홍이 “해외 콩쿠르에 가면 ‘김대진 교수의 가르치는 스타일은 어떠냐?’고 물어보는 해외 참가자들이 있을 만큼 나는 국내에 있으면서도 세계적인 스승으로부터 사사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처음으로 김 교수님께 효자 노릇을 한 것 같아 이번 우승이 더 값지다”며 환하게 웃었다.

박재홍은 일찍부터 두각을 드러냈다. 2014년 금호영재콘서트에서 데뷔해 여러 콩쿠르에서 입상했다. 2014년 에틀링겐 영아티스트 국제 피아노 콩쿠르 4위, 2015년 클리블랜드 영아티스트 국제 피아노 콩쿠르 1위, 2016년 지나 바카우어 영아티스트 국제 피아노 콩쿠르 1위, 2017년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국제 피아노 콩쿠르 결선 진출 등이다.

부조니 콩쿠르 우승과 함께 그는 스타덤에 올랐다. 이미 내년 연주 일정이 빼곡하게 채워졌다. 2023년에는 부조니 콩쿠르가 특전으로 제공하는 연주회도 소화하게 된다. 하이든 오케스트라와 2023년 연주 투어, 실내악 특별상 부상으로 2023년 2월 슈만 콰르텟과의 연주 투어가 예정되어 있다.

부조니 콩쿠르 우승으로 좋은 무대에서 연주할 기회도 얻었고, 내년 한예종 졸업 후 유학도 염두에 두고 있지만 지금부터의 과제는 자신만의 음악적 언어를 찾는 데 있다. 그는 좀 더 스스로를 돌아보며 자신의 목소리에 집중할 계획이다. “명료하게 언제나 낮은 자세로 작곡가들을 섬기면서 그분들의 대단한 뜻을 전하는 연주자가 되고 싶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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