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룩한 사타구니, 그냥 두지 마세요
불룩한 사타구니, 그냥 두지 마세요
  • 승인 2021.11.14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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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둥 마크원외과의원 원장 대한탈장학회 개원의 위원장
얼마 전 비뇨기과에서 서혜부탈장(=사타구니 탈장)으로 진단 후에 외과에서 수술을 받으시라는 권유를 받고 45세 남자 환자 한 분이 필자를 찾아왔다. 흔한 성인탈장 환자로 생각하고 상담을 시작하였는데, 아뿔싸!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사타구니가 불룩해지는 종물 증상이 있었다고 한다.

‘탈장’은 ‘장이 탈출하는’, 즉 배 안의 장기가 배 안을 벗어나는 모든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평생 유병률이 25%에 이르는 비교적 흔한 질환이다. 우리 몸의 복벽은 피부, 피하지방, 근육, 그리고 복막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가장 단단한 구조물은 근육이다. 그런데 특정 부위의 근육 섬유가 끊어지면서 틈새가 벌어지게 되면 그 사이로 배안에 있어야 할 장기들이 복막과 함께 밀고 나오는 것이다. 성인이 되어 발병하는 후천성 탈장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져 있고 유병률이 가장 높은 것은 사타구니 탈장이다. 복벽 중에서 양쪽 사타구니 부위의 근육층이 가장 얇고 인간의 직립보행으로 인해 이 부위에 많은 복압이 누적되면서 상대적으로 탈장 현상이 발생하기 쉬운 것이다. 지속적인 기침을 동반하는 폐질환, 복압을 높이는 직업이나 스포츠 활동, 만성 변비, 심한 복부비만 등 복압을 높이는 여러 가지 원인들로 인해 대부분 40대 이후가 되어서야 발생한다.

그에 반해 선천성 사타구니탈장은 태아기 때에 고환이나 난소가 제 위치를 잡기 위해 이동하는 초상돌기(남아)나 누크관(여아)이 완전히 닫히지 않고 열린 채로 태어나면서 생긴 구멍으로 뱃속 장기가 들락거리는 상태이다. 소아탈장은 장기가 탈장구멍에 끼여서 발생하는 감돈과 장괴사를 예방하기 위해 진단 후 가능하면 빨리 수술 받아야 한다. 이 환자분은 어린 시절부터 증상이 있었다고 하니, 선천성 탈장임에도 불구하고 운이 좋게도(?) 심각한 응급상황을 겪지 않으면서 45년을 버텨온 것으로 보였다.

이렇게 수십 년간 탈장을 방치하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 물리적으로 당연한 얘기지만 일단 탈장 구멍이 매우 커진다. 또한 엄청나게 커진 탈장구멍과 함께 그 구멍을 통해 탈출과 복귀를 수십 년간 반복해온 복강내 장기(대장, 소장, 대망, 방광 등)의 만성적인 허혈손상과 탈장주머니와의 만성 유착, 그리고 고환 주변부에 음낭수종까지 동반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당연히 수술을 포함한 전체 치료과정이 복잡해지고 수술을 시행할 때 고려해야할 변수가 많아진다. 오랜 세월동안 형성된 유착부위를 탈장구멍 주변부의 정관, 혈관들이 손상되지 않도록 안전하게 박리해야만 하고, 만성염증 변화가 동반된 복강 내 장기를 수술 직후 합병증과 만성적인 후유증 발생가능성을 낮추기 위해서 어떻게 처리해야만 할지, 객관적인 학술적 근거와 집도의사의 경험을 토대로 수술 도중에 판단해야만 한다. 또한 이렇게 수술의 범위가 확장되면서 복강경수술이라면 사타구니에 추가 절개를, 절개수술이라면 복부에 추가 절개가 필요할 수 있다. 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쳐 수술이 잘 마무리 되더라도 합병증이나 후유증 발생가능성이 높아진다. 의학은 통계의 과학이다. 매우 드물고 특수한 상태에서 수술 받아야 한다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수술 받았다던데?’, ‘수술 시간도 짧았다고 하던데?’ , ‘수술 후에 회복과정도 별로 힘들지 않았다던데?’ 와 같은 평균적인 사례에 자신은 포함되지 않을 수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평균보다 많이 길어지는 수술시간, 집도의의 경험과 판단을 필요로 하는 돌발 변수의 증가, 치료관련 변수가 많아지면서 덩달아 증가하는 합병증 발생률을 감수해야만 한다. 구체적으로는 장기 절제를 시행하면 복강내출혈, 장문합부 유출 등 관련한 합병증 발생 가능성을 수반하며, 절제부위의 상처와 기능이 회복하는데 필요한 회복기간이 추가된다. 고생 끝에 수술 후 회복이 잘 되었다 하더라도 일반적인 경우와 비교해서 몇 배에 달하는 직경의 탈장 구멍은 상대적으로 높은 재발 가능성을 수반한다. 따라서 재발을 억제하기 위한 수술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창호지의 작은 구멍과 큰구멍을 막기 위해 똑같은 면적의 테이프를 사용한다면, 당연히 큰 구멍을 막은 경우가 외부 압력에 취약할 수 밖에 없다. 수술 후 일상생활 도중에도 상대적으로 더 오랜 기간 동안 세심한 주의와 관리가 필요하게 된다.

결론은, 역시 질병은 신속한 진단과 신속한 치료가 가장 중요하다는 점이다. 45세의 환자분은 결국 수술 잘 받고 잘 퇴원해서 원활하게 회복 중이지만, 알고도 방치한 스스로를 원망하느라 더 힘들었을 것이다. 독자 여러분들도 오늘 샤워 후에 꼭 한번 사타구니를 유심히 관찰해보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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