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미술관, 제21회 이인성 미술상 수상작가 강요배展
대구미술관, 제21회 이인성 미술상 수상작가 강요배展
  • 황인옥
  • 승인 2021.11.14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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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 땐 격정적인 파도를, 안정될 땐 고요한 숲을 그렸다”
“자연풍경이 바로 내 마음지도
비틀대거나 정지된 존재 사이
흔들리는 균형 찾는 게 목적”
풍경회화·영상·설치 40여점
16m 대작·소리 결합 작품 눈길
10월 항쟁·4.3사건 모티브 작업
역사적 사건에 관심 가지기도
제21회 이인성미술상 수상자전인 가 대구미술관에서 내년 1월9
제21회 이인성미술상 수상자전인 ‘강요배:카네이션-마음이 몸이 될 때’전이 대구미술관에서 내년 1월9일까지 열린다.

세상을 집어삼킬 듯한 기세로 몰아치는 제주의 거센 바람 앞에 고요했던 파도가 산발하고 공중으로 튀어 오른다. 그러자 검푸른 화면에서 거친 포말이 ‘철썩’ 일렁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언제 그랬냐는 듯 그윽한 그믐달이 숲속 바람의 지세를 순식간에 잠재우고 사위(四圍)를 고요로 이끈다. 화가 강요배가 제주의 변화무쌍한 자연 풍경을 담은 파노라마 작품 ‘수풍교향(水風交響)’인데, 대구미술관 3전시실 벽면에 걸렸다.

‘수풍교향’은 지난 1년간 대구미술관 전시를 준비하면서 제주 바다와 제주 숲의 풍경을 화폭에 가득하게 채운 가로 16m의 대작이다. 지난 13일 개막한 이인성미술상 수상자전에 출품된 19점의 신작 중 하나다. 그는 지난해 제21회 이인성미술상 수상자로 선정되어 이번에 수상자전을 꾸리게 됐다. 전시에는 자연의 풍경을 담은 대형회화, 자연과 사운드에 집중해 작가가 직접 촬영한 영상작업, 대구와 경산의 역사적 사건을 모티브로 한 상주비단 설치작업, 고(故) 이인성 화백의 대표작을 모티브로 한 회화작업 등 40여 점을 소개하고 있다.

◇ ‘마음’의 흐름이 회화적인 흔적으로 드러난 풍경

서울대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한 강요배는 1989년 고향인 제주도에 정착해 제주 4·3사건과 금강산과 평양 지역 문화유적 등을 그렸다. 2000년대 이후 바다와 하늘, 돌, 나무, 별 등 제주를 둘러싼 풍광을 부드러운 색감과 서정으로 표현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대구미술관 벽면에 걸린 격정과 고요가 공존하는 제주 풍경 작품 앞에서 작가가 “마음의 흔적”이라고 설명했다. 한바탕 태풍이 마음을 휘몰고 간 날은 격정의 파도로 표현되고, 부드러운 그믐달의 고요한 기운이 가슴을 어루만진 날은 고요의 숲으로 드러났다는 것. 이는 그의 풍경이 ‘자연풍경’인 동시에 마음의 흐름을 기록한 ‘마음지도’인 이유다. “마음을 볼 수 있는 방법은 그림 밖에 없다.”

그가 평생을 바쳐 탐구한 주제는 ‘마음’이다. 그에게 그림은 마음의 시각화다. “인간은 그림을 그리는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그의 작가론이고 보면, 그에게 그림은 “마음을 반사하는 거울”이자 ‘그림’이 곧 ‘자기고백’인 것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 중에서 마음에 관심을 기울이는 존재는 인간이 유일하며, 그는 그림을 통해 바로 그 비가시적인 인간의 마음을 가시화 하고 있다.

내면을 투영하는 예술 장르는 문학, 음악, 춤 등 다양하다. 그런데 그가 유독 그림을 가장 적합한 매체로 꼽는 데는 그림이 가진 ‘정직성’ 때문이다. 그는 그림이 그 어떤 예술 장르보다 정직한 매체임을 믿고 있다. “언어나 음악은 화려한 기교로 자신을 속일 수 있지만 그림은 내면을 직접적으로 투영하는 속성을 가진다”는 것이 근거다.

그런 이유로 그에게 그림은 ‘마음 근육을 단련’하는 가장 좋은 매체로 인식된다. 그는 그림을 마음의 거울로 삼아 ‘마음을 단련’한다. “마음의 근육을 단단하게 하기 위해 우리는 지금 당장 그림 그리기를 시작해야 한다.”

인간이니까 흔들리고, 인간이니까 오만가지 생각에 휩싸인다. 작가는 변화무쌍하게 흘러가는 자신의 마음을 틀에 가두려 하지 않는다. 격정적일 때는 격정인 채로, 고요일 때는 고요인 채로 마주한다. 애써 잠재우려 하기보다 흘러가는 마음의 잔상들을 담담하게 대면한다. 그리고는 그림을 통해 흔적으로 남긴다.

대개 구도적 기질이 강하면 깨달음에 대한 열망도 강하다. 하지만 작가는 완전한 깨달음의 경지를 갈구하지 않는다. 마음의 동요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 고요한 경지는 그가 추구하는 상태가 아니다. 그런 경지에서 그 어떤 재미도 느끼지 못한다. 그는 “수없이 흔들리며 살아 꿈틀대야 계속해서 성장한다”고 믿으며 자신만의 경지를 추구한다.

그가 추구하는 마음상태는 격정과 고요 사이의 균형점에 위치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상태마저 고정되는 것을 경계한다. 그저 변화무쌍하게 흘러가도록 놓아둔다. 그가 추구하는 경지가 ‘흔들리는 균형’이기 때문이다. “흔들리는 균형이어야만 계속해서 진화할 수 있다.”

흘러가는 수많은 생각들의 서사를 그대로 옮겨 놓으면 장편소설이 되지만 그의 풍경은 ‘시(詩)’다. 수많은 생각들 중에서 요체가 되는 핵심만 포착했기 때문이다. 그 핵심은 근원이나 본질과도 맞닿아 있다. 개별적인 작가의 마음을 보편의 마음으로 축출하는 것이다. “적어도 화가라면 수많은 생각들 속에서 요체를 포착할 수 있어야 한다. 요체여야만 보편성을 확보할 수 있고, 어린아이까지도 소통할 수 있게 된다.”

그가 심혈을 기울이는 지점은 또 있다. 오감이 살아있는 화면을 구성하는 것이다. 그는 제주풍경에 제주의 냄새와 바람과 소리까지 담아내려 한다. 그런 그의 의지가 단적으로 표현된 작품이 회화작품 ‘수풍교향’과 영상작품 ‘소리풍경’이다. 이 두 작품을 마주보게 전시해 화면 속 풍경에 실재 제주의 풍경과 소리를 영상으로 함께 감상할 수 있게 했다.

풍경이 살아 움직인다는 것은 시간성을 내재하고 있다는 의미와 같다. 그는 자연 풍경이든, 역사적 사건이든 그 속에 파노라마같은 ‘시간성’을 전제로 하기를 희망한다. 그가 “풍경 속의 소리와 공기와 바람은 시간과 공간의 축이 결합된 상태”라고 언급했다.

“접혀져 있는 중첩된 시간을 한 방에 보는 것이 공간이지만 사실은 그 둘이 결합되어 있다. 할머니의 손등이나 나무껍질이라든가 그런 것에 시간이 접혀져있다. 작가라면 그 접힌 부분의 결을 보고 펼쳐낼 수 있어야 한다.”

붓은 사용하지 않는다. 신문지나 천을 둘둘 말아서 그리면 그만이다. 캔버스를 거울 삼아 마음을 비춰보는 시간은 길지만 막상 작업을 시작하면 순식간에 그린다. 응축된 에너지를 몸의 행위를 통해 즉발적으로 화면에 싣는다. 그가 “새로운 것을 하기 위해 붓을 버렸다”고 했다. 그래야 매끄럽지 않은 약간은 허스키한 느낌이 나온다는 것. 그가 추구하는 그림은 날것 그래로의 야생이다. 그것은 곧 그가 말하는 마음의 핵심, 즉 본질이다. 

◇ 걸림없는 자유로운 작품세계 대구미술관에 집대성

지금까지 제주 4.3사건 등의 역사적인 사건을 다뤄왔고, 이번 전시에도 이인성이 생존했던 일제강점기 말과 광복 직후 대구경북에서 일어났던 10월 항쟁이나 경산 코발트 광산 학살사건 등의 역사적 사건을 모티브로 한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역사화나 민중화로 고착화하는 것을 불편해 했다. 시대적인 사건들에 관심을 표하는 것은 역사의식의 일환이지만 그것은 그의 의식이 향하는 다양한 사건들 중의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한 발짝 떨어져 관조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는 자신의 작업을 동양화나 서양화, 추상이나 구상 등으로 구분 짓는 것 또한 경계했다. 그가 강한 어조로 “재현(representation), 표현(expression), 추상(abstraction), 행동(action) 이것이 각자 다른가? 하나인가?”라고 반문하고, “그 모든 것의 협공으로 그림이 구성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막걸리 잔 속에는 깊은 곳과 중간 그리고 미세하게 흔들리는 표면이 존재한다. 나는 저 깊은 뿌리 쪽에 발을 딛고 있기 때문에 입체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지 어느 한 지점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그런 그가 지난해 이인성 미술상 수상작가로 선정되고 최근에 대구미술관에서 대규모 전시를 갖게 되자 “원 없이 펼쳐냈다” 만족감을 표했다. 화업 60년 동안 2천여점의 작품을 그렸지만 이번 전시처럼 큰 공간에서 전시하는 것이 처음이어서 부담감도 컸지만 지난 1년간의 준비 끝에 전시를 개막하고 “이번 전시를 통해 흐릿하지만 내 작업의 거친 윤곽선 정도는 찾았다”며 격한 감정을 드러냈다. “지금까지는 작업이 어디까지 튈지 모르는 미지의 세계를 오고갔지만 이제는 윤곽선 정도는 알아냈다”는 것.

그러면서 “더 못 나가는 이것이 나인 것도 깨달았다. 무한확장적인 존재가 아님에 대한 깨달음”이라며 “지금껏 많은 공간과 시간을 지나왔고, 꿈도 충분히 꾸었다. 이제는 그만 몰아붙이고 천천히 내려와도 되겠다 싶은 생각을 했다”며 대구미술관 전시에 대산 소감을 전했다. ‘강요배:카네이션-마음이 몸이 될 때’전은 2, 3전시실과 선큰가든에서 내년 1월 9일까지. 053-803-7872.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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