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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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11.16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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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청 부국장
삼겹살 굽는 냄새가 난다고 아래층 주민들에게 삼겹살을 구워먹지 말아달라는 방송을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와 윗층 입주민에 대한 최근 뉴스를 생각하면 실소를 금할 수 없다. 거주 공간인 아파트에서 음식을 해먹지 말라고 하면 ‘굶어야 하나’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좀 더 얼마 전에는 샤워하는 소리가 시끄러우니 밤 10시 이후에는 아파트 안에서 샤워를 삼가 달라는 방송을 보낸 아파트도 있다는 뉴스를 보기도 했다.

씁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늦어서야 귀가하는 근로자들은 씻지도 못하고 잠을 자야 한단 말인가. 내가 편안히 쉬고 먹으며 살아가려 입주한 내 아파트에서 먹고 씻는 행위조차 내 맘대로 할 수 없게 한다면 이게 상식 안에 있는 일일까.

아파트 1층 정원이나 창문을 활짝 열어놓은 베란다에 석쇠와 숯불을 펼쳐 놓고 온 아파트 단지에 진동하는 냄새를 하루 종일 피워대며 구이 파티를 하는 경우라면 이웃을 배려하지 않는 행위가 문제가 될 수도 있겠지만, 내 집에서 내가 냄새 때문에 된장이나 청국장을 끓여먹기도, 고등어도 구워먹기도 힘이 들 정도라면 그게 상식 안에 있는 일일까. 만약 그걸 막자고 ‘법안 만들기 만능 시대’ 트렌드에 맞춰 ‘아파트 내 냄새 나는 음식 조리 금지’ 법안이라도 발의될까 겁이 난다.

‘내가 견디기 힘들다’는 이유로 남이 끼치는 크고 작은 불편들을 무조건 문제 삼기 시작하면 남들 역시 ‘내가 그냥 싫다, 힘들다’는 이유로 내 행동을 제약할 수 있는 근거가 될텐데, 과연 이게 상식적일까. 상식적이고 행복한 사회는 아무도 남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는 사회일까. 그건 불가능하다. 또 얼마 전에는 아파트 입주민의 가족이 아닌 아이들이 아파트 안 어린이놀이터에서 놀았다고 이 아파트 입주자대표 회장이 5명의 아이들을 기물 파손으로 경찰에 신고한 일이 화제가 됐다. 그는 “다른 데 사는 너희들이 이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면 도둑이 되는 거 몰라?”라고 아이들에게 으름장을 놨다. 이후 열린 이 아파트 입주자대표 회의 임시회의에서 ‘단지 내 놀이터를 외부 어린이가 이용할 경우 경찰에 신고한다’는 내용의 ‘어린이 놀이시설 외부인 통제’ 건이 의결됐다가 입주민들의 반대로 삭제됐다고 하니, 상식과 몰상식의 사이에서 잠시 정신이 멍해지면서 혼돈이 올 지경이다.

어쩌다 이런 뉴스를 자꾸만 보게 되는가. 상식이 우선하는 사회여야 정상적인 사회가 아닌가. 내 집에서 맛있는 삼겹살을 먹으려다 봉변을 당한 사람이며, 늦은 근무로 고단한 몸을 씻던 어떤 입주민, 그리고 친구가 노는 놀이터에서 함께 놀던 아이들이 지은 죄명이 무엇인가. 그 역시 같은 상황에서는 마찬가지일 몇몇 민감한 상대편 사람들이 오히려 상식을 벗어난 것은 아닌가.

그러면 상식이란 무엇인가. 일반인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그저 흔해 빠진 생각 같은 게 아닌가. 신발은 발에 신는 게 상식이고 모자는 머리에 쓰는 게 상식 아닌가. 학생이 선생님에게 가급적 먼저 인사하고, 주차선 안에 바르게 주차하고, 내 새끼든 남의 새끼든 어린이들은 아직 미숙하니 잘 돌봐주고, 때가 되면 내 집에서 음식을 먹고, 자기 전 가급적이면 깨끗이 씻고… 뭐 이런게 상식 아닌가.

집 한 채 가진 이가 내 집을 담보로 잡히고 돈을 빌리려 해도 돈을 빌려주지 못하게 틀어막는 게 상식인가 아닌가. 내일 모레면 요소수를 구하지 못해 차를 운행할 수 없다는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미리 대책을 서두르지 않은 게 상식적인가 비상식적인가. ‘성역 없는 수사’를 해야 하는 검찰이 성역을 향해 알아서 수사를 하지 않거나 비트적거리며 뭉개는 게 상식인가, 성역이라도 수사를 하는 게 상식인가. 월성원전 1호기 경제적 평가 조작의혹 사건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이가 청와대 경제수석 비서관으로 임명되는 게 상식적인가, 비상식인가. 윤석열을 만난 진인(塵人) 조은산이 넌지시 물었다. ‘조국 수사’ 왜 했냐고, 당신의 정의냐고. 윤석열이 대답했다. “조국 수사는 정의도 아니었고 정치도 아니었다. 그건 상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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