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닮은 사람
자연을 닮은 사람
  • 승인 2021.11.17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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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BDC심리연구소장
자연을 닮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꾸밈없고, 솔직하며 편안한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동시에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자연을 닮은 사람이 자연을 닮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그 만남은 마치 숲 속에 들어온 듯 편안할 것 같다는 상상에 빠져 본다.

자연이란 말은 스스로 자(自)에 그러할 연(然)이라는 한자의 조합이다. 참 좋은 말이다. ‘스스로 그러하다’라는 말. 억지로 누가 시켜서 그러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러한 것에는 진실함이 있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서도 아니고, 맞지 않는데 일부러 맞추기 위해서가 아닌, 좋으니 좋은 표정이 지어지고, 불편하니 불편한 표정이 지어지는 그런 자연스러움이 참 좋다.

나는 자연이 참 좋다. 살다가 힘든 순간이 닥칠 때, 혹은 해결하지 못하는 복잡한 상황에 놓여 머리가 아플 때, 나는 자연 속으로 들어간다. 그 속에서 쉼을 얻고, 위안을 얻는다. 그러다 보면 꼬여 있던 실타래가 저절로 풀리는 경험을 하곤 한다. 자연은 나에게 둘도 없는 친구이고, 스승이다. 내가 자연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 자연은 나를 판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를 비판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주기 때문이다. 그 속에 들어가면 나는 내가 될 수 있다. 있는 그대로 내가 된다. 좀 더 나에게 가까워질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자연을 찾는다. 그 속에서 안식을 얻는다.

사람들 속에서 우리는 수많은 판단과 평가를 받으며 살아간다. 내가 입은 옷과 내가 들고 다니는 부속품도 평가를 받곤 한다. 왜 그런 옷을 입었느냐, 어울린다. 어울리지 않는다. 역할에 걸맞지 않다. 등등 사람들은 나를 그들의 잣대로 평가 내린다. 차가 좋다. 별로다. 시계가 좋다. 신발 좀 닦아라 등등. 나는 그런 판단과 평가에 지칠 대로 지쳐있다. 그런데 자연은 내가 이 옷을 입든, 저 옷을 입든, 어떤 것을 몸에 지니든 아무 말이 없다. 내가 어떤 모습으로 찾아가도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준다. 얼굴이 피곤에 찌든 날도 있을 것이고, 우울한 날도 있을 것이다. 컨디션이 안 좋아 얼굴이 퉁퉁 부은 날도 있기 마련이다. 그런 날에도 자연은 내게 아무 말이 없다. 그냥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준다. 하지만 사람들은 나를 판단한다. 그것을 걱정하는 마음이고 관심이라 말할지 모르나 나는 그것이 영 불편하다. 피곤해 보인다. 살이 빠졌다. 주름이 많이 늘었다. 머리숱이 많이 줄었다. 등등 나는 그런 말에 지친다. 우리는 서로를 평가하고 판단한다. 나 역시 누군가를 그렇게 평가 내리고 판단한 날이 많았을 것이라 반성해본다. 이 자리를 빌어서 그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나의 행동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

나는 여러 모임에 속해있다. 그중 한동안 열심히 다녔던 모임 하나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발길이 그곳으로 향하질 않았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생각 끝에 알게 되었다. 그것은 그곳에서 서로를 향한 판단과 평가 때문이었다. “누가 누가 어떻다더라.” “그 애 이혼했다더라” “누가 돈 많이 번다더라.” “폭삭 늙어 버렸네.” “누구는 돈 잘 벌고, 누구는 백수라더라”등 난무하는 판단과 평가들이 나는 많이 불편했다. 그렇게 평가와 많은 판단들에 점점 지쳐 갔고 자연스럽게 발길이 향하지 않게 되었다.

우리 집 마당에는 동물이 참 많다. 듬직한 개 한 마리, 병아리 때부터 키운 청계 여덟 마리, 고양이 열 마리. 모두 마당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마당의 동물 친구들과 놀 때가 내겐 힐링의 순간이다. 그 동물 친구들이 말을 하지 못해서 그런 것일 수 있겠지만 동물들은 나를 판단하거나 평가 내리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나를 반겨준다. 차를 세우고 집으로 들어가면 대문을 지키는 우리집 개가 먼저 일어나 귀를 뒤로 젖히고 혀를 내밀고 좋다고 반겨준다. 마당을 지나 현관 앞으로 가면 시장 가셨던 엄마를 기다리던 아이들처럼 고양이들이 ‘우루루루’ 내게 달려 나온다. 그 순간이 하루의 피곤함을 날려준다.

자연은 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준다. 피곤에 지친 날에 찾아가도 “피곤해 보인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냥 있는 그대로 나를 봐준다. 허름한 옷을 입었다고 나를 창피해하지도 않는다. 어떤 옷을 입던 어떤 표정으로 있던, 자연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준다. 그래서 자연이 참 좋다.

자연을 닮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그리고 자연 속에서 쉬고 싶고, 자연 속에서 맘껏 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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