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김연수의 말과 글
[문화칼럼] 김연수의 말과 글
  • 승인 2021.11.24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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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대구문화예술회관장
고요하지만 흔들리지 않는 사람, 소설가 김연수는 이런 이미지에 딱 들어맞는 사람이었다. 최근 행사관계로 만난 그와 저녁을 함께하며 짧은 대화를 가졌다. 선한 웃음을 가진 그는 조용하지만 자기 생각을 설득력 있게 조곤조곤 풀어내는 스타일이었다. 그의 작품 중 다 읽은 책에다 사인을 부탁했다. 아주 천천히, 공들여 한 글자 한 글자씩 써내려가는 모습이 인상적 이었다. 그의 글씨는 아름답다고 표현해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소설가 김연수는 정말 고르고 고른 단어들을, 다듬고 다듬어 글을 써 내려간다는 느낌이다. “애기똥풀 꽃대처럼 여윈 ‘예정’의 그림자가 섬돌의 윤곽을 따라 비뚜름하게 명부전 맞배지붕 날카로운 그림자 사이로 섞여들고 있었다.” 오후 햇살에 비친 그림자가 눈앞에 선명히 그려지지 않는가! “밤의 산길에서 바라볼 때, 이 세계는 바라보는 사람만 뚝 떼어놓고 저희들끼리만 서로 경계 없이 녹아든다.” 불빛도 없는 산길을 홀로 걸어본 사람은 이 말을 바로 실감하리라 생각한다. 그는 우리를 둘러싼 언어의 체계가 여러 겹으로 이루어져있다. 따라서 쓸 만한 단어들이 있는 안쪽으로 가기위해서는 생각의 힘, 즉 염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의 글에는 ‘빛’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그늘은 빛이 있어 그늘이었다.” “어둡고 습하고 음침한 곳으로 기어들어간 건 거기야말로 내가 찾는 인생의 빛이 가장 잘 보이기 때문이다. 소설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빛을 향한 평생에 걸친 이야기’라고 말하겠다.” “어둠속에 머물다가 단 한 번뿐이었다고 하더라도 빛에 노출되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평생 그 빛을 잊지 못하리라.” 이 빛은 예술, 바로 그것이라고 부를 수도 있으며, 사람이 추구하는 절대 가치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연수는 좋은 예술은 빛을 향해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의 작품에는 ‘빛과 어둠’처럼 대비를 통하여 하고자 하는 말에 악센트를 주고 있음을 자주 볼 수 있다. “성공을 논하려면 줄기차게 실패에 대해서 떠들어야만 한다. 마찬가지로 글을 잘 쓰고 싶다면, 못 쓰고 못 쓰고 또 못쓰기를 간절하게 원해야만 할 것이다.” 음악에서 포르테(큰소리?)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피아노(작은 소리?)를 낼 줄 알아야 한다는 것과 같다. 또한 “좌절과 절망은 사람을 어떤 행동으로 이끌어 낸다.” 그러면서 모든 위대한 예술은 거기 한 때 큰 좌절과 절망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한다. “사실 악은 선의 결여일 뿐이다. 선을 행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행위가 바로 악행”이라고 한다. 대단히 종교적인 말이다.

김연수의 글을 읽다보면 밑줄 치고 싶은 대목이 참 많다. “날마다 죽음을 생각해야 해요. 아침저녁으로 죽음을 생각해야만 해요. 그러지 않으면 제대로 사는 게 아니에요.” 철학자 최진석이 매일 아침 “나는 죽는다. 나는 곧 죽는다.”를 외치곤 하루를 시작하는 것과 같은 이야기다. 이럴 때 후회 없는 인생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삶에서 시간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그저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고 믿었던 것들이 실은 내 안에 고스란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나는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 우리 곁을 떠나간 사람, 살아온 흔적들이 얼마나 삶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하는지 모른다. 때로는 잊은 듯, 외면하며 살지만 그것은 결코 사라진 것이 아니다.

가장 느리게 쓸 때, 가장 많은 글을, 그것도 가장 문학적으로 쓸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그에게 질문을 했다. 대단히 역설적이기도 한 이 말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속도를 의미 하는가? 라는 우문을 던졌다. 그의 답은 그게 아니었다. 초고에 대하여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것을 의미 했다. 나는 느리다는 의미를 생각의 깊이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시인 백석을 주인공으로 그린 소설 ‘일곱 해의 마지막’을 통하여, 백석이 함경도 골짜기 삼수에서 인생의 마지막을 보냈으며, 자신의 성공을 알지 못한 채 죽었지만 바로 그러했기 때문에 오늘 날 백석이 있다고 했다. 살아서 현실과 타협했다면 오늘의 그는 없을 거라는 얘기였다. 스스로 택한 것과 진배없는 유배지 행, 꿈과 희망 없이도 사는 법을 터득했기에 백석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누구나 과연 그러할 수 있을까? 어려운 이야기다.

작가는 모 레지던스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요즘 제주 ‘가파도’에서 지낸단다. 그곳이 너무 아름다워, 구경하느라 작업의 속도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도 분명 지금보다 더 훌륭한 작품이 그곳에서 잉태되고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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