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을 지나면서 ‘답게 산다’는 것의 무력감이 밀려와 조금 슬프다. 자유롭게 성장하지 못하고 잘려져 단정해지는 이파리들이 소리를 낼 수 있다면 어떨까? 그들의 소란스러운 하소연에 공감하며 슬쩍 그들 옆에 서 본다. 나무가 된 내 모습이 그리 이질적이지 않다. 계획에 따른 통제, 규제가 만든 정원의 모습은, 여러 역할로 규정 지어진 자신으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네 삶의 온도가 만드는 풍경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조경된 정원의 자연물과 크고 작은 잎의 덩어리들은 ‘숨 쉬는 모든 존재의 가치로움’에 대한 이야기로 내 작업의 주제이다.
두껍고 질긴 한지인 장지에 60% 정도 습기가 제거된 초묵을 다소 뻣뻣한 붓을 사용하여 드로잉 하듯 덩어리로 정원수를 표현하는데, 붓에 먹이 거의 완전 소진될 때까지 붓질을 하면 미세한 여운의 작은 먹점이 안개처럼 나타난다. 오랜 역사를 지닌 지필묵으로 작업을 하면서 농묵과 담묵, 먹의 현대적 쓰임에 대해 고민을 해왔고, 담묵이 쌓여 만드는 적묵의 무게감에 매료 되었었다. 담묵이 쌓여 농묵이 되듯 나의 삶을 이루는 매순간이 올바른 명쾌함으로 쌓여 미덥고, 동시대의 모든 존재들이 행복하면 좋겠다.
※ 최정숙은 영남대 조형대학 동양화과와 동대학원 한국회화를 졸업했다. 대구 차우림갤러리, 구미 안다미로 귀때 박물관 등에서 5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대구 수성아트피아 ‘회화 소리를 입다’전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