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고 진한 더치커피의 맛이다
갈증 난 목구멍을 타고 흘러내리는
폭풍 제3악장은
안간힘 쓰지 않는 목소리는 중저음
설핏 주름진 그의 옆모습까지 나붓나붓 재생된다
가늠할 수 없는 선율들
일제히 잔속으로 파고들어
순간과 순간은 열정의 불꽃이다
그가 건네는 이야기들은
깊고도 느리게 쏟아지는 빗줄기
소절 소절은 폭풍 만난 나무 같다
덮쳐오는 절망의 반대쪽으로 몰려가는
산발한 두려움들
베토벤 제3악장이 휘저은 커피는
번식 본능 잃어버린 길고양이처럼
그늘진 담벼락 모서리에서
꼬리를 내린다
◇김정아 = 경북 상주 출생. 형상시학회, 대구시인협회, 문장작가회 회원, 시집 : 『채널의 입술』
<해설> 한이 많아 애절한 서편제의 대목을 들어도 이런 느낌이 날 듯도 하지만, 동서양의 정서가 확연하니 실험을 해 볼만 할 것이다. 시인은 지금 오래된 음악과 만남을 커피향 진한 어느 카페에서, 빗줄기 속에서 만나고, 결국은 담벼락 모서리에서 간곡한 이별을 한다.
향이든 음악이든, 어떤 장소든 사람이든 분위기에 따라서는 많은 감정이 실려 있는 경우가 많다. 저마다 부여하고 비중을 두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떤 상황 속으로 빠지기에는 음악이 큰 몫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지금 들은 베토벤의 선율처럼 시인의 블랙홀은 베토벤3악장인 것이다. -정소란(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