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이 모여들고, 기쁨이 손짓한다(欣奏歡招)
즐거움이 모여들고, 기쁨이 손짓한다(欣奏歡招)
  • 승인 2021.12.02 21:3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동규
대구예임회 회장
전 중리초교 교장


지난 주말 50년 전 제자들이 동창모임을 하였다. 필자에게 초대의 전화를 하고 문자를 보내왔다. 1972년 영덕 인량초등학교에 처음 교사로 부임하면서 만난 제자들이다. 벌써 반세기가 지나갔다.

34명을 5~6학년 맡아서 가르치다가 졸업을 시켰다. 정이 흠뻑 들었던 제자들이어서 몇 차례 모임에도 참석했었다. 올해는 특별히 환갑을 맞는 나이들이 많아서 선생님을 초대한다고 했다.

“선생님 초등학교 때는 왜 그리 많이 혼냈어요?”하고 말문을 꺼냈다. 만날 때마다 단골 메뉴로 나오는 이야기들이다. 또 얼굴이 화끈거렸다.

‘제가 맡고 있는 교실이 사랑과 이해의 향기로 가득 차게 하여 주시고/이로부터 채찍과 꾸짖음의 공포를 영원히 추방하여 주시옵소서./모른다고 꾸짖는 대신에 동정으로 일깨어 주고/뒤떨어진다고 억지로 잡아끄는 대신에/따뜻한 손으로 제 걸음을 걷게 하여 주시옵소서/…’라는 오천석 박사의 ‘교사의 기도’가 자꾸 생각났다. 마음속으로 수십 번 되뇌던 다짐이었다.

그렇다! 시골에서 자란 아이들은 순진무구(純眞無垢)하였다. 전혀 때가 묻지 않고 깨끗하였다. 아이들이 잘못 가더라도 관용을 베풀어 바른길로 지도했어야 했다. 그런데 ‘사랑의 매’라는 그것 때문에….

인량초등학교는 인량동(나라골)이라는 196호의 동네 가운데 있는 학교였다. 여덟 종가가 있는 양반마을이었다. 충효당, 처인당, 삼벽당 …등의 집들이 즐비하고 옛 가풍을 지키는 동네였다. 교육에 대한 관심도 매우 높았다.

지금 제자들이 처음 동창모임을 하던 날, 그들은 스승인 나를 업고 춤을 추거나 기마를 만들어 태우고 들썩거리며 축하를 해 주었었다. 옆에 앉아서 맛있는 음식을 자꾸 권하며 초등학교 때 잘 가르쳐줘서 고맙다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당시에도 “선생님, 그 때 왜 많이 때렸어요?”라는 말이 나왔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다른 제자가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컸잖아.”하고 말했다. 미안함이 조금은 옅어졌지만 필자의 교육방법이 훈도(薰陶)는 아니었다. 도공이 불을 지펴 도자기를 만들듯 절박한 마음은 아니었다. 덕으로 아이들을 감화시켰어야 했는데….

은행에 처음 취직한 제자는 첫 출근하던 날 포항에서 선물을 사들고 택시를 타고 영덕의 남호초등학교 숙직실까지 찾아왔었다. 가르침에 대한 고마움을 전해주려 왔다는 말에 가슴이 뭉클했었다.

천자문에 ‘흔주누견(欣奏累遣) 척사환초(
謝歡招)’라는 말이 있다. ‘즐거움이 모여들고, 귀찮은 것은 보내니, 근심이 사라지고, 기쁨이 손짓한다.’는 뜻이다.

흔주(欣奏)는 참새가 날아오르듯이 춤추며 모여듦을 말한다. 환초(歡招)는 무조건 주는 기쁨으로 오라고 손짓함을 의미한다.

제자들의 동창모임에 불참도 고려해 보았다. 어떻든 참석했다. 여러 제자들이 모여 들면 즐거움이 되고, 서로 간에 나누는 정담은 손짓하는 기쁨이 되리라는 생각에서였다.

모든 사람이 다 좋아하더라도 반드시 살펴보아야 하고, 여러 사람이 싫어하더라도 반드시 살펴보아야 한다. 좋아하고 싫어함은 공존하는 것이다. 좋아하고 싫어함은 다수결로 결정할 수 없는 상식의 문제이다.

명심보감에 ‘젊은 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고, 하루에 새벽은 두 번 오지 않으니 젊었을 때에 학문에 힘쓰라.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라는 도연명의 시가 있다.

시의 첫 부분은 ‘인생무근체(人生無根
)’라고 했다. ‘사람의 삶은 뿌리도 꼭지도 없다.’는 뜻이다. 흩날리는 길 위의 먼지 같은 것이라고 했다. 젊었을 때 당연히 학문에 힘을 쏟아야한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은 ‘푸른색은 쪽에서 나왔다.’는 뜻이다. 청어람(靑於藍)은 ‘푸른색이 쪽보다 낫다’는 뜻이다. ‘제자가 스승보다 낫다.’는 의미이다. 어떻든 학문은 그쳐서는 안 된다. 제자들이 스승보다 낫다면 스승이 도리어 제자에게 배워야 한다. 이것이 청출어람의 참뜻이기도 하다.

50년 전 이름을 불러보았다. ‘학, 석, 환, 식, …, 남’이라고. 삶이 소중한 만큼, 배움이 고통스러운 만큼, 지나간 날들, 닥아 올 날들을 우리는 얼마나 사랑할 수 있을까?

어떤 만남이든 즐거움이 모여들고, 기쁨이 손짓하는 그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