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의 양면성
스토리텔링의 양면성
  • 승인 2021.12.07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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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광 대경소비자연맹 정책실장·경제학 박사
영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미국 작가 로버트 제임스 윌러의 동명소설을 영화한 작품으로 나흘간 중년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다소 서정적인 재미를 갖춘 이 영화는 서부영화 <황야의 무법자>에 출연하여 큰 인기를 얻었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메가폰을 잡은 동시에 남자 주인공 로버트역을 맡았으며, 그리고 여자 주인공인 프란체스카 역은 메릴 스트립이 캐스팅되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진기자인 로버트가 아이오아주 작은 마을에 있는 '지붕 있는 나무다리'인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찾는 중에 길을 잃었다. 로버트는 남편과 두 아이가 나흘 동안 송아지 품평회에 참가하기 위해 집을 떠난 후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프란체스카에게 도움을 요청하면서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된다.

당시 결혼한 여성으로서 두 아이를 키우느라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잊고 살았던 프란체스카는 낯선 이방인과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의 내면 깊숙이 잠재되어 있던 중년 여성으로서 정체성을 찾게 된다. 그녀는 교사직에 보람을 느꼈지만, 결혼 후 남편의 반대로 교사직을 포기하고 집안일에 전념하였던 그녀는, 이탈리아 가곡을 듣고 있으면 팝송으로 바꾸는 딸과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문을 여닫는 남편과 아들, 식탁에서의 긴 침묵에 숨이 막히는 하루의 일상을 보내며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프란체스카는 "흰 나방이 날개짓 할 때 저녁 드시고 싶으면 오세요"라는 예이츠의 싯구로 쓴 초대편지를 지붕 있는 다리에 꽃아 놓으며 로버트를 저녁 식사에 초대하여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프란체스카는 남편과 함께 시내에 쇼핑하러 나왔다가 우연히 교차로에서 로버트의 초록색 픽업을 만난다. 그녀는 빗줄기 속에서도 잘 보이지 않는 로버트의 픽업 안을 쳐다본다. 그런데 앞차의 로버트는 프란체스카가 며칠 전 새 원피스를 샀을 때 그가 전해주지 못한 목걸이를 꺼내 백밀러에 걸어둔다. 신호가 녹색으로 바뀌지만 로버트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으며, 프란체스카는 순간 자동차의 문고리를 꽉 부여잡는다. 그 순간 픽업트럭의 지시등에 불이 들어오면서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고 있던 로버트는 그곳을 떠난다. 그녀는 마침내 빗속으로 사라져 가는 로버트의 픽업트럭 뒷모습을 보면서 끝내 울음을 참지 못한다.

그녀가 자동차의 문고리를 부여 잡고 있는 장면은 '사랑이냐 이별이냐' 선택의 기로에 선 두 사람의 슬픔을 극명하게 보여 주었으며, 순간의 진실에 전적으로 집중하게 해주었다. 프란체스카는 자신이 없어서는 안될 가정을 지키기 위해 로버트의 제안을 거절하며 가슴 아파한다. 그녀는 일기를 통해 아들과 딸에게 "그때 그를 따라가지 못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 대신 사는 동안 원없이 가족들을 사랑했으므로 죽어서는 그 남자의 곁으로 돌아가고 싶으니 그에게 보내달라"라고 했다. 그녀는 소원대로 화장되어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위에 뿌려진다.

이 영화는 당시 한국에서 큰 인기를 얻었으며, 개인적으로도 결혼 후 중년이 되면 다시 보았으면 하는 영화다. 이 영화가 기억 속에 오랜 머물고 있는 것은 스토리텔링(storytelling) 때문이 아닐까 한다. 스토리텔링은 대중들에게 호감을 갖게 만드는 설득의 힘을 가지고 있다. 드라마 이야기, 연예가 소식, 정치인 이야기, 항간에 떠도는 소문 등 대중들은 흥미로운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인다. 따라서 스토리텔링은 이야기를 좋아 하는 인간의 본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영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인기를 얻은 것도 중년의 남녀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의 보편성 때문이 아닐까 한다.

정치권에도 스토리텔링 바람이 불고 있다. 20대 대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은 조동연 서경대 교수를 '워킹맘' '육사 출신 여성 군인' '우주항공산업 전문가'로 소개하며 이재명 대선후보의 인재영입 제1호로서 상임선대위원장으로 영입했다. 가로세로연구소 소장 강용석 변호사가 유튜브 동영상, 페이스북 등을 통해 조 교수와 관련한 몇 가지 의혹을 제기했으며,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총괄 특보단장인 안민석 의원은 "조 교수는 스토리텔링이 완벽하지 않나. 그래서 앞으로 제2, 제3의 조동연을 기대한다"라고 극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 교수는 영입 발표 이후 3일 만에 사퇴했으며, 논란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뛰고 있다.

"죽은 여자보다 더 불쌍한 것은 잊혀진 여자다"라는 말은 프랑스 여류화가 시인이었던 마리 로랑생이 '미라보 다리'로 유명한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에게 버림받은 후 남긴 시의 구절이다. 문학작품 속에서 스토리텔링은 사실과 허구가 섞여 있으며 더 큰 재미를 가져다주지만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정치권에서 스토리텔링은 반드시 사실에 기반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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