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새는 날아서 - 이야기는 상상력을 키운다
불새는 날아서 - 이야기는 상상력을 키운다
  • 승인 2021.12.09 21:2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심후섭 아동문학가·교육학박사 대구문인협회장
로마 건국 설화로 독수리 이야기가 전해오듯, 이집트에는 고대로부터 전해오는 불새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불사조(不死鳥, phoenix) 이야기입니다.

불새는 빛나는 진홍과 금빛 깃털을 가졌고,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상상의 새입니다. 이 새는 자신의 운명을 미리 알고, 생명이 다할 무렵이 되면 향기 많은 나뭇가지로 둥지를 틀고 거기에 불을 붙여 몸을 태우며 죽는데, 그러면 거기에서 새로운 새가 탄생한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이 새는 영원히 생명을 이어간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이 새는 불멸이나 재생을 뜻한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묵은 자아를 버려야만 새로운 자아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구차한 현실에서 벗어나 새롭게 태어나고 싶은 잠재의식이 녹아있기도 합니다.

역사가 오래 된 나라일수록 전해오는 이야기가 넉넉하고, 그 이야기는 퍼져나가면서 모양을 자꾸 바꾸는 듯합니다. 로마의 독수리는 동로마제국과 신성로마제국을 통해 전 유럽에 퍼져나가 웬만한 나라에서는 모두 군대의 휘장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으로까지 건너가 국가 휘장에 흰 독수리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음악가들도 독수리를 주제로 하여 많은 작곡을 하였습니다. 오스트리아의 군악장이던 바그너는 ‘쌍두독수리 깃발 아래에서(Under the double headed eagle)’라는 곡을, 미국 행진곡의 아버지로 불리는 존 필립 수자는 ‘쌍두독수리행진곡(Double headed eagle march)’을 만들었는데, 이 곡들은 전 세계로 퍼져나가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스트라빈스키는 러시아 고대 설화로 굳어진 ‘불새 이야기’를 모티브로 ‘불’라는 발레음악을 작곡하여, 단숨에 유명 작곡가가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비평가들은 다양한 타악기가 만들어내는 역동적인 음색으로, 인간의 잠재된 욕구를 잘 표현했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무렵 스트라빈스키는 유명한 작곡가라고까지는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시 러시아 최고의 발레 안무가였던 디아길레프가 스트라빈스키에게 발레곡을 의뢰하게 되면서 상황은 바뀌게 되었습니다. 사실 디아길레프는 처음에 이 곡을 다른 사람에게 의뢰했으나 제대로 진전이 이루어지지 않자, 계획된 공연 시기를 생각하면 다소 촉박한 상황에서, 작품 ‘꽃불’로 좋은 인상을 주고 있던 신진작곡가 스트라빈스키에게 ‘꽃불’과 ‘불새’를 연결하는 이미지를 살려달라고 주문을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스트라빈스키의 3대 발레 음악 중의 하나라고 칭송받는 명작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명곡이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스트라빈스키의 감성적인 재능과, 그 재능을 알아본 디아길레프의 높은 안목이 크게 작용하고 있지만, 더욱 크게 생각해 볼 점은 ‘불새 이야기’가 지닌 설화로서의 가치가 아닐까 합니다.

명곡 ‘불새’의 배경은 마왕(魔王) 카스체이의 정원입니다. 마왕은 그 동안 수많은 사람에게 마법을 걸어 성(城)에 가두어 놓고 있었습니다. 사냥을 나갔던 이반 왕자는 길을 잘못 들어 마왕이 사는 성에 들어갔다가 그 정원에서 불새를 발견하게 됩니다.

불새는 매우 신비한 능력을 지녔지만 민첩하고 지혜로운 이반 왕자에게 붙잡히고 맙니다. 이에 불새는 자신의 깃털을 하나 내어주고 풀려납니다. 그러는 중 이반 왕자는 카스체이에게 붙잡히고 맙니다. 하지만 불새가 자신을 살려준 이반 왕자를 도와줌으로써 이반 왕자는 카스체이를 죽이게 되고, 그 결과 성 전체가 모두 마법에서 풀려납니다. 이반 왕자는 풀려난 사람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공주와 결혼하게 되고, 이로써 극은 끝을 맺습니다.

이 결말은 억눌린 압박에서 벗어나는 카타르시스의 순간으로 청중에게 다가옵니다. 이에 청중들은 환호를 하게 되는데, 상상력의 소산이기는 하지만 그 매개체로서 새가 자리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예술도 실은 아주 작은 일상의 소재에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