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 205호에 조○분, 이○분, 김일○, 이화○, 손분○, 장○분 꽃가루 자욱하다
살갗 세포 말라가는 데는 순서가 없다. 84, 90, 87, 92, 79, 98 꼬리표 단 식판이 문을 열고 들어선다. 냄새를 응시하는 흐린 눈들, 기억 속 블랙홀에 다녀온 듯 잠시 반짝인다. 어떤 기대도, 어떤 불안도, 어떤 욕망도, 허기만큼은 온전히 놓아주지 못한 걸까
이렇게 자꾸 흘리면 안 된다고 요양사는 희멀건 야채 죽 앞에서 가벼운 힐책이다. 간장 종지 흔들던 공기를 한 번 더 가르는 말투는 “꾸욱 꾹 삼켜야지....” “응, 응.” “잘했어.” 천진한 아이처럼 턱받이를 한 구순의 분이들 맛있다고 환하게 웃는다
꾸역꾸역 견딘 질곡의 시간들이 맑아지는 205호는 해가 넘어가야 환해지는 분꽃 밭. 잘들 계시라고 손 흔들어주고 나서는 문간, 허기로 휘청거리는 나를 어둠의 손으로 일으켜 세우는 분분한 삶의 실체들
◇경북 상주 출생. 형상시학회, 대구시인협회, 문장작가회 회원, 시집 : 『채널의 입술』
<해설> 아직은 멀게만 느껴지는 요양원의 풍경이 글을 통하여 하나씩 그려지는 것이 영 저리는 마음이다. 시인이 나서는 문간 옆에 서 있다가 팔을 잡아 부축하고 싶은 기분이 드는 것은 그가 겪은 하루 동안의 한없이 측은해진 마음을 이해하여서일 것이다. 어쩌면 가까운 날에 나와 나의 지인들이 겪을 일일 것이다. 요양사의 당근과 채찍의 요양법이 곧 내가 받을 보호임을 미리 알고 준비해야 됨을 각오해 본다. 피할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하면서 시인이 이 글을 쓴 이유를 알 것 같다.
-정소란(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