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두일’展 … 파편 해체로 조형성 변주, 비움의 미학 구현
‘장두일’展 … 파편 해체로 조형성 변주, 비움의 미학 구현
  • 황인옥
  • 승인 2021.12.12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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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까지 갤러리문 101
‘파편 쌓기→캔버스 붙이기’ 방식 변모
노동 강도 낮추며 작업 형태·개념 확장
다채로운 변화 통해 예술 자율성 확보
작품에 숫자 더하고 색채 다양화 시도
장두일작-일편일각
장두일 作 ‘일편일각(一片一覺)’.

가득 채웠을 때의 행복과 텅 비웠을 때의 행복은 내용에서 극과 극이다. 사람마다 기준이 달라 꼬집어 ‘이것이 정답’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같은 사람이라도 때에 기준이 달라지는 경우도 더러 있어 고정불변이라고 호언장담할 수도 없다. 젊은 시절의 솟구치는 열정은 채워야 제맛이고, 내면이 단단한 중년 이후의 여유는 텅 빈 충만에 더 끌린다.

작가 장두일은 ‘채움’과 ‘비움’의 미학을 오갔다. 20년간 채움의 방식으로 서사를 전개하며 채움의 미학에 집중했다. 최근 7~8년 전부터는 해체를 통한 비움의 깨달음을 체험하고 있다.

채움의 역사는 옹기로부터 시작됐다. 우연히 눈길이 머문 깨진 옹기 파편의 붉은 속살을 보고 땅의 속살을 연상하고, 그것이 다시 어머니의 속살로까지 연상 작용이 이어지면서 파편 실물을 사각 틀에 쌓아올리기 시작했다. 옹기 파편이 집적된 사각 틀이 그에게는 생명을 낳고 키우는 ‘모성의 터’로 인식됐다. 이후 재료는 기와와 도자기로 확장됐다.

옹기나 도자기의 파편을 쌓는 행위를 그는 “인간의 삶을 기록하는 거룩한 의식”으로 인식했다. 파편이 가지는 기록성 때문이다. 깨어진 파편에는 누군가의 삶의 숭고한 시간들이 켜켜이 묻어있다. “파편 작업은 시간성에 대한 기록이다.”

파편을 수집하고, 선별하고, 집적하는 과정은 지난한 노동의 연속이다. 특히 흙을 재료로 만든 기와나 옹기의 파편들을 켜켜이 쌓아올렸을 경우 주제는 깊이를 더해갔지만, 그 무게는 실로 감당하기 어려웠다. 예술의 꽃은 정신의 표현이라고 정의내릴 때, 거친 노동의 무게는 정신을 잠식하는 주객전도의 상황이 됐다. 그 현실을 자각하면서 망설임 없이 실물 파편을 손에서 놓았다. 대신 골판지로 파편 형태를 만들고 한지로 쌌다. 표면은 채색이나 문양을 가미했다. 이후 골판지는 스티로폼으로 대체하기도 했다.

노동의 강도가 약해지고 무게가 가벼워지면서 작업은 한결 편해졌다. 드디어 정신이 반짝일 기회가 왔고, 기지가 작동했다. “쌓았던 것을 해체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 즉시 파편들을 틀에 쌓는 대신 캔버스에 붙이기 시작했다.

캔버스에 붙이는 방식으로 비움을 결행하자 답답하던 조형에 숨통이 트여왔다. 쌓여있던 파편을 해체하자 천편일률적이던 조형성에 다양한 변주가 찾아왔고, 새로운 서사들도 꿈틀댔다. 현실세계 너머의 세계도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냈다.

작가는 이러한 변화를 “조형의 확장성”으로 진단했다. 그러면서 “노동의 부담을 드는 시간대를 좀 더 빨리했더라면 더 많은 확장성을 경험했을 것”이라며 아쉬움도 토로했다. 하지만 그는 “20년이라는 숙성의 시간이 지금의 다채로운 조형성을 확보하는 밑거름이 되었으니 그 또한 큰 의미였다”며 자족했다.

현실의 삶에서 바라본 ‘시간성’에서 근원의 세계를 의미하는 ‘본질’로 주제가 본격화된 것은 올해부터다. 한창 진행 중인 갤러리문 101 전시에 변화된 작업들이 걸렸다. 집적된 것을 해체하면서 조형과 개념의 확장이 본격화된 작품들이다.

우선 파편 형태부터 확연하게 달라졌다. 골판지나 스티로폼으로 만든 파편 형태에 그렸던 문양을 빼고, 곡선 위주였던 형태도 직선으로 변화했다. 허공으로 더욱 튀어오른 직선의 파편에서 빛과 그림자의 존재가 도드라졌다. 현실의 공간이 사유의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숫자도 개념적인 장치로 등장한다. 캔버스의 네 가장자리에 4개의 모형을 붙였다. ‘4’라는 수의 등장이다. ‘4’는 삶의 기준이 되는 신조나 신념으로 작가가 제시하는 숫자다. 건축물의 네 기둥과 같은 역할이다.

색채 또한 다채로워졌다. 모형을 붙일 캔버스 바탕에 빨강, 파랑, 노랑 등의 원색을 칠했다. 다양한 색채의 도입은 사람마다 각기 다른 사고 체계를 가지고 있는 현실에 대한 인정이다. “색은 50억 인구 수 만큼이나 다양하다. 그렇게 다양한 색채는 사람마다 서로 다를 수 있는 신조나 신념의 기준에 비견할 수 있다.”

파편을 집적하거나 해체한 작품 제목은 ‘일편일각(一片一覺)’이다. 말 그대로 깨달음의 조각들이라는 뜻이다. 이와 같은 제목 속에는 “삶의 순간순간 깨달음은 반복되고, 따라서 그의 작업도 다양한 변화를 거듭한다”는 의미가 숨겨져 있다. 작가는 정신적인 작용과 작업 사이의 필연적인 관계성을 “예술의 자율성”과 결부시켰다. “나의 작업은 외부가 아닌 내부와 연결되어 있고, 그것은 작업의 자율성을 확보하는 배경이 된다.”

일명 ‘먹그림’으로 불리는 평면작품인 ‘일상의 존엄’도 예술의 자율성에 부합하며 변화를 거듭했다. 기와 집 속에 단란한 가정의 일상을 표현하는 주제적인 측면은 변함없지만 시가적인 구성이 훨씬 자유로워졌다. 호방한 공간 속 기와집에 단란한 가족을 표현했던 틀을 부순 것. 이 역시 해체에 해당된다. “사람이나 나무, 집 등 특정 부분을 해체하여 소재와 구성에서 다양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집적에서 해체, 밀도감 있는 조형성에서 느슨한 공간성으로의 변화 이면에 그가 진정으로 얻은 가치는 ‘자유’다. 그는 현재 꽉 짜여진 조형이나 색채적인 측면에서 무한한 자유를 경험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수확은 사고의 유연성이다.

“구속에서 빠져나오자 사고가 유연해졌고, 그것이 또한 미술적인 표현의 자유로 확장되어 갔다.” 갤러리문 101 장두일 ‘발굴된 기억, 유년의 기억과 원형적 기억’전은 14일까지.

황인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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